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자전에 대해서
출근길 경로의 몇가지 옵션 중에서 가장 우울한 것은 좌석버스에서 서서 가기이다. 좁은 통로에서 의자를 붙잡고 서있으면 의자에 앉은 행운아들의 표정이 보인다. 그들은 입을 꽉 다문 채 침통하게 눈을 질끈 감고 있거나, 아니면 핸드폰만 매만지고 있다. 우울하다. 그럴 바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당산철교의 한강 물빛을 바라보는 편이 낫다.
반대로 퇴근길 경로 중 가장 좋은 건?
버스다. 한강대교 저편에서 붙타는 저녁놀을 볼 수 있으니까. 앉아서 보는 행운이라도 잡는다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우뚝 선 건축물들이 역광으로 시커멓게 보인다. 매일매일 하늘에선 저런 장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연주를 떠올린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일터로 나가고 집으로 돌아가고.
해질녘 상기된 서울역의 모습을 좋아한다. 지붕이 둥근 건물중 국회의사당보다는 서울역이 낫다. 불빛도 색깔도 훨씬 다채롭다.
마치 이국의 성이라도 되는 듯, 여행자의 시선으로 새삼스럽게 서울역을 바라본다. 서울역 근처에는 실제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외국인을 마주칠 수도 있다. 내일도 분명 저곳에 있을 터이지만 지금 저 모습을 보고 황급히 해가 더 기울기 전에 마음속에 스케치한다.
집에 도착할 때쯤 가로등이 켜지고 자동차들도 라이트를 비추고 지나간다. 늘어선 가로수의 실루엣이 정겹다.
하늘에 흰 점이 별인가 싶어 올려다보니 달이 떴다.
수고했다.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길을 갈 것이다. 내일도 같은 시간 즈음에 해가 뜨고 해가 지겠지. 일터에 가겠지. 그리고 버스에 앉아서 일상이 과학이구나, 역시 지구가 자전을 하는구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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