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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폴로 Dec 12. 2022

멜버른 커피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

멜버른 스타벅스와 펠레그리니스 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타이틀 외에 멜버른이 세계적 자부심을 갖는 타이틀이 하나 더 있다. 커피 애호가라면 이미 짐작을 했을텐데 멜버른은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라떼보다 크림을 얇게 올린 플랫화이트나, 아메리카노보다는 진한 롱블랙은 호주에서 개발된 커피다. 멜버른의 유명 카페 ‘도장 깨기’를 하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멜버른의 커피는 세계적 명성이 자자하다.


멜버니언들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멜버니언들에게 카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멜버니언들은 자신의 단골 카페에서 간단한 베이커리와 커피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림1. 멜버른의 유명 카페 중 하나인 ‘Market Lane Coffee’의 일회용 컵. “우리는 커피를 사랑하는 도시를 위해 커피 만드는 일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혀있다.


멜버른 카페들은 보통 아침 7시면 문을 열고 오후 5시 전에 문을 닫는다. 참고로 호주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37시간이며, 육체노동자의 정규 근로시간은 7시 또는 8시부터 오후 3시 30분 또는 4시 30분, 사무 근로자의 경우 8시 30분 또는 9시 30분에 시작해 4시 30분 또는 5시 30분까지이기 때문에 카페들도 대부분 그에 맞춰 운영된다.


멜버른의 카페 산업 지형 또한 독특하다. 전체 카페의 95퍼센트가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스타벅스나 맥카페 등 커피 체인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스타벅스가 2000년 시드니에 첫 상륙을 시작으로 멜버른 등 전국에 84개 매장을 개점하였으나 8년 만에 약 70%의 매장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도 스타벅스는 포기하지 않고 2016년부터 재도약을 시작하여 2021년 기준 58개의 매장이 대도시들의 교통 중심지에서 주로 관광객들을 위해 영업을 하고 있다(같은 기간 미국에는 11,962개가 영업 중). 카페업계의 골리앗 스타벅스가 야심차게 문을 열었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떠났다는 멜버른.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멜버른이 왜 차가 아닌 커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갖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멜버른의 커피 문화를 발달시킨 것은 멜버른에 이주해 온 이탈리아인들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인들이 멜버른에 정착하면서 멜버른의 커피 품질을 혁신적으로 향상시킨 것은 사실이나, 멜버니언들의 오랜 커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멜버른 커피의 역사는 유럽인의 호주 정착 이후의 도시 역사와 그 운명의 궤를 같이하며 멜버니언들의 일상생활과 함께해왔다.


183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금주운동(temperance movement, 술을 금하고 절제를 생활화하기 위해 펼쳐진 사회운동)은 아일랜드, 영국, 유럽을 거쳐 호주(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는 1901년 독립했다)에도 전파가 되었다. 금주운동가들은 정부에 로비를 하여 1916년부터 1966년까지 술집들은 오후 6시 이후에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림2. 빅토리아마켓 맞은편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에 있는 음수대. 1901년 시민들에게 질 좋은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됐다(사진저작권 : Mark Holsworth)

사람들을 술집으로부터 멀리하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했던 금주운동가들은 술을 대신해 커피, 차, 생수를 마실 수 있는 시설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당시의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던 호텔과 유사한 편의시설(식당, 숙소, 독서룸, 당구대 등)을 제공하나 주류는 판매하지 않는 이른바 ‘커피 궁전(coffee palace)’들이다.     


현재 멜버른 CBD 서쪽의 스프링 스트리트에 위치한 윈저 호텔의 이전 이름은 ‘그랜드 커피 펠러스(Grand Coffee Palace)’였다. 1886년부터 1897년까지는 400개의 방을 갖춘 대규모 숙박 및 여가 시설이었던 이곳은 술을 팔지 않았기에 어린이들도 출입할 수 있어 가족 친화적인 공간으로 사랑받았다. 이 외에도 몇 페더럴 커피 펠러스를 비롯한 이 커피 궁전들은 188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림3. 1888년 콜린스 스트리트와 킹 스트리트 코너에 세워진 Federal Coffee Palace. 당시 멜버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출처 : visitvictoria)


그러나 이들이 모든 멜버니언들에게 커피를 제공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고급 시설이었던 이곳들의 주요 고객은 멜버른의 신흥 부유층이었다. 도시 노동자들을 길거리 커피 노점상들을 주로 이용했다. 185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커피 노점상들은 멜버니언들에게 값싼 아침식사와 가벼운 야식을 팔았다. 이들은 석탄불 위에 주석으로 만든 캔을 올려두고 거기에 20리터 정도의 커피를 데워 손님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제공했다. 이른 새벽 또는 늦은 저녁 샌드위치, 기름진 케이크, 푸딩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곁들인 커피 한 잔은 팍팍한 도시 노동자들의 삶에 작은 위안을 주었다.

그림4. 1863년(영국 식민지 시기) 멜버른 시내에 위치했던 커피 노점상의 이른 새벽 풍경(출처 : 빅토리아 주립도서관)

1870년대 초까지 이런 커피 노점상들은 밤새 영업을 했다. 식당 주인들은 이 노점상들이 자신들의 손님을 뺏어가고 있으며 사회 하층민이나 끌어 모은다고 비난하는 등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멜버니언들의 커피 사랑은 계속되었다. 1880년대에는 아예 시내 중심가에 커피 노점상 밀집 구역이 만들어져서 멜버른의 새로운 밤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림5. 1877년 10월의 어느 토요일 밤 멜버른 커피 노점상 밀집 구역인 버크 스트리트 풍경(출처 : 빅토리아 주립도서관)


1890년대 도시 경제 사정이 나빠지며 상류층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던 커피 궁전을 찾는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20세기부터는 카페와 유럽 스타일의 커피 라운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파솔리스(Fasoli’s) 같은 카페들은 멜버른의 보헤미안, 작가, 시인, 지식인, 무용수, 예술가 또는 그 지망생들로 넘쳐나는 문화적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카페에 대한 수요는 점차 늘어 1920년대 12개 남짓이던 커피 라운지들은 1930년대 450개로 증가했다.

그림6. 1903년 미국인 제임스 시그날스가 개업한 멜버른의 Legend Cafe. 1956년경. (출처 : 페북 Greek Cafes&Milk Bars of Australia)


그러나 이 당시에도 멜버른의 커피 품질 자체는 그다지 좋지 않았었나 보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군이 호주에 주둔하게 되면서 이들은 당시 미국에 있던 최신 로스팅 및 그라인딩 기술을 활용한 보다 섬세한 맛의 커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멜버른의 커피 맛과 카페 문화가 업그레이드된 계기가, 익히 알려진 2차 세계대전 시기 이탈리아인들의 멜버른 정착이다.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 피자, 모카에스프레소, 가찌아(Gazzia) 에스프레소 머신 등을 가지고 호주에 정착을 했다. 1954년 멜버른 근교에 호주의 가장 오래된 로스팅 회사인 모코판(Moccopan)이 창립되었다.


멜버른에서 가장 오래된 에스프레소 바 펠레그리니스 바(Pellegrini’s Espresso Bar)도 같은 해에 가게를 열었다. 이 가게는 1940년대와 1950년대 건축 디자인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고 1950년대 멜버른의 문화적 르네상스(올림픽, 유럽 이민자들)의 상징성을 인정받아 1989년 빅토리아주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림7,8. 멜버른 CBD에 위치한 펠리그래니스 에스프레소 바. 현재까지 초기 모습을 거의 유지하며 영업하고 있다.


이들이 가져온 변화는 혁명적이라 불릴 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이탈리아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바는 호주 시내뿐 아니라 교외 지역에까지 그 위세를 넓혀갔다. 이 카페들은 맛 좋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제공하여 멜버니언들에게 커피 신세계를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장소로도 기능했다. 그 이전 호주인들이 마시던 커피는 볶아진 원두를 수입해서 만든 커피였으나, 이탈리아 커피 문화가 전파되면서 멜버니언들은 생두를 수입한 후 현지에서 볶는 방식의 커피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이탈리아인들의 초기 정착지역 중 하나인 멜버른은 현재 이탈리아 본토를 제외하고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해외 도시이다. 특히 멜버른의 ‘맛집 거리’로 알려진 칼튼의 라이곤 스트리트는 이탈리아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으로 이태리 정통 음식을 쉽게 맛볼 수 있다.)

그림9. 라이곤 스트리트에 위치한 이태리 디저트 카페 Brunetti의 젤라또. 맛은 물론이고, 5시면 문을 닫는 멜버른 일반 카페들과 달리 밤 10시까지 영업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멜버니언들은 이탈리아의 카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멜버른에서는 세계 다른 국가와 문화와의 접점을 높여가야 한다는 의식이 커졌다. 경제적 번영을 발판으로 삼아 멜버른은 전통적으로 유지해오던 영국과의 경제적, 전략적, 문화적 관계를 넘어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호주의 젊은이들은 해외 문화를 공부하며 자신만의 문화로 재해석했다. 호주 문화 비평가들도 개성이 부족한 기존의 문화가 아닌 새로운 모델을 찾을 것을 독려했다.


카페의 경우,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제조 방식을 기초로 하되 프랑스의 노상 카페 문화가 합쳐진 형태로 발전했다. 1900년대 초 유럽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사람들은 날씨 좋은 멜버른에 유럽 스타일의 야외 카페가 없는 것을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노상 카페가 처음 시도된 계기는 1950년대 프랑스 이민자 커플인 모라(Mora) 부부가 처음으로 미르카스(Mirka’s)라는 노상 카페를 열면서였다. 노상 카페들은 파리의 느낌을 낸다며 멜버니언들의 찬사를 받았으나, 그 시행 초기에는 보행자와 차량 통행 방해를 이유로 금지되기도 했다. 이후 재부활하면서 일반적인 멜버른의 카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림10. 1958년 콜린스 스트리트의 렌스 오리엔탈 호텔 노상카페. 1960년 보행 방해를 이유로 철수됨 (출처 : australianfoodtimeline.com.au)


이렇게 멜버른의 커피 문화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커피 품질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점진적으로 커피 소비가 줄어들고 있었다. 반면 멜버른에서는 작은 커피 전문점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났고, 이는 이후 멜버른 커피 산업 발전의 기초 모델이 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멜버른의 독특한 카페 산업 지형을 정책적으로 활용하기로 한다. 이 당시 멜버른은 자동차의 발달, 넓은 주택에 대한 수요 증가 등으로 도시가 교외지역으로 팽창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도심인 CBD 지역은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 이러한 현상이 마치 도넛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 당시 도시의 형태를 ‘도넛 시티(doughnut city)’라 불렀다. 도심 지역에 거주민이 줄어들면서 치안이 부실해지고 범죄가 증가하는 등 멜버른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빅토리아 주 정부와 지역 정부는 카페 문화를 활용하여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우선, 1980년대 빅토리아주 관광청(Victorian Tourism Commission, 1982-1986)은 이 카페들을 이용해 멜버른을 관광도시로 부흥시켜보기로 방향을 잡는다. 이러한 카페들은 멜버른의 매력도를 높이는데 활용되었다. 멜버른의 카페들이 주는 세련되고 문화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여 정부는 멜버른을 ‘살기 좋은 도시’로서 새롭게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살기 좋은 도시’라는 칭호는 주민들에게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들렸다.


또한 1988년 빅토리아 주정부의 주류 허가 정책의 변경도 도심 내 카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이전에는 카페들이 와인을 비롯한 다른 알코올음료를 판매할 수 없었다. 호텔이 주류 판매를 거의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식당이 주류 판매 허가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비용도 많이 들었고 절차도 복잡했다. 빅토리아 주정부는 이러한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카페들의 주류 판매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커피뿐만 아니라 와인이나 제대로 된 식사도 가능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소규모 카페들의 이윤은 늘어갔고 재정 건전성도 높아졌다. 또한 정부는 주류 판매 허가 취득을 위한 수수료를 의도적으로 낮게 설정함으로써 카페들의 주류 판매를 독려했다. 그 당시 시드니에서 주류 판매 허가를 취득하려면 약 1만 500불이 필요했는데, 이는 멜버른에 비해 약 20배가 더 드는 비용이었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멜버른의 소규모 카페들의 증가로 이어졌다. 1986년 571개이던 주류 판매 식당이 2004년 5,136개가 되었고, 영업시간도 늘어났다.


이러한 크고 작은 노력들은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98년 빅토리아 주 당시 기반시설부(Department of Infrastructure)는 멜버른의 큰 도시적 변화를 담은 <도넛시티에서 카페사회로(Doughnut City to Cafe Society)>라는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는 1960-70년대까지 도심의 공동화 현상을 겪던 멜버른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도심이 재활성화된 '카페 사회(Cafe society)'로서 변화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11. 1998년 빅토리아 주 기반시설부가 발간한 <도넛 시티에서 카페 사회로> 보고서 표지


그 변화의 중심에는 멜버른의 소규모 카페들이 있었다. 구역화하기를 좋아하는 멜버른의 소규모 카페들은 과거 식료품 배달을 위해서만 사용되던 멜버른 CBD의 작은 뒷골목들을 서서히 점령하기 시작했고 블록 아케이드와 같은 소위 ‘부띠끄 구역’들을 만들어냈다. 기존에 더럽고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지던 뒷골목이 멜버니언의 여가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카페가 가져온 이러한 변화는 이 도시의 다양성, 이동성, 예측불가능성과 밀도를 높여주고 있다. 멜버른 카페에서 즐기는 플랫화이트 한 잔에 이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겨있다.

그림12. CBD 내 Centre Place 골목. 카페, 바, 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 골목 이미지는 도시 홍보에 자주 활용된다 (출처 : whatson melbourne



참고 사이트 및 자료

1.https://collections.museumsvictoria.com.au/articles/2933

2.https://www.emelbourne.net.au/biogs/EM00370b.htm

3.https://blogs.slv.vic.gov.au/such-was-life/a-melbourne-love-affair/

4.https://australianfoodtimeline.com.au/1954-melbournes-first-pavement-cafe/

5.Frost, Warwick, Laing, Jennifer, Wheeler, Fiona and Reeves, and. "Chapter 7. Coffee Culture, Heritage and Destination Image: Melbourne and the Italian Model". Coffee Culture, Destinations and Tourism, edited by Lee Jolliffe, Bristol, Blue Ridge Summit: Channel View Publications, 2010, pp. 9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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