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가 그런 줄 알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분명히 탈이 난다. 온몸에 가시가 돋는달까. 하루라도 책을 잃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던 안중근 의사처럼 말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서서히, 나는 어떤 궤도에 올랐다고 느꼈다. 그것은 한편으로 익숙했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오랜만에 맛보는 것이라 어색하기도 했다. 일이 제대로 되어간다는 느낌, 내가 잘 해나가고 있다는 믿음, 최상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어찌 되든 후회하지 않겠다는 안정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귀한 건 또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차근차근 밑바닥부터 쌓아올려 짓고, 이에 대해 겸손하게 만족하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허물어져버릴 때엔 야속하기도 했다. 며칠 달리기를 쉬었을 뿐인데 이럴 수가 있나.
속이 더부룩하고 머리가 멍하고 몸이 찌뿌둥하다. 사소한 일에 감정이 동요한다. 부정적인 말이 쉽게 튀어나온다. 짜증이 서린 상태, 피곤하니 제발 내버려두길 바라는 상태, 새로운 정보나 상황을 거부하고 싶은 상태가 된다. 인간사 수많은 과속방지턱들에 자꾸만 덜컥덜컥 걸려서 일상이 소란스럽다. 결국 부딪치고 넘어지고 터지는 일이 생긴다.
원래 내가 그런 줄 알았다. 그게 '기본'이 아니라 뭔가 잘못된, '가시가 돋은' 상태라고 여기게 된 것이 사실 제일 감사한 일이다.
가만히 두면 고요해지고 순수해지고 나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희미해지고 더러워지고 흔들리고 무너진다. 돌아보고 살펴보고 털어내고 갈고 닦고 다듬고 다독여주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주어야 겨우, 정말 겨우 괜찮은, 나다운 나를 유지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움직이는 건 귀찮은 일이고, 손을 놓으면 금방 티가 난다는 게 영 언짢지만, 고슴도치가 되어 찌르고 찔리며 지내는 것보다 아무래도 훨씬, 정말 훨씬 낫다. 가시를 떨치고 돋아나지 않게 하기 위해 달린다. 다리를 굴려 숨을 헐떡이고 땀을 낸다. 고작 달리기 몇십 분으로 내 최상의 상태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