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일곱 번째 이야기
부부란 참 묘한 인연이다. 약 30년 간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온 사람과 가족이라는 운명으로 엮인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서로 공감하기보다 다투는 것이 많고, 함께 웃기보다 싸우는 일이 더 많고, 비슷하기보다 다른 것이 더 많음에도 서로 믿으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 화상과 결혼 했는가 후회하면서도, 어떤 때는 그래도 저 치가 내 배우자라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것. 공동생활을 100이라는 숫자로 치환한다면, 80 정도는 괴로운데도 행복한 20 때문에 참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 말이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우리는 딱 두 가지만 반드시 지키기로 했다. 서로 존중하며 존대할 것, 그리고 집안일은 반드시 50대 50의 비율로 나눠서 할 것. 서로 존대하기로 한 것은, 말과 마음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는 우리 두 사람의 공통된 지론에서 비롯되었다. 설령 의견 다툼이 생기더라도 서로 존대한다면, 무의식 중 나올 수 있는 ‘험한 말’ 중 상당수는 차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데 의견이 일치한 덕분이기도 했다. 두 번째 항목, 집안일 분담 비율은 아내로서의 내 불안감에서 기인했다. 결혼 전에는 “자기는 가만히 있어. 목욕할 때 빼고는 손에 물도 묻히지 마. 내가 다 해 줄게.”라며 호언장담했던 로맨틱 가이들이, 결혼 후에는 이런 저런 핑계로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를 내 주위에서도 여럿 본 탓이다.
상호 존대 항목은 결혼 생활 4년차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문제는 두 번째 항목인데, 해당 협의의 붕괴 조짐은 내가 출산휴가에 들어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신 10개월 차, 여타 산모들과 달리 배가 덜 나온 데다 체력도 거뜬했던 나는 여타 평균 산모들과는 달리 생활 패턴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임신 중 토익 시험 응시, 자격증 취득에 막달까지 한 시간 이상 실내 사이클 운동을 즐겼을 정도였다.-물론 정기적인 몸 상태 확인과 의사와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진행하였으며,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무언가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나는 회사 업무가 없으니 그 대안으로 집안일을 전담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알고 보니 살림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나는 꽤 성실한 살림꾼이었다.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올 허용하지 못해 눈에 띄는 족족 닦아댔고, 타고난 힘으로 소파도 번쩍 들어 구석구석까지 청소하곤 했다. 평생 요리와는 담 쌓아놓고 지내던 나도, 정갈한 밥상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리 블로그들을 탐색하며 여러 가지 집밥 메뉴에 도전하는 것도 즐거웠다. 뿐만 아니라 각종 육아 서적을 읽고 블로그 정보들을 탐닉하며, 내 아이의 행동 발달을 예측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남편에게 부인의 재능 발견은 매우 호재였다. 매일 차려진 저녁 식사, 깔끔하게 닦인 바닥, 말끔히 제거된 곰팡이 등 본인이 손대지 않아도 너무도 잘 운영되는 집안 살림에 조금씩 집안일에서 손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출산휴가를 지나 육아휴직까지 이어지자, 남편은 아예 집안일을 놓아버렸다. 나는 얼떨결에 육아와 집안일을 모조리 떠맡고 말았다.
아이의 탄생 이후, 매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의 숙면을 위하여 손님용 방을 남편 침실로 새로 꾸민 것도 한몫 했다. 새벽에도 2~3시간 단위로 깨는 아이와 전쟁을 치를 동안, 남편은 코까지 골아대며 콜콜 잠에 빠졌다. 간밤의 전시 상황을 알지 못하니, 하루가 지날 때마다 좀비가 되어가는 아내의 상황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간혹 청소 상태가 좋지 않으면 “오늘은 청소 안 했나 봐요.”라며 자그마한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나도 내가 집에만 있는 동안, 집안일 대부분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감했다. 실제로 직장에 나가지 않아 좀이 쑤시던 내가 괜한 솔선수범을 한 탓에 발생한 사태라는 것도 인정한다. 남편 또한 갑작스레 찾아온 선물 같은 편의에 익숙해졌을 뿐, 의도적인 태만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럼에도 몇 달 간 이어진 이 상황은, 내게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다시 일을 하지 않으면, 이대로 모든 집안일을 떠맡은 채 주저앉아 버리고 말리라는 악몽이었다.
그리하여 육아휴직 6개월차, 나는 복직을 선언했다.
복직을 한 이후에도 내 몫이 되어버린 살림의 재분배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남편과 나의 상황-출퇴근과 육아, 살림의 공유-이 동등해지면서, 다시 한 번 부부이자 일상 공동체로서의 동질감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조금, 아주 약간의 논쟁 끝에 담당 살림의 재분배가 이루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아주 잠깐,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았을 때 그렇게나 편했느냐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남편은 말했다. 사실 부인이 힘든 건 알고 있었지만, 부인이 집에만 있다는 건 자신에게도 일종의 휴식과 같은 편안함이었다고. 자신은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그럴 생각이 없지만, 결혼 후 일을 그만 둘 것을 종용하는 일부 남편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이 날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진 남편의 반성회, 그리고 원한을 실은 내 꿀밤으로 마무리됐다. 남편의 평안을 더 충족시켜 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나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내 목표를 향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 남편의 신혼 협의 미준수가 국내 살림 업계에 잠재적 손실을 초래했다는 것은, 일단 나만 아는 비밀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