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 생각하는 일의 본질
“네가 소상공인을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고 해!”라는 대사가 영화 극한직업에 나온다. 거물급 마약 범죄자를 잡기 위해 치킨집을 차려 운영하는 주인공 형사반장이 마지막 혈투에서 범죄자 두목에게 외치는 장면이다. 시종일관 웃기는 영화지만, 이 대사에 울컥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목숨 걸고 일한다는 말이 각자의 힘든 현실과 공명해 마음을 흔든 모양이다. 소방관은 목숨 걸고 일하는 대표 직업이다. 미국 911테러의 현장으로 달려갔던 래더 118팀처럼 언제든 마지막 출동이 될 수 있다. 위험한 현장에서 살아 돌아와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소방청이 2019년 5~6월 두 차례에 걸쳐 전국 소방공무원 5만2245명에게 물어보았다. 참혹한 현장에 노출된 경험은 연간 평균 7.3회였고, 전체의 5.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군, 4.6%는 우울증 위험군, 4.9%가 극단적 선택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소방공무원의 평균 수명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인 81세보다 무려 12년이나 짧은 69세로 공무원 직군 가운데 가장 짧다. 그들이 목숨 걸고 일하는 이유는 뭘까?
항상 일치하진 않겠지만, 사람들은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과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좋은 집에서 살려면 경제적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좋은 집을 찾을 수 있는 눈이다. 중요한 것은 시선의 방향이다. 지나가다 멋진 집을 보면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집을 좀 아는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집을 판단하지 않는다. 집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은 집 바깥에서 집을 향하고, 집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의 시선은 집 안에서 집 바깥을 향한다. 집이란 집 밖에서 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집 안에서 살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그림 같은 풍경이란 집 안에서 집 바깥을 바라보는 풍경이다. 시선의 방향이 반대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집도 밖에서 보며 판단하는 것과 집 안에서 살아가며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인생도 집도 살아봐야 어떤지 안다. 인생을 끝까지 살아보지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직업을 가지기 전에 특정 직업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막상 그 직업인이 되어 일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직업을 가지기 전의 앎과 직업인이 된 이후의 앎은 다르다. 몰랐던 것을 하나둘 알아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당사자가 되면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바뀐다. 집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180도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소방관은 오해가 많은 직업이다.
공식 인터뷰가 아닌 사적 자리에서 현직 소방관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도 소상공인, 평범한 회사원과 똑같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왜 이 일을 하냐 물으면 기대하는 근사한 대답이 아니라, 경제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대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역시 어쩔 수 없이 돈이구나! 라는 생각에 김이 빠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나누다 보면 기대처럼 남에게 도움을 주며, 생명을 구했을 때의 보람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그마저도 때때로 느낄 뿐 일상에서는 여느 직업처럼 습관처럼 일한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의 기대처럼 숭고한 소명의식, 일상을 지배하는 직업적 보람과 가치 때문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위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소방관도 여느 직업과 똑같다. 하지만 다른 직업과 달리 소방관만의 업무적 특성 때문에 특히 강하게 요구되는 자질이 있다. 그건 책임감이다.
책임감이란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책임감이 요구되지 않는 직업은 없다. 직업뿐 아니다. 일상의 삶도 마찬가지다. 밀린 숙제를 할 때, 약속할 때, 사소하게 주고받은 말, 습관처럼 보낸 문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이다. 가족, 친구, 연인, SNS친구, 여러 이름으로 맺은 그물망 같은 관계 속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삶이다. 그래야만 그 관계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책임감이란 싫든 좋든 해야 할 일을 마땅한 하는 태도다. 주어진 책임, 했던 말을 지키지 않고, 그때그때 감정의 상태에 따라 말이 계속 달라진다면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같이 일하기도 싫어진다. 우리는 믿음이 가는 사람과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함께 일하길 원한다. 사소한 계기로 친구와 등을 돌리고, 평생 사랑하기로 한 약속을 저버리고, 가족 간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다 못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몹쓸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책임감이 있다는 것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생활은 어떠하든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일과 삶에서의 책임감은 서로 닮아가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도 맡기길 꺼린다. 곤란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없다면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직업을 구하더라도 서로 힘들어지며, 일상의 삶도 건강하게 유지하기 힘들다.
책임감을 발휘해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어떤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무책임하다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진정으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은 그만큼 현실 상황에서 책임 있는 태도를 가진다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책임감은 책임지기가 쉬울 때 요구되는 역량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책임질 수 없을 때 책임감이 요구된다. 아무리 해도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책임지기 힘든 상황, 책임질 수 없는 상황,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실패가 뻔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때 요구되는 역량이 책임감이다. 할만해서, 하고 싶을 때 해 보고, 잘 안되면 그만둬버리는 것은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 책임진다는 것은 하기 싫고, 멈추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너무너무 힘들어 모두 포기하고 싶을 때, 그런 마음과 싸워 기어코 끝까지 해내고자 하는 결연한 마음이다. 책임진다는 것은 아무리 상황이 나빠져도 자신이 한 말, 해야 할 일을 기어코 해나가는 마음, 태도, 행동을 뜻한다. 그런 결연한 책임감의 끝판왕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태도다. 죽을 각오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하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 순간 출동해야 하는 직업이 소방관이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 바치며 일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장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소방관의 궁극의 책임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소방관의 책임감과 다른 직업인의 책임감은 다르고,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저마다의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한 일상의 책임감은 서로 다른 것일까? 아니면 같은 것일까?
책임감은 강과 같다. 책임감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아는 것은 강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아는 것과 같다. 발원지는 강의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곳이다.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는 황지연못이다. 두 곳 모두 강원도 태백에 있다. 책임감의 발원지는 마음속 가치라는 연못이다. 검룡소에서는 사계절 내내 하루 2,000~3,000톤, 황지연못에서는 하루 5,000톤의 물이 솟아난다. 길이가 500km가 넘고, 폭이 1.5km가 넘는 한강과 낙동강을 이루는 어마어마한 물은 유역에 내리는 비, 지천에서 합류되는 물, 지하수 등에서 유입된다. 강의 본류를 이루는 물의 총량으로 볼 때 검룡소와 황지연못이 담당하는 몫은 극히 일부지만, 마음속 가치에서 솟아나는 책임감은 삶에서 필요한 모든 책임감을 채우고도 남는다. 오랜 세월 발원지에서 솟아나는 수천 톤의 신기한 물처럼, 책임감의 발원지에서 솟아나는 것은 나만의 삶의 가치다. 책임감의 본질은 시키는 일을 무조건 하는 묵묵함, 싫어도 억지로 참고 해내는 인내심과 끈기가 아니다. 책임감의 본질은 각자 마음속의 빛나는 가치다.
산다는 것은 나와 세상을 연결지어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고, 직업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은 나와 일을 연결지어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세상, 사람, 일과 연결지을 내가 없다면 삶도 직업도 사랑도 할 수 없다. 내가 흐릿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살고, 일하고 사랑하는 척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사는 삶은 나의 삶이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어도 허무한 마음이 드는 이유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 이루고 싶은 가치, 삶을 바치고 싶은 가치, 목숨까지 내놓을만한 나만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삶과 목숨을 바치고,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참아내는 건 모두 나만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이루기 위함이다. 어떤 가치가 나만의 본질적 가치인지는 자신만이 안다. 이것을 알아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하고, 경험하고 고민한다. 그렇게 배우고 얻은 나만의 가치는 내 삶을 책임지는 버팀목이 된다. 삶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사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아직 나의 가치를 찾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빛나는 보석을 아직 찾지 않았으니 또한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본질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말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삶과 통한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타인의 삶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소중한 삶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삶을 바치기도 한다. 소방관처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도 내놓는 소방관의 숭고한 책임감의 발원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든 용기로 맞서든 상관없이 나만큼 중요한 타인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상황을 마주하는 태도가 소방관의 본질이다. 내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책임감과 세상을 위해 삶을 바치는 책임감은 같은 강물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마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원해서 흐르고 흘러 타인의 삶도 자신의 삶만큼 가치 있게 여기는 도도한 인류애의 강이 된다.
소방관이 죽음의 상황 앞에서도 직무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선택이 자신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답다는 것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책임감은 나다운 삶에 대한 스스로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책임 있게 일하는 사람은 스스로 믿는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사람이다. 가치에 헌신하는 사람은 큰 목표를 이루고 자신과 타인, 세상을 살린다. 진짜 책임감으로 일하는 사람은 세상이 몰라주어도 삶을 걸고 나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삶에서 건져 올린 가치를 일을 통해 실현하기 위해 의견을 말하며 생각을 주고받고, 문제를 기필코 해결한다. 툭하면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며 뉴스에 나오는 이들처럼 하다 안되면 언제든 그만두는 사람은 아직 책임질만한 일을 찾지 못했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다. 일을 책임 있게 한다는 것은 책임 있게 산다는 뜻이다. 삶을 바칠 정도의 본질적 가치를 찾아 헌신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행복이다. 행복을 위해 내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이루어가는 삶은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하다. 책임감은 행복한 삶에서 발원한다. 자신과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나답게 일하기 위해, 나다운 가치를 위해 삶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 더 큰 행복을 위해 삶을 바쳐 책임지는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소.방.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