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25
어떤 집에 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나의 첫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쫓겨나지 않는 집이요.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집."저는 그런 집에 살고 싶어요.
신축 아파트니 층간소음 없는 단독 주택이니 국민평형이니 하는 그런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한순간 공기가 바뀐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답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에, 그런 답을 내놓은 나 또한 순간 당황했다. 그럼에도 만약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똑같은 답변을 할 것이다. 내게 있어서 집의 형태보다 중요한 것이 맘 편히 내가 나가지 않는 한 언제 까지든 살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나는 해방촌을 떠났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좋은 집,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었다. 그랬기에 나는 십 년 만에 서울을 떠났다. 서울에서 살았던 환경보다 내 현재 상황상, 더 나은 곳에 살 수 없음을 알았기에 나는 서울을 떠났다. 매일같이 네이버 부동산과 부동산 어플을 찾아봤다. 다행히 나는 직업상 한국의 여러 한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 그게 바로 인천이었다.
아직까지는 수도권을 완전히 떠날 수 없었다. 거기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새집에 살아보고 싶었다. 쫓겨나는 마당에 내가 살았던 곳보다 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곳으로 간다면, 너무나도 우울할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아직까지는 서울 근처에 있어야 유리했다. 서울 인근을 알아보다 어쩌다 보니 점점 멀어져 인천 끝까지 오게 되었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선택하는 일이 이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울을 버리고, 새집을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900세대 가까이 되는 오피스텔이었다. 지어진 지 2년이 되지 않은 거의 새집을 보는 순간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서울에서 이런 집에 살려면 과연 얼마를 더 줘야 할까였다. 1.5룸의 오피스텔은 깨끗했고, 환했다. 아직 사람들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아서 뭔가 포장지를 갓 뜯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커다란 통창문이었다. 도심지역의 통창과 달리 미닫이로 편하게 열고 닫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거실과 방에서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달라 그 재미도 있었다. 거기에 지하철역에서 가깝다는 점은 이 집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집주인은 너무나도 친절한 분이었다.
그럼에도 이사 오고 반년 동안, 나는 불안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이야 집주인 분이 너무나도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아서 안심하지만, 반년 동안 혹시나 전화가 올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집주인이 바뀔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집주인분의 안부전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어느 날, 샤워 중 갑자기 퍽하는 소리와 함께 욕실의 타일이 터져서 파편이 날아왔다. 너무 놀라 확인해 보니, 욕실벽타일에 크게 금이 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집주인에게 이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 밤을 새웠다. 그럼에도 알리지 않으면 안 됨을 알기에 나는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조금 뒤 울린 전화에 나는 그동안의 내 고생을 보상받은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깨진 타일보다 내 안부를 먼저 묻는 그분에게 나는 감동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기에,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이 집이 이렇게나 편하게 된 것은.
아직 이 도시를 잘 몰라서 더 재미있고 두렵기도 하지만, 윤슬이 내린 바다를 볼 때면 마음이 좋아진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저 윤슬이 뭔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줘서인지, 여기 와서 답답할 때마다 나는 바다를 보러 나간다.
고향친구는 내가 사는 곳이 부산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성향도, 바다를 접해 있는 풍경도 고향인 부산과 비슷했다.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고향이었는데, 결국 뭔가 그 빈자리를 채울 곳을 찾아온 게 아닐까 싶어 씁쓸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내가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곳이 그렇게나 떠나고 싶었던 그곳이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