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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Jul 14. 2021

단편 여섯 번째

허씨는 작은 회사에 다녔다. 그런데 이 회사가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지역에 들어서 있는지라 회사 주변은 산이 많았고 특히 회사 뒤편에 바로 야산이 맞닿아 있었다.     


허씨는 어느 날 이런 위치에 사옥을 지은 이유가 궁금해서 대표에게 물어보니 대표가 하는 말이 자기는 풍수지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인데 지금 이 회사 사옥의 위치가 풍수지리에서 명당으로 치는 배산임수라 했다.  


허씨도 배산임수는 들어봐서 알고 있었지만 이 위치는 도저히 배산임수 일수가 없었다. 뒷산이 있으니 배산은 맞다 쳐도 사옥의 앞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흐르는 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임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게 허씨는 사장에게 한마디 들을 각오를 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대표는 허허 웃으며 얘기해주길 사옥의 정문에서 약 20m를 걸어 나가면 지금은 쓰지 않는 아주 오래된 우물이 있다는 것이다.

우물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물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배산임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씨가 생각하기에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허씨는 도시에서 자란지라 벌레도 흔하게 볼 수 없었고 산짐승은커녕 동물이라면 애완견을 보고 자란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여름날 야근이라도 하려고 하면 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옥의 방충망에 벌레가 끊임없이 날아들고 달라붙었다. 다들 징그럽네 어쩌네 기겁을 하며 피하기 일쑤였지만 어째서일까 허씨는 도시에서 자라며 흔하게 보지 않은 광경임에도 별로 거부감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엔 신기하고 자신이 자라왔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기에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방충망에 달라붙어있는 벌레의 이름을 포털에 검색해보고 급기야 나가서 직접 잡아도 보게 되는 것이었다.      

허씨는 이 색다른 환경이 정말 신선하게 느껴졌다. 

급기야 이 회사 정말 다닐 맛 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뒷산을 가볍게 걷고 있었다. 눈으로는 우거진 나무와 수풀을 감상하고 귀로는 부지런히 울어대는 매미를 비롯한 벌레들의 울음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노루 한 마리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허씨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허씨는 야생동물과 처음 마주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해 천천히 노루 쪽으로 다가갔다. 노루는 허씨의 발걸음 소리에 경계하듯 움직임을 멈추더니 재빠르게 풀숲으로 몸을 감추었다. 이내 가까이에서 들리던 풀숲을 헤치는 소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날의 일은 허씨에게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멀게만 느껴졌던 야생이 이날 이후로 좀 더 가깝게 느껴졌으며 자연과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이 무렵 허씨의 스마트폰 최근 검색어 목록에는 곤충 이름, 야생 동물, 숲 즐기는 법, 자연과 하나 되는 삶 등의 내용을 검색한 흔적이 넘쳐났다.

     

허씨는 며칠 뒤 동료들에게 그날의 노루 얘기를 해주었다. 신기해하는 동료들도 있었으나 그냥 시큰둥해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허씨는 노루를 직접 데려와 보이기 전까지는 이런 이야기에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다음번에 산에서 동물을 만나면 무조건 그 증거를 생생하게 가져와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틈만 나면 뒷산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허씨는 뒷산을 가볍게 걸으며 여기저기 살피고 있었다.

한 열 발자국쯤 떨어진 위치에 풀이 듬성듬성 자란 곳이 있었는데 그 주변의 땅이 일렁이는 것 같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꼭 알록달록한 천 쪼가리 뭉치가 슬슬 움직이는 것 같았다. 

허씨는 날이 너무 더워서 환시라도 보이는 것인가 하고 그 지점을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색과 검은색 띠가 휘감은 듯한 뱀 한 마리가 풀 주변을 천천히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씨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뱀을 실제로 보는 것이 처음이거니와 이 놀라운 광경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저 뱀에게 독이 있는지 어떤지 그런 것은 뒷전이었다. 허씨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뱀. 바로 그 녀석을 놓칠 수 없었다. 만약 이 뱀을 잡아서 동료들 앞에 보여준다면 자신이 자연에서 겪은 놀라움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으리라. 급기야 허씨는 뱀을 잡아야겠다는 일념에 사로 잡혔다.      


뱀을 잡기 위해 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느다란 나뭇가지, 돌멩이 밖에는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그렇게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부러진 각목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씨는 냉큼 달려가 각목을 주워 들었다. 주워 들고 보니 버려진 지 꽤 오래됐는지 여기저기 흙이 묻고 때가 타서 거무튀튀했지만 단단한 것이 꽤 쓸 만해 보였다.     

허씨는 다시 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막상 잡으려고 하니 잡으려고 생각만 했을 때와 실행에 옮기려는 때의 무게감이 왜 이리 다른지 가까이 다가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도 허씨는 꼭 뱀을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천천히 다가갔다.     


뱀은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고 그 주변을 천천히 배회하고 있었다. 

허씨는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준 특집 다큐 ‘뱀 사냥꾼’을 인상 깊게 시청한 적이 있었다. 그 방송에서 땅꾼들이 뱀을 잡는 것을 인상 깊게 봤기에 뱀을 잡는 요령은 대강 알고 있었다. 


기다란 막대의 끝에 집게가 달린 장비로 뱀의 머리와 가까운 목 부분을 잡고 반대쪽 집게손으로 뱀의 목부분을 잡아서 들어 올린다. 요는 ‘뱀이 고개를 틀어 손을 물지 못하도록 머리와 최대한 가까운 부분을 잡는다’였다.


그러나 지금 허씨에게 그 장비는 없었기에 허씨는 부러진 각목을 응용해서 뱀을 잡아야 했다.

천천히 다가가서 각목의 부러진 부분으로 뱀의 머리를 잽싸게 눌렀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뱀의 머리에 가까운 목을 집게손으로 꽉 눌러 쥐고 뱀을 들어 올렸다. 

    

허씨는 뱀을 잡은 손의 힘이 풀릴세라 재빠르게 회사의 야외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분리수거장 한편에 늘 쌓여있던 마대자루 더미에서 하나를 집어 들고 뱀을 담은 뒤에 자루의 목을 얼른 휘감았다.  

   

그 후 마대자루를 동료들 앞에서 열어 보였고 동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허씨는 너무도 뿌듯했다.      


그런데 멀찍이 서서 보고 있던 이 과장이 다가오더니 한마디 했다.

      

“그거 능구렁이야. 건강원에 팔면 돈 좀 될걸?”     


허씨는 전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발상이었다. 오로지 자신이 자연에서 겪었던 경이로운 순간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자연과 가까이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돈과 연관 짓는 것에 일순간 허탈함이 들었다.

     

“과장님은 이렇게 자연과 하나 된 순간에도 돈으로 연결하셔야 하나요?”     


“농담이야 농담. 근데 진짜로 돈 좀 될 건데.”     


그렇게 동료들 사이에 '풀어줘라.', '팔아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갔고 오래지 않아 하나둘 퇴근을 했다. 

허씨는 자루를 들고 회사를 나왔다. 뱀이 든 자루를 트렁크에 넣어두고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허씨는 시동도 걸지 않은 채 날카롭고 진지한 눈빛으로 한참을 조용히 앉아있었다.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허씨는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들더니 유명 포털에 접속했다.     

빈 검색창에 무언가 써넣고는 검색을 하자 검색 결과가 쭉 뜨며 스마트폰의 화면을 가득 메웠다.          



하늘 건강원

지리산 건강원

신선 건강원

장수 건강원

.

.

.   



한참 검색 결과를 살피던 허씨는 이내 시동을 걸고 시내로 향했다.


그렇게 20분이나 달렸을까 시내의 한 건강원 앞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어 자루를 들어보니 웬걸. 자루가 너무도 가벼웠다. 


일순간 허씨는


'뱀은 너무도 예민한 동물이라 그 사이 말라죽은 건가? 그래서 이렇게 가벼워졌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허나 그건 허씨의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


분명 자루 안은 텅 비어있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상황이었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자루를 살펴보니 자루의 한쪽 귀퉁이가 뚫려있는 게 아닌가.     


허씨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뱀이 자루 밖으로 나와 차 안 어딘가로 기어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뱀이 자루를 이빨로 물어뜯고 구멍을 내서 나왔나 하는 생각에 자루의 구멍을 살펴보니 분리수거장에서 사용하는 오래된 마대자루인지라 한쪽 귀퉁이가 조금 헤져있었는데 뱀이 그 틈을 비집고 나온 듯했다.     


날마다 뱀과 함께 차를 타고 출퇴근한다고 생각하니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뱀 자체는 그다지 무섭다고 생각한 적 없었으나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을 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다.  

   

며칠만 지나면 익숙해지겠거니 하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이 갈수록 뱀이 바닥을 기어 다니다 자신의 발목을 물것 같고 운전석의 시트를 타고 올라와 뒷목을 물 것 만 같아 허씨는 너무도 불안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허씨는 차를 탈 때마다 뱀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느니 차라리 돈을 조금 들여서라도 차를 분해해 뱀을 찾아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허씨는 그렇게 시내의 자동차 공업사로 향했다.    

  

차의 시트도 전부 떼어내고 가능한 곳은 전부 분해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뱀은 나오지 않았다.     

공업사의 기술자는 거의 반이 해체된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쯤 했으면 뱀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은 없어요. 어딘가 틈을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간 것 같은데. 안심하고 타셔도 될 것 같은데요?”     


허씨는 기술자의 말을 듣고 한편으론 안심이 됐으나 뱀이 차의 밖으로 기어 나가는 것을 확실하게 눈으로 보지 못해서인지 속이 후련하진 않았다.


그 후에도 차의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어떤 잡음만 들려도 뱀일 것만 같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며칠 뒤 결국 허씨는 차를 폐차하고 오토바이를 구매했다.


동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허씨가 대답하기를 

    

“오토바이는 뱀이 숨을 데가 없잖아요.” 

    

이후로 허씨는 인터넷으로 구매한 뱀 잡는 도구. 일명 ‘스네이크 클램프’를 들고 틈날 때마다 뒷산으로 향했고 그의 스마트폰 최근 검색어 목록에는 뱀 잡는 법, 건강원, 뱀 물리면 어떡하나요 등을 검색한 흔적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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