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고 통통한 하얀 얼굴에 틀어 올린 새까만 머리. 두꺼운통 굽에 딱 달라붙는청바지. 형광 핑크 손톱. 그리고 핸드백인양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이구아나가 들어있던 통!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강의실을 압도하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녀에게 호기심이 일긴했다. 그렇지만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일은 단한 번도 없었다. 나와 정반대 사람이란 생각만 들었을 뿐.
그리고어쩌다 그녀와 밤샘 작업을 하게 되었다.
과 특성상 매년 영어 연극을 준비해 무대에 올렸는데, 우리 둘 다 지원을 했던 것이다.
늦바람!
책상과 절친인 듯 꼭 붙어 공부만 했던 나는 대학교 생활 반전을 맛보고 싶었다. 다들 진로와 미래를 고민할 때 연극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뜬구름!
그녀는 누가 억지로 입학이라도시킨 양. 한결같이 전공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껏 차려입고 놀러 다니듯 강의실에 입장하곤 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맥베스의 명대사를충만한 감정 담아 표현했고
그렇게난 오디션에 합격했다.
심장이 떨렸던 거에 비하면 아주 작은 배역이 주어졌다.
내가 맡은 역은 마녀 1, 2 ,3중에서 마녀 1. 대사는 몇 마디 되지도 않았다. 앉은자리에서 다 외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연극 연습은 고역이었다. 작은 역할임에도 불구.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내 대사 양과는 반비례로 밤샘 작업이다반사였다.잠깐 무대 맛을 봤다가 내내 객석에 앉아 있어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 좋아하는 나에게도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우린 함께했던 야식이 쌓여갈수록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생겼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아니나 다를까 전공에 뜻이 없어 보였던 그녀는 패션 디자인에 온 마음을 빼앗겨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디자인 습작 노트를 보여주었다.다음 날은 내가 글쓰기 습작 노트를 가지고 와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단짝이었다. 캠퍼스 커플이라도 된 양교정을 휘저으며 다녔다.
날라리와 범생이.
교수님들도 우리가 붙어 다니는 모습에 눈길을 한 번씩 주었다. 같은 과 친구들은 아예 대놓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영문과 졸업 후 압구정 패션 디자인 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교수를 꿈꾸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우리는 가끔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여름방학이 되었고난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으로큰돈을 만져 본 나는. 달콤한 돈 맛에 빠졌다. 그 길로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직장인이 되었다.
그녀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패션 스쿨을 졸업했다.취업 후 몇 번이나 이직을 거쳤지만 그녀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직종을 바꾸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패션 안에서 놀고먹고일하고 쉬었다.
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은 뜸해졌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여전히 싱글로 패션업계에서일하고 있다고 했다.
꿈 많던 그 시절.
우린 서로의 꿈을 알았고. 서로를 응원했다. 친구는 바라던 꿈을 이뤘지만. 나는 중도에 옆 길로 새는 바람에 아직 그 꿈에 당도하지는 못했다.그래도 작년말미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