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과 불편함 사이

by 마잇 윤쌤

1년 3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던 첫날 아침,

어린이집 앞에서 딸아이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어요.


회사 첫날보다 더 걱정되었던 건 딸아이가 하루 종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죠. 출근길은 마치 처음 가는 길 같았어요.


휴직했던 사이,

회사에는 낯선 얼굴들이 생겼고, 업무 방식도 조금씩 바뀌어 있었어요.


복직이었지만,

어디론가 이직한 듯한 낯선 감정을 느끼던 그날 오후였어요.



"오늘 첫날인데,

엄마가 아이 찾아서 집으로 가 있을게."



퇴근하고 6시 넘어서 하원 시켜야 할 딸아이를,

엄마가 4시쯤 하원 시켜서 집으로 가주시겠다는 거였어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어요.

일을 하는 동안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네요.


덕분에 그날의 퇴근길은 복직 첫날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가벼웠어요.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딸아이는 이미 목욕도 끝내고, 옷도 갈아입고, 간식을 먹고 있었죠.



엄마는 식구들이 먹을 저녁까지 준비해 두셨어요.


그날 저는 생각했어요.



"이보다 든든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도 엄마는

제가 바쁘거나, 아이가 유독 보채는 날이면

먼 길을 달려오셨어요.


엄마의 방문은 처음엔 늘 "고마움" 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불편함"이라는 그림자가 조금씩 따라오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집에 드나들며 도와주고 싶으신 것들과 못마땅한 것들을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하셨거든요.


그리고 엄마의 생각만큼이나 강한 확신에 찬 말투를 사용했어요. 강한 확신은 언제나 "엄마의 방식"이었죠.



"청소는 언제 했니?"

"냉장고 정리는 안 하니?"

"여기 서랍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얇은 이불이랑 같이 얼른 사라."

"아이 잠바가 하나 있으면 좋겠어. 주말에 사러 가자."



아이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외할머니였지만,

저에게는 깐깐한 살림 사감 선생님과 다를 게 없었죠.


복직해서 정신없을 딸을 도와주고 싶은 엄마의 사랑이었겠지만, 엄마가 자주 오실수록 이야기는 많아졌어요.


결혼하고 겨우 얻은 저만의 공간과 리듬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1년 넘게 엄마 집에서 지낼 때는 이런 갈등은 없었어요. 그곳은 엄마의 공간이었으니까요.


엄마는 어느 날은 옷장을 정리해두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베란다 청소를 하시기도 했어요.


친구들 모임에서 백화점과 시장을 가셨다며,

메신저로 딸아이 옷을 사 오시겠다며 사진을 보내시기도 했지요.



서서히 "엄마의 도움"이 피곤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말할 수는 없었어요.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는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죄채감이라기보다는,

고마움이 너무 커서 차마 말할 수 없었어요.


엄마가 일주일에 한두 번 오시기에 친정과 우리 집은 전혀 가깝지 않았어요. 차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야 했거든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남편도 많이 불편했을 거예요.



우리 셋이 편하게 지내려던 저녁 시간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함께하게 되었으니까요.


고마움과 불편함 사이에 서있던 저와

자신의 방식에 확신을 가진 엄마,

그 사이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었던 남편...


시간이 지나고 저는 조금 용기를 내었어요.



"엄마, 아이를 봐주시는 것은 정말 고맙지만,

내 살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옷장 정리나 베란다, 화장실 청소 같은 것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예상했던 대로 엄마는 서운해하셨어요.


엄마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제가 남편과 잘 해보겠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지요.


마뜩지 않아 하셨지만, 엄마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았어요.


다행히 아이가 커가며 엄마가 집에 오시는 날도 자연스레 줄어들었고요.



그렇게 저는 알게 되었어요.


가족, 사랑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용기가 필요했지만, 엄마에게 이야기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답니다.


도움도 사랑도

결국 서로의 경계를 존중해야 빛이 나더라고요.



복직을 앞두고

가족들과 육아를 함께 할 분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가족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복이지만,


동시에 큰 숙제이기도 합니다.



고마움과 불편함 사이에서,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조율해가는 것,


그것이 가족과 함께 육아의 첫 걸음 같아요.



그러니, 적당한 거리를 고민하는 것은 불편해서가 아니라, 오래도록 서로 사랑하며 지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사랑은...


그렇게 늘 곁에 있을 줄만 알았네요.








부모도 처음이라 서툴지만,

우리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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