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핌비 Dec 23. 2019

13화. 타인을 이해 한다는 것.

나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산거야. 

언젠가 2호선 홍대 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 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듯했다. 할머니가 손자 이마에 손을 올려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손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대꾸했다. 

"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아떻게 그리 잘 알아요?"


순간 난 할머니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의 유형을 예상해 보았다. "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라거나 " 할머니는 다 알지"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 어설픈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 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 



 『언어의 온도 』처음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마음이 '철렁'하고 내려 앉았다. 내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 온 걸까?  


그동안 살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아이'나 '집안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일'을 등한 시 하는 동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11번의 제사.  제사 때 마다  작은엄마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엄마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육아로 힘들다는 친구들의 말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예쁜 아이와 집에서 있으면서  뭐가 힘들다고,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 했었다.


의사들에게 나는 환자였다. 그냥 고장난 장난감 같은. 그런데 '봉 샘' 만은  달랐다. 나를 대하는 행동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배려하는 것이 느껴 졌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봉 샘은 어렸을 적 뇌수술을 크게 받은 적이 있는 의사 샘였다.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백혈구가 떨어졌을 때 통화도 힘들고 만나는 것은 당연히 힘든데, 자꾸 자신들 시간 날때만 집을 찾아온다는,  친구들이  참 미웠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내가 아플 때 가장 힘이 되어 준 나의 벗 강여사는 10년만에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산후 우울증을 알았었다.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크게 기억나는 몇가지 이지만, 나는 그동안 살면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도, 이해하지도 않고 살았다. 오로지 '일'을 위해서만 전진하고 살았고, 그 외에 사람은 그냥 편안히 살면서 , 열정없이 살면서, 배부른 투정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아픈 사람, 힘든 사람...그리고 그것을 잘 견뎌내는 사람이 있었고, 그런 사람을 어루만져주는 '생각'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것이다. 

팩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말을 건낼 줄 아는 사람인 것이었다. 

상대의 말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 

이전 12화 12화. 쉬운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