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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13. 2023

어쩌다, 아저씨 친구


어쩌다 보니 아저 친구가 됐다.

이게 다 엄마가 보낸  참외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자고 나란 우리 엄마, 조윤경 여사는 유독 여름이 되면 참외를 좋아라 하셨다. 매 끼니마다 후식으로 참외를 깎아 드셨으니까.  엄마 딸이지만 나는 엄마만큼 참외 사랑이 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엄마는 해마다 딸네 집으로 참외 한 박스를 보내곤 하셨다.  해 엄마 미각을 만족시킨  일등  참외를 말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참외 한 박스를 받았다.


 엄마가 보내 주신 때깔 좋은 참외 한 박스.


10킬로짜리 묵직한 참외 박스를 받아 들고,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어휴... 이 많은걸 언제 다 먹지?'


각은 자연스레 눔으로 이어졌다.

차피 감당할 수 없는 양. 싱싱할 때 나눠라도 먹자고.

이사 후, 그때까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조차 몰랐다. 다!  나눌 절호의 찬스는.


그렇게 해서 아저씨를 알게 되었다.

처음 대면한 아저씨는 보기 드문 콧수염 소유자였다. 풍성하면 정교하게 다듬 콧수염. 콧수염 끝은 아찔할 정도로 위를 행해 있었다. 


거기다 하이라이트.  

귓속말을 하자면... 아저씨는... 민... 머리... 였다. 





일단 안면을 트고 나니 이상하게 아저씨와 마주치는 일이 빈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저씨는 쌍둥이. 그것도 데칼코마니 일란성쌍둥이였다. 어쩌면 그 바람에 더 이 마주친다 느꼈을지도 겠다.


무튼 참외 한 봉지가 뭐라고.

작은 나 아저씨와 나 사이  색한 계는 래성처럼 쉽게 다. 느새 우리는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아저씨와  마주쳤다. 잠깐 사이였지만 나는 아저씨의 변화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반딱이던 저씨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 빼죽 삐죽빼죽. 잔디가 쑥쑥 자라듯 말이다.


원래 대머리인 줄 알았는데, 민머리는  단지 아저씨 헤어 스타일이었던 거였다.





그리고... 다시 한 달쯤 뒤였을까.

한참만에 만난 아저씨는  놀랍게도 머리가 어깨까지 자라 있었다. 특효 발모제라도 바른 것일까. 


게다가 머릿결은 어찌나 탐스럽던지.

내가 다 욕심날 정도였다. 그동안 봐왔던 아저씨 헤어 스타일이 스쳐 지나갔다.  민머리에서 까까머리 그리고 지금의 긴 머리 스타일까지. 모발 생성 속도가 아저씨 정도라면 몇 번이라도 삭발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저 신기함에 속에 감탄만 연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옥에 티가 눈에 띈 건. 

아저씨 윤기 나는 흑발 머리 . 흰머리 한 가닥이 눈에 거슬렸다. 몹시도.


나란 사람은,

다른 사람 옷에 붙은 먼지가 그렇게도 눈에 잘 띈다. 특히 말끔히 차려입은 여자의 뒷모습. 실지렁이처럼  붙어있는 기다란 머리카락. 저걸 때? 말어? 망설일 때가 지기수다. 게다가 세상에는 왜 이리 지퍼 열린 가방들은 많은 건지.





솟구!

뽑고 싶은 욕구가!


"저씨... 저... 어  흰머리 한가닥만 도 될까요?"


말을 뱉고 나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활시위를 난 화살이었다.





하지만 참외 한 봉지 힘은 대단했다.

아저씨는 기꺼이 내게 머리를 내어주셨으니까. 음하하.


나에겐 어릴 적 할머니 흰머리 뽑기로 갈고닦은 실 있지 않은가. 검은 머리칼이 한 개라도 잡혀올라와 함께 뽑히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예상대로 흰머리 한 가닥만 뽑아낼 수 있었다. 깔끔하게. 한 방에.


아저씨는 무척 고마워했고, 나는 가스 활명수 한 병을 들이켠 느낌이었다.


스토리는 이렇게 해피 엔딩이었다.

하지만 개운함도 잠시. 나는 또 한 명의 데칼코 마니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분도 똑같이 머리를 길렀을까. 그랬다면 흰머리가 한 가닥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컨대, 나란 여자는 오늘부터 집 안팎을 부지런히 드나들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채. 또 한 명의 콧수염 아저씨를 만날 때까지 말이다.



내가 찾은 개운함은 끝난 듯 끝난 게 아니었다.







올여름 엄마가 보내주신 참외를 먹다가 씨를 심어봤어요. 작고 노란 별모양 참외꽃을 기대하면서요. 비록 참외꽃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내 초록의 기쁨을 누렸답니다.

더군다나 프링글스 감자칩 통은 초록의 기쁨을  배가 시켜줬어요. 콧수염 아저씨와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민머리 콧수염 아저씨에게 풍성한 헤어를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글에서  콧수염 아저씨 흰머리 뽑기는

참외 마른 잎 정리 때를 생각하며 써보았습니다.


라푼첼 부럽지 않아요.

photo by  Pixabay & Pie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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