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상하는 마케터 Dec 19. 2019

오지랖이 태평양

자기랑 상관없는 일에 여기저기 참견하고 나서는 사람. 이처럼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오지랖’은 옷의 앞자락이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그만큼 다른 옷을 많이 덮게 되는데 이러한 모양을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의 성격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나는 정말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2006년~2010년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일을 했던 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기를 좋아했다. 내가 해 준 소개팅도 여러 건이었다. 회사에 같이 다니고 있던 팀의 언니와 친한 동아리 선배를 소개해 줬는데 소개팅을 한 이후에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 듯했지만 선배는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 건지 알 수 없는 듯 행동을 했다. 언니도 선배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선배에게 ‘선배는 언니 어떻게 생각해?’하고 물어보았다. 선배 역시 언니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때부터 본의 아니게 연애코치(?)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두 사람의 결혼식 사회도 내가 봤다. 

이후에 동아리의 다른 선배와 내 고객도 소개팅을 해 줬다. 이번에는 연결만 해 주고 잊고 있었는데 다행히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두 사람 역시 결혼까지 하게 된다. 다른 선배도 소개팅은 해 줬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연결이 되지는 않았다. 영업을 하는 동안은 소개팅을 해 주려는 오지랖이 자주 발동했던 것 같다.

2011~2014년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보를 발견하면 지체 없이 친구에게 링크를 보내주었다.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들 특히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사촌동생과 숙모까지 가리지 않고 많이 보내주었다. 물론 그중에 오지랖이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함께 일했던 친구에게 SH 공사에서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공고를 보내주었는데, '한 번 해볼까?' 하고 별 기대없이 신청한 친구가 당첨되어서 그토록 꿈꾸었던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소개팅해준 커플이 결혼을 했을 때처럼 아주 뿌듯한 순간이었다.


2015-2017년

명상요가를 시작하고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이 나아졌다. 내 생에 처음으로 새벽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을 꾸준히 다닌 첫 번째 운동이었다. 몸이 좋아졌고, 마음도 건강해졌다. 인간관계를 포함해 나를 둘러싼 환경까지 모든 일들이 다 좋아졌다. 

이 좋은 걸 나만 할 수 없지

그래서 주변에 열심히 얘기하고 다녔다. 거의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얘기했던 것 같다.


2018년 어느 날.

원장 스님께 고민 상담을 했다. 

명상을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지랖을 조금 줄여보라는 말씀이셨다. 외부로 쏟는 신경을 내부로 돌려보라고 하셨다. 말씀대로 해 보기로 했다. 끊임없이 외부로 쏟고 있던 신경을 내부로 돌리니, 이전에 했던 나의 수많은 오지랖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 들어가 며칠 숨었다가 나오고 싶었다. 나의오지랖 대상었던 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주었던 것인데, 돌아보니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굳이 필요 없는데 강요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음.. 그건 마치 뭐랄까. 내 친구의 옆집에 살던 집주인이 냉동실에 얼마나 있었는지도 모르는 음식을 먹으라고 선심 쓰며 건네주었던 것과 비슷하다. 집주인의 마음이야 그 물건이 쓸모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없이 친구를 생각해서 준 거지만 친구는 ‘이런 쓰레기를 왜 내게?’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오지랖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예전의 습관 때문에 간혹 튀어나와 어느새 오지랖을 떨고 있을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아, 이러지 말아야지. 또 이러고 있구먼’하면서 오지랖에 제동을 건다. 그러다가 선배 부부와 밥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도 다시 명상요가를 권했다. "언니 감정조절에도 좋구요. 블라블라~" 그러자 선배가 "왜 이렇게 강요해?"라고 내게 한 마디 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상대에게 와 닿지 않을 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그동안 내가 펼쳤던 대부분의 오지랖은 상대에게 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라도 멈출 수 있고 또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