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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Jun 20. 2020

그대가 싫은 이유는 사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이상하게 그냥 싫어질 때가 있다. 그 사람 자체에 문제가 없는데도 그이가 가진 어떤 일부의 모습이 정말 꼴도 보기 싫은 경우가 있고 특별히 내게 잘못한 것도 없고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싫어지는 사람이 존재한다.

불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인연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처님 시대에 한 노파가 있었다. 부처님이 이 노파를 제도하려고 했으나 노파는 이상하게 부처님과 마주치기를 몹시 싫어했다. 부처님이 온다는 소식만 들렸다 하면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들과 달리 이 노파는 부처님과 절대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도망갔다. 결국 노파는 평생 부처님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는 무척 좋아해 라훌라와의 인연으로 불법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부처님이 노파와의 과거 인연을 말씀하셨다. 여러 생 전에 부처님과 노파가 부부였는데 당시 남편이었던 부처님이 바람을 피웠다. 그때 아내였던 이 노파가 “내가 이 인간을 다시는 보나 봐라. 절대 만나지 않으리!”하고 굳게 다짐했다고 한다. 이때의 인연으로 부처님을 그렇게 피해 다니게 되었다고 전했다.


미워할 아무 이유가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도 괴롭고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 사람도 왠지 억울하고 힘들다. 그럴 때 부처님과 노파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특히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 내가 전생에 저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해서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나 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면 조금은 견디기 편해질지도 모른다.




나 역시 주변을 둘러보면 이상하게 별일 아닌데 괜히 화를 내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한 명은 직장 동료 중 한 명이다. 이 사람이 무언가 말을 걸어올 때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게 된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몰두해서 일을 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거는 상황이 10번이라면 그중 대여섯 번은 눈은 계속 모니터를 향한 채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해버린다  


그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이 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그 고집 부리는 상황을 몇번 겪은 후로 무슨 말을 해도 ‘또 이상한 고집을 부리려고 하는구나’라고 짐작하고 대충 흘려버리는 것이다.


고집을 부리는 상황의 예를 들자면 퇴사를 앞두고 있고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인수인계를 받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본인이 하는 업무들을 하나의 엑셀 파일에 정리해서 달라고 부탁했다. 자잘하게 해야 하는 일들이 꽤 많은데 그중 하나가 월 1회씩 본사에 월말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그분이 이 업무에 대해 설명하려는 그 순간 나는 몹시 바쁜 상태였기에 지금 말해줘도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잊어버릴 것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아... 그거요?? 인수인계 파일에 다 쓰셨죠?? 일단 정리해 주시고 다음 주 인수인계할 때 알려주세요. 아님 정리해 두시면 시간 될 때 제가 미리 한번 볼게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건 인수인계 파일에 안 썼어요. 보고 관련된 업무는 인수인계 파일에 하나도 안 썼는데요?? 지금 바쁘면 나중에 따로 얘기할게요.”


하....


‘아니, 님아. 당신이 해온 일인데 왜 인수인계 파일에 안 적는다는 건지??’


라고 생각하면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 과장님이 한 일인데 인수인계 파일에 왜 안 적어요. 그냥 빠짐없이 다 적어주세요.”


하지만 그는 끝내 인수인계 파일에 그 업무를 적지 않았다. 뭐. 하나의 예지만 이런 거다. 회사의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쓸데없는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고집에 한두 번 노출되다가 그 횟수가 거듭되자 바른말을 해도 대충 듣고 대충 흘려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을 얘기하자면 바로 엄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들과 통화를 하는데 얼마 전 여동생이 엄마에게 요즘 이러저러해서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다. 여동생의 하소연에 엄마는,


"아니, 네가 그렇게 하니까 그런 상황이 생겼지. 그럴 때는 이렇게 했어야지."


이 말을 들은 여동생은,


"엄마! 내가 엄마한테 해결책을 듣자고 이 얘기를 한 거야? 아니잖아. 그냥 나는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얘기했을 뿐이라고. 제발!!! 그냥 들어줘."


그렇다. 사실 나 역시 평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신념으로 지내기에 굳이 별일 없으면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지만 아주 가끔 큰 마음을 내어 출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얘기하는데 그럴 때도 엄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의 상황에 대해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내게 한마디를 던진다. 그리고 놀랍도록 매번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시는지. 그럴 때는 사무실에 다 왔다는 핑계로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회사 동료와 엄마. 두 사람의 싫어하는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가지 싫어하는 모습 모두 사실은 내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덜해졌지만, 나 역시 엄청난 고집쟁이다. 지금까지 줄곧 회사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왔고, 지금의 직장 동료처럼 이전 직장에서 누군가 나를 봤을 때 '쟤는 무슨 저런 고집을 부리는 거지?'하고 생각했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굉장히 답답해 보이기도 했을테고.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엄마 판박이처럼 내가 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요즘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를 떠올려 보면 대체로 내게 건네는 어떤 말에 대해 '공감'하기 전에 '판단'을 먼저 한다. 엄마처럼.


'아, 그건 이래서 그런가 보네요.'


뿐만 아니라 자주 혼자만의 상상을 덧붙인 의견을 던지기도 한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문득문득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비추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최근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연습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기'이다.


'아, 그렇군요.'


라고 먼저 대답해 보기.


어쨌든.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감정 소모이며,  쌍방으로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싫어하는 감정으로 인해 소모되는 에너지를 나를 위해 사용해 보기로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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