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평소처럼 부모님과 함께 회식에 참여한 어느 날이었다. 회식 장소는 주로 번화가 고깃집이나 태종대 조개구이집이다.
이제는 알바생들이 내 또래다. 나보다 더 어린 알바생들도 있을 것이다. 음식점들이 밀집된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사 소주를 주문한 테이블마다 숙취해소 음료를 건네는 알바생들이 있지 않은가?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은 회식에서 시작된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A에서 나왔는데요. 오늘 B(타사 소주) 이용하고 계시네요. 저희 소주 하나라도 시켜주시면 지금 이 음료 서비스로 하나씩 드리고 있거든요. 어떻게… 한 번 이용해 주시겠어요?”
우리 아빠와 동료 직원분들은 항상 마지막에 한 병 시켜주지만, 알바생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화를 한다.
“으으응~ 우리 A 안 먹어요~”
“사장님, 그래도 한 병 시켜주시면 저희가 음료 한 병씩 다 챙겨 드릴게요. 한 병만 시켜주세요.”
“진짜죠? 그럼 여기 A 하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총 n분이시니까 여기 n개 드리고 갈게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엄마, 저 사람들은 빨리빨리 돌리고 알바를 끝내야 하는데, 그냥 시킬 거면 시키고 아니면 말고 하면 안 돼?”
“아빠랑 아저씨들은 그냥 장난치는 거다.”
“응? 나 불렀나?”
“아니, 나는 그냥… 우리는 장난 한 번이지만, 저 사람들은 그게 쌓여서 하루종일이 될 수도 있잖아. 저 사람들도 우리가 결국 마지막에 소주 시켜주는 장난인 걸 알아도, 일을 빨리 끝내고 싶고 힘들 거야.”
“그래. 아빠가 이제는 친절하게 바로 보내줄게. 나중에 B에서 또 올 거다. 있어 봐.”
“안녕하세요. 저희 B 이용해주시고 계시네요. 여기 한 분씩 챙겨 드시라고 준비한 숙취해소제 드리고 갈게요. 감사합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ㅇㅇㅇ(필명25), 봤제? 아빠가 친절하게 바로 해줏다.”
“어~ 알았어.”
“확실히 요즘 사람들이 B를 많이 먹고, A를 잘 안 먹으니까 A에서 홍보를 많이 하네.”
흡연자인 아빠와 몇몇 직원분들이 니코틴을 충전하러 잠깐 가게 밖으로 나가셨다.
직원분들 중 한 분의 아내분께서 우리 회식에 항상 참여하신다.(‘물건 못 버리는 엄마, 정리하자는 딸’ 글의 그분이 맞다.)
“아까 A에서 나온 학생 참 열심히 하네요. 그냥 대충 체크하고 음료 하나씩 돌리고 갈 수도 있는데, 회사 일을 본인 일처럼 끝까지 홍보하고… 마인드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친구들 중에 알바 시작한 애들도 꽤 있고, 친구들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많이 들어서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알바생들이랑 저랑 나이가 비슷하잖아요. 저 사람도 누군가의 친구고, 어쩌면 저도 친구로 만났을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원래도 진상짓은 절대 안 했지만, 제가 손님으로 온 입장이라도 알바생이 스트레스 안 받도록 더 잘해주고 싶어요. 알바생한테는 안 그래도 진상이 넘치잖아요.”
“맞아, ㅇㅇ(필명25)아. 아줌마도 알바생들을 보면 내 자식 또래가 많고, 아줌마가 일을 하러 가는 입장으로서도 그런 걸 많이 느껴. ㅇㅇ엄마, 그렇죠? 우리가 ‘그냥 우리 집에 정수기 점검하러 온 아줌마’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는 ‘누군가의 가족’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 이렇게 생각하면… 서로 괜한 오해 생길 일도 없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게요. 우리 엄마도 제 또래부터 거의 30년을 일했으니 오랫동안 뵌 거래처분들이 간혹 엄마한테 반말을 할 때가 있대요. 엄마가 아직 젊다고 생각하셔서 그런 것 같대요. 우리 엄마도 이제 50대인데… 그러면 바로 옆에 앉은 아빠도 갑자기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집에서 그 얘기를 들은 저도 제 엄마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속상하고 그래요. 그분들은 그만큼 오래 본 거래처가 친근하다는 표현일 수 있지만, 좋게 들리지만은 않는 것 같아요.”
“ㅇㅇ엄마, 그런 일이 있었어요? 으음, 많이 속상했겠다. ㅇㅇ아빠도 옆에서 개입하기도 좀 그랬을 거고…”
“저는 뭐 그러려니 하는데, 애 아빠가 속상해서 옆자리에서 표정 싹 굳는 게 보이니, 저도 빨리 출고시켜서 손님 보내드려야 할 것 같고 그렇죠.”
니코틴 타임이 끝나고, 얼마 전에 노견을 강아지별로 보낸 ㅇㅇ삼촌이 가게 안으로 돌아오셨다.
“응? 다들 뭔 얘기 하셨어요?”
“아, 삼촌. 제 친구들이 알바하면서 생긴 일들을 전해 들으니, 알바생들을 보면 제가 손님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다… 뭐 그런 얘기 중이었어요.”
“아, 아, 그렇네. 이제 ㅇㅇ이 나이가 그쯤 됐지. 사회초년생은 항상 힘들지. 삼촌도 처음 입사해서 그런 거 많이 느꼈어.”
“그렇죠? 안 그래도 친구가 풀타임 뛰고 11시에 버스 타고 퇴근할 때 저한테 전화하기도 하거든요. 근데 그날 있었던 일부 진상들, 같은 직원 입장인데도 정규직이랑 알바생 차별하는 얘기 같은 걸 쭉 들어보면… 저도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거에 속상하고 그래요.”
“어, 원래 사회초년생 들어오면 직원들끼리 정치질하고 그런 곳이 있지. 어른답지 못하고 그렇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헤맬 때 개기지 않고 수습하려 한다면, 입문자에게 따뜻하게 알려주는 고참이 많았으면 좋겠다.
높은 경험치는 “내가 낸데!”라고 내세울 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성숙한 태도로 포용할 수 있을 때 인정받는다.
따지고 보면 나중에 내가 받는 연금도 내가 낸 거 외에 입문자들이 많이 조달해 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