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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Jul 02. 2021

막대사탕의 힘

병원 채플린으로서 가장 기쁠 때는 환자와 가족,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 소통이 잘 될 때입니다. 가장 힘들 때는 환자나 가족들로부터 방문을 거절당할 때와 스태프들과 불화가 있을 때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저는 제 나름대로 몇 가지 소통의 도구를 마련했습니다. 처음 만남의 서먹서먹함이나 어색함을 빨리 없애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고 몇 가지 방안을 마련했죠. 그중에 하나가 막대사탕입니다. 여기서는 서커 Sucker 혹은 롤리팝 Lollipop이라고 부르더군요. 매일 출근할 때마다 저는 이 막대사탕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정중히 사양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린이들과 스트레스를 받은 스태프들은 모두 제 막대사탕을 좋아합니다. 정말 이 막대사탕의 힘을 제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19년 8월, 

보통 오전에 어린이 병원에서 일을 보는데, 이날은 대학병원에 일이 있어서 오후에 어린이 병원에 왔습니다. 병원 정문에서 새로운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어린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그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병원 정문에 대형 자동 출입문 틈에 아이의 손이 끼었습니다. 아이를 보고 있던 보모도 도와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다행히 저와 곁에 있던 수술실 간호사가 대형 유리문을 우리 몸 쪽으로 당겨 틈을 만들었고, 그 보모가 아이의 손을 무사히 빼냈습니다. 그러나, 놀란 아이는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보모가 다른 아이들 셋을 데리고 정문 옆 어린이 휴게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같이 따라갔습니다. 아이가 울며 손사래를 치자, 손을 확인하려는 보모도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때 제가 막대 사탕을 끄집어냈습니다. 순간, 울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딱 그쳤습니다. 저도 놀라서 말문이 막혔죠. 그리고, 문 사이에 끼었던 손으로 막대사탕을 달라는 시늉을 하는 겁니다. 어찌나 귀엽든지,,. 문에 끼었던 손을 움직이며 사탕을 집어가는데 그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문제는 다른 동생들이 자기들에게도 사탕을 달라는 통에 급히 자리를 피해야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남은 거라...


전날에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뜻밖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중환자실이라 그의 매일 한 두 명은 치료를 포기하고 이른바, 고통 완화진료 comfort care를 하며 죽음을 기다립니다. 그분들 가운데는 지역 교회의 목사님이 오시는 경우에는 제가 별로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담당 간호사는 제가 확인을 합니다. 간호사의 경험의 수준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최일선에 보살피는 간호사들이 정서적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죠. 


이곳에서는 주간 간호사가 환자 두 명 정도를 맡습니다. 두 환자 모두 위독하거나 한쪽 환자에게서 심정지가 일어나는 날은 간호사, 의사, 호흡기 치료사 등 모든 스태프들이 초주검이 되는 날이죠. 다행히 그런 비상 상황은 없었지만, 한 신참 간호사가 몹시 피곤해 보였습니다. 인사를 하고 위로를 하려고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이 간호사가 대뜸 저에게 말했습니다. "막대사탕 있어요?"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더니 제가 막대사탕 나눠주는 채플린으로 소문이 났다고 자기가 지금 사탕이 필요하다며 손을 내미는 겁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막대사탕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손 축복 Hand Blessing 도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이 간호사의 손을 당신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도구로 사용해 주세요. 그리고, 주님의 뜻이 이 손을 통해 우리 병원에 이뤄지도록 강복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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