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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May 09. 2021

뜻밖의 선물

왜 선뜻 정이 가질 않을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의 사연이 화재가 된 적이 있다
50대 가장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고
유품으로 남겨진 남편의 지갑을 보며 아내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인생사 죽고 나면 남는 거 하나 없다 지만
정말이지 이 남자가 죽고 나서 보니 남편의 물건은 옷 몇 가지와 책 몇 권 사고 당시 바지 뒷주머니에 불룩 히 꽂아져 있던 지갑이 전부였다고 한다



장사를 치르고 난 후
먼저 간 남편의 지갑을 펼쳐보다 아내는
한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그 자리에 철퍼덕 엎드려 한참을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흐르던 눈물이 멈춰 설 즈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지갑을 펼쳐 보았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에서 남편의 유품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천국인지 지옥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두꺼운 지갑 속의 한쪽면에 투명한 비닐 처리가 된 부분엔 오래전 셋이 찍은 가족사진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레 사진을 꺼내어 보았다
사진이 비닐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걸 억지로 떼어 내었더니 사진의 인 화면이 비닐에 옮겨 붙어 흐릿한 사진만이 내 손에 쥐어졌다
오래전 아들과 함께 애버랜드에 놀라갔을 때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이었다
아들 바보였던 남편은 힘들 때마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름을 달랬을 것이다
아들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남편..
그렇게도 사랑하던 아들을 남겨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지 참으로 하늘이 원망스럽다

반대쪽 카드 칸에는 신용카드 한 장과 운전 면허증
cgv카드 할인권과 은행 직불카드 한 장이 꽂혀 있었다
지갑에 도대체 무얼 넣어 다니길래 이렇게나 지갑이 두껍나 궁금하였다
지갑 안쪽에서 나온 명함들이 십여 장이었다
거래처 명함부터 삼겹살집 명함까지
참으로 꼼꼼하다고 해야 할지 엉덩이가 무딘 건지
지갑을 저렇게나 두껍게 가지고 다닐 거면
명함 지갑이라도 하나 따로 사줄걸 하는 마음에 다시금 눈물이 흘러내렸다

회사에 아직 청구하지 못한 주차 영수증과
식대 영수증 몇 장
식대 영수증 시간을 보니 하나 같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 때 영수증이었다
 
혼자서 일처리를 하러 다니다 보니
때를 놓치는 경우들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혼자서 매일 늦은 점심을 해결한 걸 뗘 올려보니
참으로 무얼 위해 저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허망하기 그지없다
영수증의 식당 대부분은 갈비탕 설렁탕집이 많았다
혼자서 먹기 편한 음식을 주로 먹었던 것 같다
남편은 혼자 밥 먹는 걸 싫어하는데 매일 같이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나 보다
보통 7천 원 8천 원.. 8천 원을 안 넘은걸 보니
아마도 회사에서 처리해 주는 식대 값이 8천 원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주차 영수증과 식대 영수증을 차곡차곡 펴서 편지봉투에 담아 놓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복권 몇 장..
땀에 젖어 분홍색 종이에 얼룩이 진채로
지갑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날짜가 지나 엑스표를 쳐 놓은 복권 3장과
5천 원 당첨이 된 1장의 복권..
그리고 아직 맞춰보지 못한 복권 3장까지 한 번에 겹쳐서 접혀있는 7장의 복권이었다

남편은 매주 5천 원짜리 복권 3장씩을 사는 걸 알고 있었다
한 번은 맞지도 않는 복권을 왜 매번 돈 아깝게 사느냐고 타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게 나의 유일한 희망이야
복권을 사지 않으면 희망도 없지만 복권을 사야
그 희망으로 한주를 사는 거야"

이렇게 말하며 나에게 복권 사는걸 뭐라 하지 말라던 남편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고 홀어머니 건사하며 우리 세 식구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복권 사지 말고 그 돈으로 차라리 보험이나 들라고 했던 말이
지금 나에게 최고 후회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그 얘길 들은 남편의 심정은 어땠을까?
희망마저 갖지 말고 보험이나 들어 나중에 아프면 약값이라도 나오게 하라는 말로는 듣지 않았을지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파 울어도 울어도
울음이 멈추질 않는다

그리고 지갑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만 원짜리 몇 장과 천 원짜리 몇 장
이게 남편이 내게 남기고 간 전부이다
이렇게나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건지..

지갑이나 새 걸로 하나 사줄걸
요즘 누가 지갑을 20년씩이나 쓰고 다닌다고
이 지갑이 그래도 돈을 불러오는 지갑이라고
한사코 거절하며 밑부분이 너덜너덜한 지갑을
그렇게나 애지중지 했는지...




<어버이 날 선물>


저녁 식사를 마치고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티브이 앞에 서서 실실 웃는다
허리 뒤로 두 손을 감춘걸 보니 뭔가 준비한듯하다

내일이 어버이 날이니 은근히 기대는 하고 있지만
꽃이 아니라 궁금하기도 했다

"뭔데?.. 선물이면 빨리 줘"
"짜잔~아빠 이게 뭔 줄 알아?
어서 끌러봐.. 아마 깜짝 놀랄걸~"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은 아직 내 눈엔 초등학교
아이처럼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다
그런 아들이 처음으로 번듯한 선물을 준비한걸 보니 20년 키운 보람을 느낀다

선물 포장이 화려한걸 보니 값비싼 물건 같아 보였다
서프라이즈로 상자만 명품에 속은 그지 같은 게 아닌가 내심 기대 반 실망감 반으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상하지 못했던 선물은 지갑이었다

평소 아내에게 지갑 좀 바꾸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들이 그 얘길 귀담아 두고 있었나 보다

"아빠 이제 저 낡은 지갑 좀 버려"



그래..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래도 썼다
누나가 일본 다녀오면서 사다 준 지갑
언제지? 언제지?  날짜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결혼을 한 그해 20년 전에 선물로 받은 지갑이었다

살면서 시간을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한
금고 같던 지갑이다

지갑을 펼쳐 큰 한숨으로 냄새를 맡아본다
새 가죽 냄새가 나쁘지 만은 않다
옛날 지갑과 새 지갑을 나란히 놓아보았다
어제 까지 잘 가지고 다니던 지갑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아들에게 받은 뜻밖의 선물이 너무 좋고 기쁘지만
아직 지갑의 내용물을 바꾸지 않고 있다
나와 함께한 20년이 지난 지갑
아직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나이와 같은 20년이 된 나에겐 많은 추억이 담긴 지갑이다


오늘 하루만 더 보관하고 새 지갑으로 바꿔야겠다
와이프와 아들이 나중에 눈물 흘리며 지갑을 바라보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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