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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03. 2023
4학년, 여교사 실종 사건
그 것이 알고 싶다
1. 5살 여자 몸 만지기
2. 6살 실미도 외삼촌 박병장 사망 사건
3. 1학년 학교 앞 횡단보도 사망 사건
4. 4학년 블록담 붕괴 사망 사건
5. 5학년 여교사 사망 사건
1. 나는 어떻게 사회화되었나
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나는 왜 이런 성격이 되었을까? 나는 어떻게 사회화된 것일까?
궁금했다. 나라는 인간이. 어릴 적 나를 찾아 떠났다.
내가 누나와 여자 친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여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 6학년 누나와 서로의 몸 만지기를 통해서였을까. [1] 이 건 몇 살 때 일인 거야.
톰크루즈 출연의 베트남 반전영화 7월 4일생 헬기 소리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는데 왜 그랬을까. 어려서 실미도 사건 시체를 확인하러 갔을 때 들었던 헬기소리 때문일까. [2]
실미도 사건 때 나는 도대체 몇 살이었나. 국민학교 앞 횡단보도를 덮친 버스에 학생들이 죽었는데, 나는 뭐 하고 있었지. 블록담이 봄날 서북서풍에 무너지던 날,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 이 건 몇 학년 때 일인가.
아버지에게 묻고, 과거 신문을 찾았다.
신문에 있을까. 실미도 사건은 신문기사와 생존자의 증언이 있었다. 국민학교 횡단보도 학생 사망 사건을 찾았다. [3] 과연 있을까. 과거 조선일보 기사를 검색했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검색 시기를 좁히고 좁혔다. 수많은 검색어를 대입해 보고, 실패하고, 또 시도해서 겨우 찾아냈다. 야~ 정말 있네. 내가 겪었던 일들이 신문에 보도되었네.
서부이촌동 블록담 붕괴 사망 사건을 찾았다. [4] 조선일보 과거 기사를 찾았지만, 없었다. 몇 주 후 다시 시도했지만, 다른 붕괴 사건만 나왔다. 몇 달이 흘렀다. 또 도전했다. 그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 언제였는지를 찾아 들어갔다. 서부이촌동 사망 사건을 뒤졌다.
수개월 만에 '황사현상 속 강풍사고'라는 동아일보기사를 찾아냈다.
2. 선생님 실종 사건을 찾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알고 싶은 게 있었다.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알고 싶었던 사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건지. 나를 둘러싼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 건지.
'서울 n국민학교 여교사 인천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방송을 버스에서 들었을 때,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그 여자 선생님 얘기라고 직감했다. 4학년 우리 담임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자 선생님 실종 사건. 어떻게 된 걸까. 당시 그 선생님 이름도 몰랐지만 너무도 알고 싶었다.
정수정(가명) 선생님은 어떻게 죽었을까? 예뻤던 선생님은 그 젊고 활짝 핀 인생을 어떻게 마감하게 됐을까? 왜 인천 앞바다에 떠올랐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른이 되고 나서도 40여 년 전의 일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1년 전. 4학년 이후 시간을 좁혀가며 조선일보를 검색해 보았다. 일단 선생님 이름도 모른다. 무슨 수로 검색하지.
여자 선생님 변사 / n국민학교 여교사 죽음 / oo국민학교 여교사 실종
여러 검색어를 동원해 찾아보았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3. 선생님은 환했다
시간은 흘렀다. 어딘가에 자료가 꼭 있을 것 같았다.
몇 달이 지나 또 뒤져 보았지만 허탕만 쳤다. 그 후 또 몇 달. 마침내 찾았다. 신문 검색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었나 보다. '학교명'과 '실종' 또는 '여교사'라는 어구로 검색이 가능했다. 과연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수정(가명) 선생님은 4학년 우리 반에 자주 찾아왔다. 그 해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1976년이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도 여자였기 때문에 서로 친한 것 같았다. 정 선생님은 아기 같은 피부에 왼뺨에 보조개가 들어간 얼굴이었다. 점심 때면 항상 우리 반에 놀러 왔고, 우리 반은 환해졌다. 정 선생님이 웃으면, 왼쪽 입꼬리가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향했다.
목소리도 불이 켜진 듯 환했다. 저렇게 예쁜 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으면 얼마나 좋을까. 턱을 괴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오길 기다렸고, 예술품을 감상하듯 바라봤다. 정수정 선생님은, 4학년 내내 찾아왔다.
해가 바뀌어 5학년이 되고, 남녀 분반이 되었다. 경림이와 나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학교의 수작인 듯했다. 잔인한 4월이 되었고, 1학년을 맡았던 정수정 선생님이 학교에 1주 이상 나오질 않았다.
아무도 이유를 몰랐고, 실종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4. 삼각관계
정수정 교사는 서울교대 1학년 때, 2학년 이(李)씨와 결혼을 약속했었다. 교사 발령 후 1975년까지도 이(李) 씨와 사이는 좋았다. 그러다 1976년 우리 반에 놀러 올 때는 동료 교사였던 한(韓)씨와 사귀어 삼각관계가 된 상태였다. 애인 이(李)씨는 군복무 중이었고.
정(鄭) 교사는 이(李)씨와 결혼 약속을 했지만, 6살 위인 동료 교사 한(韓)씨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李)씨는 시커먼 말단 사병이었고, 한(韓)씨는 자리가 잡힌 듬직한 동료 교사였으니까.
그녀는 갈등했을 것이다. 이(李)씨와의 인연을 끊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1977년 4월 15일 실종 전날, 밤 10시 그녀는 한(韓)씨와 함께 귀가했다. 휴가 나온 이(李) 병장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와 만나 말다툼을 했다.
다음날 4월 16일 정 교사는 오후 1시쯤 이병장의 전화를 받은 후, 동료 교사들에게 하소연했다.
"무슨 수라도 내야지, 정말 못살겠다"
그날 정(鄭) 교사는 인천 월미도 관문여관에서 이(李)씨와 밤을 함께 보냈다. 담판을 지을 모양이었다. 밤새 잠 못 자고 실랑이했다. 하소연 · 큰 소리 · 눈물 · 한숨 · 원망 · 욕설 ~
5. 실종 후 발견
다음날 새벽 5시 30분, 그녀는 여관 주인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해, 혼자 나간 후 실종 되었다.
실종 37일 만에 그녀는 외상 없는 표류시체로 발견되었다. 청색 스커트에 청색재킷, 붉은 줄무늬 블라우스, 잿빛 구두차림이었다. 방수기능의 자동 시티즌 손목시계는 그때까지 작동하고 있었다.
실종 5일 만에 학교로 한 통의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12만여 원이 들어있는 자치회비 예금통장과 도장 그리고 정교사 주민등록증이 들어 있었다. 봉투의 글씨는 정수정 교사의 필적이 아니었다.
경찰은 수사 방향을 네 갈래로 정했다. 이(李) 병장에 의한 살인, 자살, 제3인물에 의한 피살, 단순가출 등.
군에서 조사를 받은 이(李) 병장의 혐의는 찾지 못했다.
경찰온 정(鄭) 교사가 숨진 뒤 바다에 던져졌는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뛰어들었는지, 약물에 중독됐는지 등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가검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결과 정(鄭) 교사의 폐, 간 등에서 플랭크톤이 검출, 바다에 빠진 후 물을 마셨음이 확인됐다.
6. 자살이라면
경찰은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①정(鄭) 교사가 새벽 5시 30분 애인 이(李) 모병장(25)과 함께 투숙했던 관문여관에서 혼자 나갔으며 ②평소 이(李) 병장과 한(韓) 교사를 두고 삼각관계로 고민한 점 ③외상이나 목 졸린 흔적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정(鄭) 교사가 ① 실종된 후 학교로 우송된 우편 봉투의 글씨가 정(鄭)양의 필적이 아니고, ② 자살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도 없어 ③ 다른 사람이 떼밀어 익사했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그 이후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정(鄭) 교사가 실제 자살을 했다면, 16일 밤 자살할 만큼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살인사건이라 단정했다. 내가 좋아했던 정 선생님을 다시 살려 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건 내 감정일 뿐.
이(李) 병장도 나름의 입장이 있을 것이지만, 당사자가 아닌 나는 진실을 알 수가 없다. 정(鄭) 교사의 부모님은 사건의 내막을 알고 싶어 장이 썩었을 것이다. 다 키운 사랑스러운 딸의 죽음을 어떤 부모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4학년 우리 반에 웃음 띤 얼굴로 봄을 몰아왔던, 그녀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니.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사랑과 죽음은 동격인가.
그들 모두에게 묻고 싶다.
꼭 그래야만 했냐고.
편안하지 못할 그녀이지만, 그래도 평안하기만을 기원한다.
ps 실제 과거 신문기사는 오늘날의 신문과 달리 사람 이름까지 자세하다. 아래 기사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가명으로 처리했다.
◎ 1977.05.25 조간 7면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