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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은 체념대로, 나는 내 멋대로_경포마라톤_하프

이다지도 열성적으로 헛짓거리를.

by 모도 헤도헨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아은 작가의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한 적이 있다. <엄마의 독서>를 읽고 반해서 찾아갔는데, (강연 내용은 내 기대와 다르긴 했다. 어쨌든) 그때 인상적인 말씀을 지나가듯 하셔서 두고두고 곱씹는다.


행사가 시작하고 한참 지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분이 들어오셨다. 청년이라기엔 나이가 있고 중년이라기엔 어딘가 젊어 보였고, 얼핏 이 자리에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분이 마지막에 어떤 질문을 했는데, 작가가 답을 하다가 그분에게 실례지만 자녀가 있으신지 물었다. 없다고 했다. 그러자 작가님 왈,



어쩐지, 체념의 기운이 없으시더라고요.
자녀가 있는 사람에겐 어떤... 체념의 기운이 있거든요.



그때, 나의 셋째가 두 살이었나 세 살이었나. 그녀의 말이 내 귀로 들어와 서서히 느낌표를 띄웠는데, 그게 갈수록 커졌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 내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는 바로 이거였어, 체념.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중대한 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하루 종일, 사사건건 그런 일들에 절여져 있다 보니, 그렇게 7년쯤 살다 보니, 무기력감이 옴팡지게 달라붙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삶을 향한 생기도 다 말라버렸고, 한숨과 냉소와 울분만 늘어갔다.


뭘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래봤자'라는 핀잔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는 것, 내 안에서 재미가 솟아날 거란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위태하게 하는지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깨닫곤 한다.


정재승 교수가 3년 전 한 방송에서 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마음대로 사람을,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무기력감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 사실을 대차게 배웠던 거고, 어른이 되기 시작했던 거 같다.


(아이를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 어른이 된다. 대체로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안 키워봤다고 어른이 못 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육아 말고도 ‘내 마음대로 사람을, 세상을 통제할 수 없음’을 배울 일이 널렸다.)


어쨌거나, 그렇게 고장난 상태로 날마다 구석으로 구석으로 내몰리다가, 바닥으로 바닥으로 가라앉다가, 어느 순간 한숨처럼,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맘대로 안 되는 거,
나도 내 맘대로 할 테다.



그러니까, 그전까진 세상에 제대로 삐져서, 세상을 왕따 시키는 마음으로 '될 대로 돼라. 될 대로 되어버려라!' 내뱉듯 말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어차피 될 대로 될 테니, 나도 거기에 얹어가겠다는 심보가 생겨나더란 것이다. 다~ 될 대로 되겠지! 그러니 나도 일단 내 맘대로.


'내 맘대로 되게 하려 애쓰는 대신, 그냥 내 맘대로 한다'는 신박한 마음가짐은 갈수록 괜찮았다. 내내 가뿐했고, 때때로 어떤 순간을 넘어가게 해주었다.





<어른 김장하>와 션의 영상을 보고 마라톤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좋은 거 옆에 더 좋은 거), 내가 계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는 벅찬 마음으로 계획했으나 아무래도 감당하기 벅차겠다는 계산이 나왔을 때(해보고 싶어_퍼플런_11K), 그리고 주로에서 헉헉대며 천천히 1씩 늘어가는 표지판을 애타게 찾으며 달릴 때마다, 당연한 회의가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겠다는 건가? 이게 나에게나 세상에나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유가 넘치는 것도 아니면서, 왜 할 일 없고 여유가 넘쳐서 그런다는 듯이 이다지도 열성적으로 헛짓거리를 벌이고 있나?


그런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때 그 마음가짐을 붙들곤 했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재밌으니까. 이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이 거대한 우주에서 한낱 먼지 같은, 아니 과연 먼지일 뿐인 나를 인식할 때면 보통은 오들오들 떨린다.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짓이겨지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로 그 사실에 구원을 받는다. 내가 내 멋대로 노는 것 정도는 괜찮겠구나. 별일 없겠구나, 하고.


나는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한 10개월 동안 너무 재미있었다. 뿌듯하고 즐거웠다. 거대한 우주까지 갈 것 없이, 푸르뫼재단에 내가 기부할 2025천원, 브런치라는 동네에서 이 프로젝트에 쓴 글들이 일으키는 반향 같은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머리를 긁적이게 되지만, 내 존재의 크기, 삶의 시간 안에서 이 일들은 꽤나 중대하고 기억에 남을 사건이었다. 나는 나 혼자 그게 그렇게 좋았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내 끼니를 귀하게 차려먹는 일, 누가 주목하거나 말거나 내 취향대로 머리를 하고 옷을 입고 멋을 내는 일, 세상의 평가가 어떻든 내 아이를 숨길 수 없이 예뻐하는 일, 그런 일들과 또 그때그때 내 마음을 쏟게 되는 일들로 내 하루를, 내 삶을 채우는 것은, 그러한 내 쪽의 시도는 얼마든지 허락된 것 같다. 어쩌면 이 거대한 우주만큼.


10km 완주한 나의 러닝크루 언니들. 아직 내가 달리고 있을 때 둘이서만 이리 멋진 사진을 찍었다.

제대로 우중런이었다. 워낙 비 예보가 확실한 상황이어서 마음 졸이지도 않았다. 좀 추우려나, 그런 걱정만. 우비 없이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달려도 역시 춥지 않았다. 지난해엔 친구들과 함께 10km를 천천히 달려 그랬는지 경치가 너무 좋았다고 기억하는데, 이번엔 비 때문인지 혼자 하프를 달려서인지 경치 같은 건 뇌리에 든 기억이 없다. (은근하고 꾸준하게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는구나, 그 생각만...) 마지막 마라톤은 하프 최고기록이거나 풀코스 도전으로 마무리하고픈 야망도 있었으나, 또 다른 일을 벌이느라 완주도 못할 뻔했으니 이 정도로 매우 만족이다. 비바람이 갈수록 잦아져서 딱 좋겠다, 했는데 결승선 지나자마자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릉 주민의 집까지 2.7km를 걸어가며 그야말로 홀딱 젖었다. 양말이며 속옷이며 벨트까지 꼭 짜야 할 정도로. 이래저래 기억에 남을 마라톤이었다.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다한 후의 기쁨.


기부 완료. 매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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