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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Sep 20. 2024

가을의 걸음

똑똑똑 누구십니까

두드리는데 말이 없으니 쥐 죽은 듯한 고요에

머쓱해진 상태로 머리를 긁적인다

있으면 기척이라도 내주지 그럴 건 또 뭐야


뚝뚝뚝 빗방울인가

닿은 물기 걷어내며 올려다본 곳에는

회색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것이

네가 온다는 수신호일까

아직은 아니라는 토닥임일까


톡톡톡 건드려지는 것들이 울컥해질 때에는

미련한 발걸음을 탓해도 본다

하지만 넌 엉금거리는 느림보라 

빨리 달리라 소리도 못 내겠다

그러다 성큼 걸어 나가 돌아오지 않을 테니


내가 뭣 때문에 네 눈치를 보게 된 거냐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인 것을

뭐 그리 애지중지 갓난아기처럼

못 봐서 안달이냔 말이다

누가 보면 짝사랑이라도 하는 줄

애달프다 애달파


너는 안중에도 없고

출발 선에없어 보이건만

기다리는 게 뭣이 좋다고

창밖을 내다보며 턱을 괸다


설핏 등 두드리는 소리에

잠든 내가 끔뻑 일어나 보지만

그것은 착각 대착각

제대로 된 몽상


지친 기쁨을 선물해 주려거든 오지 말거라

그 정도로는 옥신각신할 거리도 안된다

제대로 쾌활한 바람 아니고서야 눈도 깜짝 않을 테니

우리가 가만히 머문다고 가마니는 아니란다


그래도 오면 좋다고 무른 마음이 싱숭생숭

진짜냐 아니냐 오락가락 나도 모르겠다만

아무렇지 않게 시치미뚝 떼고 걸어온다면

좋다고 달려갈 내가 아니겠니 어설프게도


속내 들켜버린 죄는 용서 가능하다니

나도 모르겠다 팔 벌리고 안아줄 테니

부끄러워말고 냉큼 오너라

다 품어줄게 다 안아줄게

지난날의 장난꾸러기는 모두 잊어줄게


모두의 바람을 알고 그러는 거라면 유죄

모르고 엉성한 채 서성이는 거라면 무죄

겁을 낸다면 한걸음부터 시작해

성급한 건 우리도 싫으니까


돌부리 조심하고 느릿 거리며 와도 돼

무리하다 체할라 그런  바라는 게 아니야

제대로 차게 식혀서 오는 게 나으니

큰 양동이에 얼음 동동 띄워 살펴 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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