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요즘과는 제법 달랐던 시절이었다. 집으로 돈 버는 시대는 갔다며, 세입자들이 집주인들에게 당당해질 때가 머지않았음을 주장하는 집값 폭락론자들이 당당하게 강연을 다니고 집값의 바닥을 칠 때가 언제일지 모르겠다는 언론 보도가 줄을 잇던 그때, 나는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혼식장 예약, 신혼여행 준비부터 지금은 아내가 된 그녀와 함께 핑크빛 꿈을 펼쳐갈 집을 마련하는 일까지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 준비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던 건 내 집을 어디에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였다.
보통의 예비부부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많이 싸운다. 싸우게 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집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다툼이 있다는 걸 결혼을 해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집은 결혼자금 대부분이 투입된다. 또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결혼 후의 삶의 질과 삶의 방향이 변할 수 있어서 함께 살 집을 구하는 일은 예비부부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며 순조롭게 결혼을 준비하던 중 살 집을 고르는 일은 내게 결혼이 현실이라는 걸 최초로 깨닫게 해 줬다.
사내부부가 함께 살 신혼집이라면 우선 회사 가까이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회사는 서울의 금싸라기 땅 한복판에 있어서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얻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부모님 재정적 도움 없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추진해왔던 나와 아내의 여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물론 그 당시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회사 근처의 아파트를 샀더라면 지금에 와서는 몇억을 벌었다는 성공에 취해, 당장 손에 쥔 돈은 없어도 의기양양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나와 아내로서는 도저히 그런 결정을 할 용기가 없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한 사람 월급을 온전히 대출금과 이자를 갚는 데 사용한다는 건 하우스푸어나 하는 짓이라고 믿었다. 결국, 나와 아내는 회사가 위치한 전철역에서 밑으로, 더 밑으로 내려가 1기 신도시 중 한 곳의 17평 구축 아파트를 반전세로 시작하게 됐다. 곧 죽어도 빌라는 싫다는 내 의견과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이 절반씩 반영된 결과였다. 출퇴근은 조금 힘들었지만, 그 동네는 살기에 참 좋았다. 계획도시라서 관공서가 가깝고 공원도 충분했으며 외식할 곳도 넘쳤다. 나와 아내는 행복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동네에 잠시 안착한 행상꾼 부부처럼 마음 한편이 항상 불안했다. 2014년은 집값의 바닥이었다. 2015년과 2016년을 지나면서 집값이 점점 올랐다. 덩달아 전세금도 따라 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주인이 반전세를 ‘완전 전세’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대로는 떠나야 할 때가 올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 놓고 있었다. 좁은 집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싫었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집 근처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야속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던 2017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출근길에 회사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부동산 카페의 글을 읽고 있는데, 당시 살던 곳 근처 도시의 공공분양 아파트 미분양 공고가 났다는 글을 봤다. 지금의 청약열기를 보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빨리 알아보니 청약통장이 없어도 무주택자라면 청약할 수 있었다. 아내의 동의를 구한 후 신청해보기로 마음먹고 출근해서 청약 앱에 접속해 분양신청을 완료했다. 내가 청약한 아파트가 위치한 곳은 그린벨트를 해제해 새로 만드는 공공택지지구라 대중교통, 상권 같은 주변 인프라가 부족한 게 단점이었지만 도심 속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아내에게 밑져야 본전이라며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며칠 후 당첨자 명단 속에서 놀랍게도 내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현장에 가서 나와 아내가 살 집의 층과 호수를 골라야 했다. 일반 청약과는 다르게 미분양 아파트를 청약한 것이라 이런 혜택이 있었다. 나는 비교적 앞번호라 마음에 드는 로열층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완전 전세’로 살던 1기 신도시에서 몇 정류장 조금 더 밑으로 내려왔지만, 아침에 15분만 더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나와 아내는 생애 첫 집을 가질 수 있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신혼부부 시절 살아가야 할 집을 고민하던 나와 지금의 나를 서로 견주어 생각하면 그래도 내 집에 대한,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내부부인 우리는 회사 가까운 곳에 집은 없지만 출퇴근하는 시간을 활용해 책도 읽고 동영상 강의도 듣는다. 회사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살면 회사와의 심리적 거리감이 형성되지 않아 퇴근 후와 주말에도 계속 회사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회사 생활에 지치고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날에는, 퇴근하는 긴 시간 동안 차분하게 그리고 충분히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거나 휴가 중에 중요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사는 집이 가까웠다면 싫어도 자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무엇보다 지금 사는 집이 좋은 건 새로 생긴 동네라 모든 인프라가 새것이라는 것과 주변의 충분한 녹지와 쾌적한 환경, 동네에 들어서는 멋진 카페와 개성 있는 식당들 때문이다. 신규 택지지구의 특성상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동네 모습을 보니 즐겁다. 동네에 인격은 없지만, 동네가 잘 자라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회사 가까운 도심 속에 내 보금자리가 있었다면 이런 경험은 평생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내부부임에도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출퇴근할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함께 성장해 나갈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조금 먼 집에서 다니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