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첫 번째 면접 본 곳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무엇보다 매일 가까워지는 신용카드 결제일이 두렵다.
저녁에 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하루에 최소 5만 원은 벌어야 살 수 있는데, 그런 일자리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두세 군데 괜찮아 보이는 곳에 입사지원을 했다. 새벽 2시까지 뒤져 겨우 찾았다. 눈꺼풀은 자꾸 무거워지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한 군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중 한 곳에는 담당자 핸드폰 번호가 있어 '이메일 보냈으니 확인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메일이 안 왔다길래 다시 보냈지만 여전히 연락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로는 9시간 풀타임을 일 해도 하루 5만 원 밖에 벌지 못 한다. 직장인 월급도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4시간 일하고 4만 원을 벌었다. 라임 사장님과 일할 때는 4-5시간 출근해서 주급 20만 원을 벌었다. 그때는 내가 평균 아르바이트생보다 많이 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제야 ‘힘들어도 그냥 다닐걸 그랬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벌 수 있는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최저임금이 올라가야 하는 이유가 절실하게 공감되는 순간이다. 새벽 시간까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기 위해 사이트를 뒤지고 나니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채용 공고에는 대부분 ‘연락 두절, 알바 중 무단결근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해 놓았다. 사회생활 경험이 있고, 책임감도 강하다고 어필했는데 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는 ‘나이’ 일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다. 스물아홉이니 나를 아르바이트생으로 부려야 하는 사람들의 나보다 적거나 같을 가능성이 크다.
알바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해 버렸다. 공개한 지 10분도 안 돼 전화가 왔다. 이력서를 공개한 사람들에게 전화로 일자리를 매칭해 주는 업무였다. 보험 영업을 했기 때문에 전화 통화에 부담은 없었다. 근무 조건도 나쁘지 않아 다음 날부터 바로 출근하기로 했다.
이후에 10통 이상의 전화가 더 왔다. 전화를 받고 나니 ‘너무 쉽게 결정해 버렸나?’라고 후회했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 어떤 업무인지는 가서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력서를 공개했을 때 이렇게 많은 전화를 받게 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가산 디지털단지역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일 할 때 쓰는 전화용 스크립트 설명을 들었다. 이 회사는 편의점 현금 인출기의 현금을 수송하는 보조 인력을 찾았다. 해당 업무는 6시 칼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말 근무도 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일요일 근무도 있다. 이런 단점을 흘리듯 이야기하는 법을 알려주신다. 왠지 꺼림칙하다. 거짓말을 싫어하기에 이 일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면접조사원으로 지원한 리서치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혹시 사무실 관리 보조 알바는 가능하신지요?”
“네. 가능합니다”
“혹시 오늘부터 가능하세요? 한 이십일 정도고 업무강도는 낮고요. 일오만 원인데 일곱 시간 정도예요.”
‘아싸!!!’
열심히 교육을 해 주신 분께 말씀드렸다.
“저… 죄송한데, 전공과 관련된 곳에 일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와서요. 그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담당자는 당황하면서도 ‘알았다, 괜찮으니까 가 보시라. 팀장님에게 말씀드리겠다’고 얘기했다. 나오자마자 리서치 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당장 와 달라고 부탁을 한다.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사무실로 출발했다. 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설문조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확인 전화를 하고, 오는 분들의 키와 몸무게만 재면 된다. 사람들이 설문조사를 하러 가는 20-30분 동안에는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해도 된다.
‘이게 웬 떡인가’ 싶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게 될 줄이야. 게다가 근무 날짜도 20일이라니 내게는 최적의 아르바이트였다. 게다가 일이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났다.
집에 도착해 라면을 끓여 먹고 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좋지 않다. 전날도 거의 종일 밥을 먹지 않다가 잠자기 직전에 폭식을 했다. 이틀 연속 그렇게 먹었더니 결국 탈이 난 모양이다. 8시 전에 잠들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 새벽에 여러 번 깼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러 출발해야 하는 시간에 잠을 깼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탄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대리님이다.
“죄송해요. 오늘까지만 일하셔야 할 거 같네요. 팀장님이 저희 직원을 두자고 하시네요. 일당은 보내드릴게요. 다시 한번 죄송해요.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뵙길 원합니다.”
“네. 도착해서 말씀하셨어도 되는데. 저 늦을 것 같다고 문자 보내고 있었거든요. 죄송합니다. 빨리 갈게요”
대리님에게 전화가 왔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그럼 오늘 안 가도 되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반대편 지하철을 탔다. 학교 앞 카페로 가서 음료를 주문하고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대리님은 어젯밤에 문자를 보낸 거였다. 일찍 잠든 바람에 못 본 것이다. 어제 알았어도 기분이 안 좋았겠지만, 출근길에 알게 되니 더 기분이 좋지 않다. 아르바이트마저 잘리니 온갖 생각이 든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
‘너무 쉽게 돈을 벌게 되었다고 신이 벌주시는 건가?’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카페에 앉아 다시 이력서를 쓴다. ‘다른 좋은 곳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려 애써보지만 한 번 떨어진 자신감은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