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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패키지로 갔을까

통제되지 않는 삶에 지친 J의 과격한 선택

by 제일제문소

사실 나는 패키지여행은 제대로 된 여행이 아니라는 시건방진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찾아본다고 뭐 대단한 것들을 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히 뭔가 정해진 게 싫었다. 아마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고, 쇼핑이나 옵션 추가 같은 것들 때문에 내 마음대로 고삐를 풀 수 없어서(?)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정말 특별한 이유가 아닌 이상 패키지는 내 여행의 선택지에 없었던 것인데 나는 왜 모로코를 패키지로 간 것일까.


귀찮았다. 너무 많은 계획과 그 계획들에 대한 배신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나의 삶에 지쳐서 그런지 아무 계획도 짜고 싶지 않았다. 긴 시간이 지나 돌아봤을 때, 인생의 묘미는 그 계획대로 되지 않는 데서 오는 건데 지금의 나에게 그런 일이 더 벌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짜고 쓰고 매운 일이라 아예 솥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사의 오랜 노하우와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으로 완성되었을 거라 추측하는 패키지를 선택했다. 그 일정에 나는 몸만 실으면 되니까. 혹시나 조금 재미가 없어도 내가 들인 공수가 없으니 크게 손해 보는 느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좀 무서웠다. 지금에야 와서 하는 말이지만 국제 정세에 대해서 깊게 공부하지 않는 한 절반은 미국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슬람국가를 동양여자 혼자 간다는 건 엄청난 도전처럼 느껴졌다. 현지에 가서 투어그룹을 찾거나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한해서는 일단 나의 여행 수준이 레벨 0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무모한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럽, 아시아라고 특별히 더 안전한 것도 아닌데 진짜 겁 없이 돌아다닌 걸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예전보다 상당히 쫄보가 되어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궁금했다. 내가 선택한 패키지는 꽤 비싼 패키지였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데 오는지 궁금했다. 엄마의 성당 친구분들, 친구의 아버님 등 꽤 연령대가 있는 분들이 많이 오신다는 것은 대략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 실체를 좀 보고 싶었다. 재작년부터 여행과 관련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계속 느낀 것이 한국 사람들이 진짜 여행에 투자를 많이 하고, 다른 것들은 줄이더라도 이 경험은 끝까지 가져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유럽, 동남아, 일본은 나도 드문드문 가봐서 대충 알 것 같고, 이 아프리카까지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로코 여행을 선택한 것처럼 패키지 또한 아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자유여행을 한답시고 계획을 짜려고 들면 나는 아마 떠나기도 전에 지쳐서 '그냥 가지 말까..'하고 시무룩하게 한국에 있었을 것이고, 돈을 좀 아끼겠다고 가성비 패키지를 선택했으면 쓸데없이 눈만 높은 내 성에 차지 않아 돈은 돈대로 쓰고 투덜투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공부를 하나도 안 해갔더니 현지에서 따라다니며 듣는 설명이 더 궁금하고 귀에 쏙쏙 들어와서 좋았다. 여행을 통해서 모로코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조각들을 몇 개 가져왔으니 이제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빠진 조각들을 채울 생각을 해본다. 오히려 더 긴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떤 패키지로 갔길래 이렇게 만족도가 높았던 것일까. 그것은 또 다음 글에서 설명을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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