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모로코였을까

모르고 가니까 모로코지~~~~~

by 제일제문소

작년 삿포로 여행기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여행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더 이상은 과거형으로 쓰면 안 될 것 같지만. 삿포로 여행은 함께 갔던 친구의 덕을 많이 봤고 모로코는 오랜만에 순도 100% 나의 의지로 기획된 여행이랄까. 그렇게 따지면 사실 굉장히 오랜만이다. 코로나 전에 갔던 포르투갈은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엄마를 위한 여행에 좀 더 가까웠으니 작정하고 멀리 떠난 건 동생과 미국에 갔던 때가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벌써 10년이 되었다.


여행에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따져보니 지난 10년 동안의 정신없던 삶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멀리 떠나고 싶은 나의 발목을 잡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너무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인스타든 유튜브든, 여행을 떠난 곳에서 '우와'하고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 이미 너무 눈앞에 있으니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두가 구글맵을 보고 다니는데 나만 대학생 때처럼 가이드북을 펼쳐가며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래저래 시큰둥했다.


그래도 이런 나에게 하나의 불씨는 있었으니 2019년에 다녀온 포르투갈에서 '엇, 이것 봐라?' 하게 된 새로운 풍경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유럽의 모습이 아닌 이슬람 문화를 살짝 곁들인 남부 유럽 특유의 풍경에 나의 마음이 동했던 것이다. 이건 못 보던 그림이다!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과 모로코가 되게 가까워서 사람들이 온 김에 금방 다녀온다고 하는 얘길 듣고 한 번 도전해 볼까 했는데 일정이 영 빠듯해서 실행하진 못던 기억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모나코인지 모로코인지도 정확하게 몰랐다.


모로코는 몰라서 좋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최대한 멀리, 낯선, 모르는 곳에 가서 혼을 빼놓고 싶었다. 몇 달 동안 내 속을 썩이던 것의 최종 결과가 곧 나올 참이었고 나는 사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그 일이 벌어졌을 때 한국에 있으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어떻게든 시선을 분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만 말하면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고 몰랐던 모로코는 알면 알수록 요즘 표현으로 '느좋' 여행지였다. 힙하고, 매력 있고 이런 말로는 충분히 표현이 안된다. '느좋'이 맞다.


모로코에 가기로 결정하고 이것저것 좀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정보가 많이 없었다. 몇몇 유튜버들이 모로코에 다녀오긴 했으나 크게 참고할만한 것도 없었고 생각보다 블로그 글도 많이 없었다. 오히려 좋아. 잘 선택했어. 아마 정보가 많았더라면 나는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가기도 전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기댈 곳은 <세계테마기행>과 <걸어서 세계 속으로> 뿐이었으니 적당히 눈으로 호기심만 채운 상태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패키지여행으로 가는 거라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텅텅 비워가는 여행도 괜찮은 것 같다. 매번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회사의 눈치를 봐가며 어렵게 낸 휴가로 가다 보니 멀리 갈수록 어떻게든 본전을 뽑으려는 여행만 했었는데. 굵직하게 한 번 훑고 가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도 꽤 괜찮았다. 여행지에서의 집중도가 좀 더 높아진달까? 그리고 내 알고리즘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모로코, 이슬람 문화권이라니, 아프리카 대륙이라니,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의 도파민은 충분했다.


그런데 뭐 하나 좀 이상하지 않은가? 새로운 자극과 도파민을 부르짖으면서 패키지여행이라니. 정해진 스케줄 안에서 단체로 움직여야 하는 그 패키지.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다.


+ '모르고 가니까 모로코'는 현지 가이드분의 멘트였다. 모로코에 17년째 살고 계신 교민분이셨는데 이 멀리까지 와서 살게 된 이유에 대해서 딱히 대답은 안 하시고 '모르고 왔어요. 모로코'라고만 말씀하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