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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Aug 15. 2021

성냥팔이 천사

단편 일곱 번째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아래의 세상은 아름답기만 했다.

     

소년은 꼭 한번 내려가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것은 소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하늘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살아가던 소년은 문득 자신이 하늘 아래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려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내려갈 수 없고 외모는 그들과 닮은 듯했지만 삶은 전혀 달랐기에 소년은 고뇌했다. 그렇게 점점 더 하늘 아래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하늘 아래에는 날이 갈수록 공장들의 수가 늘어났다. 수많은 공장들이 내뿜는 거뭇거뭇 한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와 하늘을 검게 물들이곤 했다. 그럴 때면 하늘 아래를 잘 보지 못했지만 맑은 날에는 어김없이 보았다.


소년이 하늘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눈에 띄는 또래의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소녀가 가난한 집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가엽게 여겼다. 소녀의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는 그래도 행복했던 소녀였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욱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검은 연기가 걷힌 어느 날 소년은 다시금 하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침 하늘 아래는 성 실베스터의 날이었기에 눈 내리는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모두가 맛있고 풍성한 만찬을 가졌고 표정은 모두들 밝았다. 

그런데 그 틈에서 어느 한 소녀만이 맨발로 밖을 거닐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소녀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소년은 호기심에 소녀를 지켜보았다.  

   

소년이 평소 눈여겨보던 바로 그 소녀였다. 


‘이 추운 겨울에 맨발이라니.. 그리고 공장에서 검은 연기를 만들어 낼수록 부유한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저 소녀는 어째서 저래야 하지?’ 

     

추운 겨울날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집 안에서 풍족한 음식을 먹고 있는 반면 맨발로 길가에 서있는 소녀가 있는 등 소년은 인간 세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연기를 잔뜩 만들어내 하늘을 검게 물들이는 이들은 따뜻한 집에서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고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해 버리기까지 하는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착하기 만한 소녀는 왜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이 해답 없는 질문에 의문을 가진 채 소녀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이내 주머니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팔기 시작했다. 유심히 보아야 성냥을 파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지 그저 힘없이 성냥을 들고 서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누구도 성냥을 사려하지 않았고 소녀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소년은 이 성 실베스터의 날 저녁이 소녀를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아래의 이 성스런 날이 누구에게는 축복이고 누구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소년은 소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또래의 아이들처럼 응석받이일 나이에 거리에 나와 저렇게 고생을 하다니. 그런데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는 걸 보니 저 아이야 말로 천사인 게 분명해.'


소년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성냥을 파는 것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이대로 소녀가 집으로 돌아간들 분명 술 주정뱅이 아버지의 구박 그리고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릴 게 뻔했고 성냥을 팔아 돈을 벌기 전까지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기에 추위에 떨다가 곧 소녀의 생명이 다할 것도 뻔해 보였다.


소년은 결심했다. 소녀를 돕기로 한 것이다.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저 소녀가 하늘 아래에서의 삶이 스러져야만 한다면 하늘 위에서 천사로 살았으면 좋겠어.'


소년은 소녀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러 대천사를 찾아갔다.


대천사를 찾아간 소년은 성냥팔이 소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늘 아래에 사는 어떤 소녀가 있는데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졌어요. 그런데 너무 가엽고 딱해요. 왜 항상 착하고 죄 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시련이 있는 거지요? 차마 그냥 볼 수가 없어요.”   

  

대천사는 말없이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 소녀는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집으로 다시 돌아가도 행복하게 살지 못할 게 뻔해요.”  

  

“소년이여 네 덕에 저 소녀의 삶이 가엽다는 것은 나도 알게 되었으나 너도 잘 알겠지만 우리는 인간들의 삶에 관여할 수가 없어. 그저 신의 가호를 바랄 뿐이네.” 


인간의 삶은 하늘 위의 천사들 맘대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소년이었으나 대천사라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왔던 소년이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천사가 물었다.


“정말로 돕기를 원하는가?”     


“네. 소녀가 곧 하늘 아래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면 천사로서 하늘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소년은 그저 마음씨 착한 소녀가 천사로 살 수 있게 돕고 싶었다.


“가여운 소녀를 도우려는 너의 마음이 아름답구나. 너의 바람을 들어주도록 하겠다. 보아하니 저 소녀는 곧 삶의 등불이 꺼질 것이다. 그것은 내 어찌할 수 없으나 소녀가 하늘나라에서 새 삶을 살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하늘 아래로 내려가 소녀가 놀라지 않을 방법으로 소녀의 영혼을 데리고 오너라.”    


소녀를 도울 수 있게 된 소년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졌다.

소년은 마침 소녀를 데리고 올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소년은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는 소녀의 할머니를 찾아 소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소녀의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손녀를 위해 기꺼이 소년을 돕기로 했다.  

   

소년은 하늘 아래로 내려가 몰래 소녀의 주머니에 있는 성냥들을 요술 성냥으로 바꿔치기했다.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성냥을 팔기 위해 맨발로 거리를 걷던 소녀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눈이 소복하게 뒤덮여 있었다. 

소녀는 머리 위의 눈을 털어낼 기력조차 없었고 성냥은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아, 이 성냥 하나만 켜면 얼마나 따뜻할까'    


소녀는 너무도 추운 나머지 성냥 하나를 그었다.     

성냥은 아름다운 빛으로 타올랐다. 

불은 소녀의 손을 녹이기엔 충분했지만 금방 꺼져버렸기에 얼어버린 발까지 녹일 수는 없었다.


소녀는 성냥을 하나 더 꺼내어 그었다.

두 번째 성냥은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찬 풍성한 식탁이 되었다.

소녀는 신기하고 놀라워 눈을 뗄 수 없었지만 금세 사라져 버린 그 광경이 너무도 아쉬웠다.     


소녀는 성냥을 또 하나 그었다.

성냥은 커다랗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어 소녀가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장면을 선물했다.  

   

성냥을 하나 더 그은 소녀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


할머니를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남은 성냥을 전부 그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더욱 또렷하게 소녀의 앞에 나타났고 소녀는 할머니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년은 눈물이 핑 돌았다. 소년은 소녀의 할머니와 함께 소녀의 영혼을 인도해 하늘로 향했다.     


하늘 위로 올라온 소녀는 더 이상 할머니와 작별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름다운 천사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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