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퓨처 Apr 18. 2022

양재천에서 우리 가족 추억 만들기


오랜만에 가족과 주말 나들이를 갔다. 작년 말부터 새로 출근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한 시간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또다시 회사, 집, 회사의 무한 루프를 돌리던 옛날로 돌아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때마침 벚꽃과 함께 돌아온 봄이 내민 손을 덥석 잡고는 나들이를 나섰다.


양재천을 둘러싼 산책로엔 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대학 2학년이 된 딸은 여전히 소녀 감성에 충만해 있었다.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아빠! 오랜만에 이거 찍어서 브런치에 올려. 요즘 계속 안 했잖아."

그렇다. 어느덧 브런치 시계가 멈춘지도 한참 되었다. 딸의 말에 용기를 내서 브런치 전사 모드로 급 전환했다. 사실 그동안 브런치에 올리려고 찍어놓은 사진들은 꽤 많은데, 여유 없음과 나태함이 어우러져 스마트폰 하드만 차지하고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까지의 30센티밖에 안 되는 거리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동하는데 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류시화 님의 시가 떠올랐다.

"오늘은 머리로만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꼭 보이리라."

드디어 넉 달 여만에 브런치 발행 성공!

브린이 시절 품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고 뛸 듯이 좋아했던 그때로 말이다.

신이 있다면, 가을엔 형형색색 단풍을, 봄엔 하얀 팝콘 같은 벚꽃을, 각각 우리에게 주신 듯하다. 감상하면서 허전한 가슴을 채우라고 말이다. 두고두고 꺼내보면 큰 도움이 될 듯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찍었다.


양재천 벚꽃 구경 후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양재천 카페 거리와 주변 웬만한 식당들이 웨이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비해 이곳은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맛이 별로인가?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너무 허기가 진 탓에 일단 들어가고 보았다. 결론은, 맛이 괜찮았다. 시장이 반찬이란 걸 감안하더라도 나쁘지 않았다.


식당은 양재천 카페 거리를 지나, 신분당선 양재역과 3호선 매봉역 사이 중간쯤에 위치해 있었다. 양재천 근린공원 산책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 있어서 그런지 그리 붐비진 않았다.

카운터의 모습은 여느 술집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대낮임에도 어두운 실내조명과 다양한 양주들로 장식된 벽면의 모습은, 이곳이 저녁엔 술집으로 운영된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앉은자리 뒤 벽면엔 유럽 어느 명소를 연상케 하는 멋진 풍경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손님들 중 몇 명이라도 외국인이 있었다면 여기가 마치 유럽 어느 도시인 듯 착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와이프는 시금치 크림 파스타를, 나는 토마토소스 치킨 덮밥을, 그리고 딸아이는 버섯 크림 리조또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항공 샷을 찍으려니 자세가 영 어정쩡했다. 결국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무심코 고른 메뉴들인데, 색깔이 미리 맞춘 듯 조화가 잘 맞았다.


세 메뉴 모두 맛있었다. 뭐든지 잘 먹는 나와 딸아이뿐 아니라,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맛을 따지는 와이프가 맛있다고 했으니 정말 괜찮았던 게 맞는 것 같다. 크림 파스타와 크림 리조또 모두 그리 느끼하지 않았다. 내가 먹었던 토마토소스 치킨 덮밥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세 메뉴 중 최고였다. 새콤한 토마토소스에 알맞게 익은 닭고기가 잘 어우러져 입에 짝 달라붙는 식감으로 탄생했다. 다음에 또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학원 가느라 함께 오지 못한 아들 녀석이 잠시인데도 못내 눈에 밟혔다. 중학생이 되어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지라 요즘 더 신경이 쓰이는 아들이다. 파스타를 유난히 좋아하는 녀석인데 함께 왔으면 좋았을 것을.. 딸아이가 그랬듯이 아들 녀석도 어서 후딱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원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함께 다닐 수 있게 말이다. 아니, 또 모를 일이다. 그땐 딸아이가 우리 품을 떠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저 순간순간 시간 날 때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딸은 요즘 대면 수업으로 전환함에 따라 등교하는 날이 많아졌다. 2학년이 되어서야 캠퍼스의 낭만을 알게 된 것이다. 전공 수업에 동아리 활동까지 하느라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어쩜 아빠보다 더 바쁜 것 같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엄마 아빠한테 쏟아놓느라 식사 시간이 꽤 길어졌다. 철부지 그림 낙서 꼬맹이가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하는 디자인 학도가 되었으니, 새삼 자식 키운 보람이 느껴졌다.

랜만에 쓰는 글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힘겹게 완성했다. 그간 공백이 너무 컸나 보다. 그래도 한 때 다음 메인 단골 브런치 작가였는데.. 이렇게 또 꾸준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나 보다. 언젠가는 오늘을 추억하면서 보게 될 브런치 글이 또 하나 늘어 좋고, 또 소중한 구독자님들께 새 소식을 알려드린 것 같아 더 좋은 듯하다.


양재천에서 함께한 시간이 우리 가족 추억 모음의 한 페이지를 또 채우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 누님의 회갑 파티와 추억 소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