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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4. 2023
어떻게 중딩 아들에게 긴팔을 입힐 것인가
하복금지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했던 그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소리였어요. 이런 사자성어도 있었나... 고개를 갸웃 대는 사이. 그것은 어느 중딩 어미의 속 터지는 사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가 이 말을 똑. 같. 이. 외치고 있었지요. 한파가 몰아친 이 마당에 말입니다. 끙.
중딩 아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갑니다. 감정이 널뛰기를 한다는 말씀이지요. 전문가 왈. 사춘기 아들은 임신한 여자의 심리 상태와 같다나 뭐라나요. 어미는 너란 녀석을 열 달은 품어 본 지라, 지금 녀석의 상태가 어떤지 짐작이 가기는 합니다.
사실 중딩 시대는 중딩의 너울대는 감정 살피기만 해도 버겁기 마련입니다.
현관 번호키를 누르는 리듬감에도
의자를 꺼내는 제스처에도
책장을 넘기는 소리에도
중딩의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요.
동시에 새로운 미션들도 훅훅 치고 들어오는데요. 이번에 어미 발등에 떨어진 미션은 중딩 아들의 옷. 옷. 옷이었습니다.
중딩 아들의 교복 애티튜드는 혼자 보기가 아까울 정도인데요. 언밸러스의 정석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계절감은 제로. 겨울에도 하복만을 고수하지요.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에서 온 중딩입니다.
어미의 다정한 회유책도 버럭버럭 강경책도 도통 통하지가 않지요. 왜 그렇게 전국 중딩 어미들이
하복 금지령을 외쳐댔는지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희 집 중딩은 온몸으로 닭살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반바지에서 긴 바지로 갈아탔습니다. 하지만 반바지라는 고비만 넘어섰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는데요. 바로 반팔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어미는 입히고 싶었습니다. 오로지 중딩 아들에게 긴팔 교복 티셔츠를요. 한겨울. 패딩도 걸치지 않고. 오롯이 동복 교복 안. 반팔만 입는. 중딩에게 말입니다.
이런 건 어미의 욕심 아니잖아요.
창 밖으로 꽁꽁 얼어붙은 호수를 바라볼 때마다 그 마음은 더 강렬해졌지요.
중딩 어미들의 분노를 응집시킨 하복, 너란 녀석!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이것이 어미의 최종 미션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중딩 아들 몸뚱이에 긴팔을 걸치게 하는 것 말이에요. 어미의 마음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저희 집 중딩은 반팔 교복만 쏙쏙 잘도 빼내 입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긴팔 교복은 사지도 말걸 그랬습니다. 얄미운 생각뿐이었어요. 녀석의 등에 대고 허공 펀치를 얼마나 많이도 날렸는지 모릅니다.
중딩 아들의 냉탕 예찬은 양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자고로 겨울이란 찬바람이 다리 좀 휘감아 줘야 제맛이라나요.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발목 긴 양말들은 장롱 안에 콕 처박힌 신세였습니다. 밖으로 나와 콧바람 쐐기는 개나 줘버려 가 되었지요. 이것이 다 중딩을 주인으로 둔 탓이었습니다.
아... 탈출하고 싶다. 발목 긴 양말의 소리.맨발에 슬리퍼 차림도 중딩 아들의 시그니처 모습인데요. 함께 나갔다가도 그 녀석 발가락 걱정에 후다닥 집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습니다. 태어나서 누군가의 발가락을 이렇게까지 걱정해 보기는... 쩝.
이러다 보니 등교할 때는 묘한 고마운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학교 갈 때는 양말에 운동화까지 챙겨 신고 갔으니까요. 사실 당연한 일 인데도 말이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잠옷이에요.
아직도 중딩아들은 한겨울에도 여름용 잠옷을 즐겨 입습니다. 그것도 몸에 챠르르 감기는. 냉기를 한껏 머금은 일명 냉장고 천 잠옷을요. 윽. 생각만 해도 온몸이 오싹해지는군요.
에잇!
시베리아 한 복판에나 갖다 놔야 할 녀석 같으니라고.
이렇게나 냉탕을 애정하는 중딩인데요.
묘하게도 이중적인 면이 공존합니다.
네. 중딩 아들은 냉탕 드나들 듯 온탕도 왔다 갔다 하거든요. 몇 가지 나열해 볼게요.
먼저 핫팩이 그래요.
중딩 아들이 직접 사달라고 까지 한 아이템입니다.
아!깜빡중딩이 잊지 않고 매일 아침 하나씩 챙겨 나가니. 신기함 그 자체지요.
넥 워머도 목에 쏙쏙 잘도 끼고 나섭니다.
(그럴바엔 안에 긴팔 티나 입겠다. 끙.)
샤워할 때는 또 어떻고요.
뜨거운 샤워를 어찌나 즐기시는지. 뜨거운 물의 시원한 맛을 알아버린 중딩할배입니다. 매번 벌겋게 반쯤 익은 몸으로 나오곤 하는데요. 분홍빛 소시지가 따로 없지요.
전기장판도 예진작에 중딩에게 뺏겼습니다.
뭐랄까요. 물아일체의 경지랄까요. 전기장판과 중딩은 겨울 내내 한 몸임을 보여줍니다.
(그럴바엔 냉장고 잠옷부터 벗겠다. 끙.)
이쯤 되면 기가차지요.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
하지만 어미는 압니다. 어미 말을 귀뚱으로 들을 중딩을요. 어미의 걱정된 말은 지겨운 잔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네네. 어미는 쏟아져 나오려는 말을 애써 꾹꾹 눌러 담습니다. 어이쿠. 이미 누를 대로 눌러 담아 넘쳐날 지경이네요. 쩝.
참을 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