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 언어 정도는 기본 아닌가요?
인도인이 언어감각이 뛰어난 이유
인도 1년이면 힌디어를 읊는다
첫 주재원 파견 시 기계를 수리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아침이면 현지 에이전트 Agent의 기사들과 모여 어느 업체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누가 갈지 일정을 정하는 회의를 한다. 그날도 아침에 사무실에서 모여 오늘 방문할 업체와 문제점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물론 힌디어로 하고 있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참을 듣다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영어로 내 생각을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현지 직원들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며 물어봤다.
“필선, 너 힌디어 다 할 줄 알아?”
“아니.”
“근데 우리가 하는 얘기 어떻게 알았어?”
“느낌? 대충 다 들려. 다 듣고 있다. 조심해라.”
그다음부터 현지 직원들은 나에게 장난삼아 힌디어로 말하곤 했다. 나도 알아듣는 척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느낌을 보면 뭘 얘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은 이랬다. 당시 힌디어 공부를 조금 했었다. 그래서 아주 기본적이고 자주 쓰는 단어와 문장을 외웠다. 방향, 숫자, 생필품 이름, 의문사, 감탄사 등이다. 물론 그런 기초 단어만으로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인도 사람이 모르는 힌디어의 비밀이 있다. 힌디어라고 생각하며 사용하는 단어 중 상당수가 영어라는 점이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 라디오를 영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제품 수리에 관련한 회의다 보니 제품 관련 영어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그래서 가만히 듣다 보면 아는 힌디어 한 단어가 들렸고, 아는 영어단어가 들리고, 제품 관련 영어단어가 들렸다. 모르는 단어는 분위기나 제스처를 보면서 대충 유추를 한다. 그리고 1년 넘게 같은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니, 그들의 언어 습관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힌디어로 얘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대충의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힌디어 속 영어
인도에서는 영어를 생각보다 자주 접할 수 있다. TV 광고가 영어로 제작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진행되는 방송도 많다. 연예인들 인터뷰를 영어로 하기도 한다. 그래서 TV를 보고 있으면 영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인도인들이 영어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자주 듣다 보니, 영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쓰는 경우도 한몫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기간은 1858년부터 1947년까지 89년이다. 영국에서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 1769년부터 생각한다면 거의 200년의 기간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것을 생각하면, 인도에 영어가 스며들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일본의 통치를 받으면서 일본어가 자연스럽게 쓰였던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빠게스’, ‘스메끼리’ 같은 일본어가 익숙할 것이다.
한 번은 레스토랑에서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연인처럼 보이는 둘이 힌디어나 다른 언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연인들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분명 외국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만나면 ‘어떤 말을 할 줄 아세요?’라고 물어보고 서로 할 수 있는 말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3개 언어는 기본이죠
인도 사람은 보통 2~3가지 언어를 한다. 우선 모국어를 한다. 엄마나 아빠가 주로 하는 언어를 하고, 북부나 중부에서는 대부분 힌디어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언어를 한다. 모국어 1~2개, 힌디어, 거주지역 언어 이렇게 3~4개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운다. 인도인들에게 물어보면 산스크리트어가 고대어이고, 언어 체계가 잘 정리되어 있어 아이들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면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도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스크리트어를 배워서인지는 모르지만, 인도인들의 언어 습득 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단 4년 동안 어떤 교육이 했기에 고등학교 졸업자와 대학교 졸업자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차이가 궁금하다.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국어는 상당히 어려운 언어다. 그래서 외국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는 기간도 다른 언어에 비해 길고, 발음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에 다녀온 인도인 중에는 한국어를 정말 능숙하게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체류 기간을 물어보면 보통 1년에서 3년이다. 그런데도 마치 10년은 살다 온 사람처럼 한국어를 한다. 인도인의 언어 습득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종류의 언어를 익혀 언어적 감각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준어가 뭔가요?
인도에 가기 전에는 인도어는 힌디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언어는 한국어, 미국의 언어는 영어인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인도는 인도어가 없다. 즉 표준어가 없다. 물론 인도 정부에서도 표준어를 정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힌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발이 너무 거셌다. 특히 인도 남부지역의 타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인도는 표준어를 정하지 못하고 15가지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실제 사용하는 언어는 그 수를 정확히 알기도 힘들다. 25개의 고유 문자가 있고, 300개가 넘는 언어가 있고 방언까지 하면 대략 2천 개 언어가 넘는다고 한다. 각 지역에서는 지역의 언어로 만든 신문을 접할 수 있고, 방송도 각 지역의 언어로 방송을 하고, 영화도 각기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다.
인도의 다양한 지역을 다니다 보면 ‘과연 이 나라가 하나의 나라가 맞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언어도, 종교도, 계층도, 생김새도, 역사도, 심지어 음식도 다르다. 뭐 하나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인도 국민이라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 그래서 더욱 규정할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인도다.
반면, 우리는 조금만 사투리를 써도 의례 고향을 맞춰보거나, 성격을 어림잡곤 한다. 나와 조금만 다른 점,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의례 그 사람을 정의하려 들고 예측하려 한다. 그 예측은 대부분 엇나갈 때가 많다.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보이는 것으로 상대방을 분류의 틀 안에 욱여넣으려고 한다. 인도의 한 주 크기보다 작은 나라에서 사는 우리인데도 말이다.
처음 만나 잠깐 보이는 외형만으로 느긋한 사람, 성격이 급한 사람, 화가 많은 사람, 너그러운 사람으로 나누곤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는 항상 내가 옳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내가 모든 성격의 기준인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내가 극단적인 성격일지도 모른다. 우리 태양계는 우리의 중심이지만, 우주에서 보면 작은 변두리 은하 속, 그것도 아주 끝단에 있는 작은 변두리 태양계인 것처럼 말이다. 기준이 되는 것보다 내가 어느 끝단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