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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19. 2023

최고 부부


그들을 만난 건 올해 봄이었다.

남편 지인으로 부터 소개를 받았고, 첫 만남부터 부부동반 식사를 했다. 솔직히 남자들끼리만 알면 됐지 굳이 부부 동반 모임이랄께 뭐야. 은근히 투덜댔다. 거기다가 친한 사이도 아닌데 처음부터 식사라니. 점점 꺼려지는 이유가 늘었다.


그래도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밖으로 나갈 일이 좀처럼 없었기에. 콧바람도 쐴 겸, 사람 구경도 좀 할 겸. 만남에 응하게 되었다.






앞이 확 트인 호수 뷰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만났다. 일단 분위기가 만족스러워 마음속 별 하나를 플러스했다.


는 일찍 도착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부부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둥글둥글한 외모. 멀리서 보아도 둘은 닮아 보였다. 그들은 늦었지만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문을 여는 손끝에서 조차 느림의 미학이 담겨 있었다. 마치 그들의 움직임에 슬로 모션이라도 걸린 듯했다.


간단한 인사 후, 먼저 사 주문을 했다.  부부는 메뉴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씩 넘겨가며 정독했다. 둘은 원산지까지 살펴가며 메뉴 선정에 치밀함을 보였다.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테이블 이미 주문이 들어간 상태였다. 배가 고플 대로 고팠던 나는 마음속으로 별 하나를 빼고 있었다.


그 찰나 땡큐하게도 그녀가 입을 열였다. "마토 파스타 시금치 피자면 좋겠어요. 토마토와 시금치는 좀 더 듬뿍  달라고 해야겠고요."  진작에 메뉴를  골라 둔 상태라 초스피드로 주문을 넣었다. 고기가 빠지면 섭섭하기에 점보 포크  바비큐를 시켰고,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나시고랭도 추가했다. 골고루 맛볼 요량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살며시 마음속 별 하나를 다시 플러스했다.


그런데 웬걸.  부부는 음식이 부족해 보였는지 추가 주문을 해야겠다고 했다. 사실 이 레스토랑은 맛도 맛이지만 양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초면에 이 사실을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극 I에 해당하는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꾹꾹 눌렀다.


그들은 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했다.

로메인 미니쿠스 샐러드.

그것도 똑같은 샐러드를 두 접시나 더!






음식이 나오기 전, 우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는 가운데 부부의 특징이 간파되었다. 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들은 서로 눈을 꽤나 자주 마주쳤다. 연애 초기 때나 볼 수 있다는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눈빛이었다.  사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느꼈다. 문을 열어 주던 남자의 쏘 스윗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는 것을.


자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남자 버금가는 눈빛을 발사했다. 남자의 흐트러진 옷깃을 만져주면서 눈빛발사 뿅. 얼굴에 붙은 눈썹을 떼어주면서  한 번 발사 뿅뿅. 오래된 부부 사이가 이렇게 다정할 수 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의심이  정도였다. 형제처럼 지내는 우리 부부와 크게 비교되는 점이었다.


드디어 기다렸던 음식이 나왔다. 남자는 여기서도 어찌나 자상함을 발휘하던지. 여자의 그릇 위로 연신 음식을 덜어다 날랐다. 식사를 하면서도 맛있게 잘 먹는다며 어쩜 그렇게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지. 혹 음식에 머리카락이나 비듬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슬슬 그들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기 음식 먹기 바쁜 우리 집 남편이 눈치를 볼 정으니 말해 뭐 하겠는가. 


하나 더. 그들이 추가로 시켰던 샐러드. 접시 위로 수북이 쌓여  저것을 어찌 다 먹을꼬 했던 풀데기 두 접시를. 그 말끔히 해치웠다. 심지어 우리는 손 하나 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음식을 어느 정도 다 먹었을 즈음. 후식 생각으로 들떠 있던 찰나. 그들은 깜짝 밍아웃을 했다.







여자는 임신 중이라고 했다. 현재 13주 차. 그녀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았다. 게다가 이미 아이가 4명이나 있다. 거기서 한 명을 더? 것도 늦둥이를? 그녀보다 한 살 어림에도 불구. 이미 조기 폐경 진단을 받은 나로서는 그녀의 임신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는 입덧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다 했다. 오늘에서야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며 고마워했다. 정기에 접어들어 유산 걱정도 누그러들었다 했다. 오랜만에 즐겨본 외식이었다며 부부는 또다시 서로 눈을 맞췄다.


부부의 커밍아웃.

부부의 속 터지게 느긋했던 행동으로. 마음속 별점을 더했다 지웠다 반복했는데. 그 모든 것이 용서되는 순간이었다. 남자에게서 느꼈던. 과한 친절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찰나였다. 인구절벽 시기에 생명 탄생이라니. 땡큐베리 감사할 일이었다.


저녁 식사 내내

천둥이 우르르 쾅쾅 마음속은

곧 태어 날  생각으로 반짝반짝했다.











저녁 식사를 함께한 최고의 부부를 소개합니다.

달팽이를  바라보며 언젠가 주인공으로 글을 지어줘야지 생각했어요.

달팽이 부부는 다정해요. 사이좋게 먹이도 나눠 먹고요. 누가 더 앞설세라 하지도 않고 느릿느릿 잘도 놉니다. 또 얼마나 다정하게요. 연신 더듬이로 서로의 몸을 쓸어 줍니다. 토라지거나 고성 높여 싸우는 일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최고의 부부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팽이 부부가 알은 그만 낳고 둘이서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키우고 있는 백와 달팽이가 벌써 네 번이나 알을 낳았거든요. 한번 알을 낳을 때마다 엄청나게 어나는 새끼들을 이제는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게 다 자연의 먹이사슬을 거스른 인간의 욕심 때문 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쩝.



 



메인 사진 @pixabay

본문 사진 @Pie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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