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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아 Dec 02. 2023

'자기'라는 뿌리

'자기 의심'에서 '자기 존엄'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라는 말을 듣고 최면에 걸린 듯 앞서 다투며 살기도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자기 의심'이라는 도구는 유용한 듯 보인다. 언제나 자기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그에 응당한 보상으로 연봉이 주어지며, 그것이 마치 우리의 값을 매기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는 누가 매길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숭고함의 뿌리는 바로 그 '자기 의심'으로 무너지는 것 같다. 뿌리라 함은 기초이다.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자기의 삶에서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 의심은 우리 자신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구제불능의 늪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자기를 의심하고 있는터라 자존심을 긁어대는 말들에 초연하기는 쉽지 않다. 타인에 자극에 쉽게 휘둘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의심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찾아온다. 나는 그랬다.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원인임에도 그렇게 나를 흔들리게 하는 상대에게 분노했다. 나의 가치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선뜻 나부터 나를 의심했다. 그렇게 나는 못난 구멍을 매우면 가치가 성장하는 듯했다. 의심하는 수단을 통해 성장하였기에 그 매서운 습관을 스스로에게서도 타인에게서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심하는 동물! 의심을 의심해 보기로 했다. 의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탐구의 도구일 것이다. 그렇다면 의심의 원초적 이유는 '이해를 위한 충동'같은 것 아닐까.  '이해를 위한 충동'이라는 근본적인 깊은 뜻을 헤아려 자기와 타자의 탐구의 초석이 되면 순기능일 것이다. 나는 나의 가치 판단의 도구로 의심을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쓸모없음을 느끼게 된 이유는 우리는 언제나 존엄하다는 것이다.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사실 악의적이지 않다.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는 순간 서로에게서 멀어진다. 또 나의 부족한 역사도 사실 의심해야 될 것이 아니라 탐구해야 할 사건이다. 의심을 의심하라. 그 방법은 간단하다. 의심을 다른 대상 혹은 나에게서 거두고 아무것도 조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도구, 탐구로 생각할 . 그럼 얼마나 건강한 사회일지 궁금하다. 쉽게 남의 탓하지 않는 사회. 의심하지 않는 사회. 얼마나 좋은가. '자기 의심'이라는 단어대신 존엄한 우리에게는 '자기 탐구'가 더 어울린다. 덧붙여 '자기 의심'은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공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공감은 아마도 '자기로부터의 공감'일 것이다.  자기에게 공감하는 것이 어떤 때에는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 그런데 그것이 세상을 신뢰하고 가슴을 여는 첫 번째 조건이다. 세상의 첫 번째는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 자기에게 깊이 공감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워 때로는 타인의 공감을 통하여 자기에게로 도착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자존감 자존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존중은 그렇게 자기 공감의 뿌리가 된다. 자기 공감을 하며 우리 자기 자신을 한번 믿어보자. 그렇다면, 자기 의심이 있을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의 뿌리는 지금 어떠한가. 우리 서로 의심하게 하지 말자. 서로의 가치에 대해서. 숭고함을 믿어보자. 나의 숭고함을 위하여.


 

나를 찾는 꿀팁

TIP. 자기 의심의 순간에 문득 피어나는 타인을 향한 의심. 누군가 우리의 가치를 의심하게 하는 그 순간이 온다면, 나와 남을 분리해 봅시다. 그도 결국 자신을 향한 의심을 도구로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자기 회복에 힘쓰는 시간 가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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