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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작가 Jul 11. 2020

나에게 책이란

벽에 막힌 고급 정보를 대중에게 흘려내는 일


1. 나름 네권, 그리고 개정판을 내서 1판을 절판한 책을 제외하면 세권의 책을 쓴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한 권도 쓰기 힘든 일이라 하지만 원래 이런 일은 정지마찰력과 운동 마찰력의 차이지. 방법을 알게 되면 처음보다는 덜 막막하다. 물론, 방법을 안다고 더 쉽지는 않다. 다이어트 방법을 안다고 쉬운게 아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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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을 쓰는 사람이라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사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는 생산에 시간을 조금 더 쓰는 사람 유형이기에. 그래서 내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책 읽는 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거든. 나부터도 게으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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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럴 의도로 책을 쓴건 아닌데, 최소한의 정성을 보이는 사람을 가르는 잣대로 쓰인다. 여건이 안되고 외국에 살아서 결제 수단이 다 막힌거라면 모를까, 페이스북 글에는 좋아요 댓글을 엄청 달고 온갖 미사여구로 존경한다 공감한다 말하지만 내가 그토록 정성을 다 한 책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 무료로 공개하는 글에도 인사이트가 담겨 있다면 값을 받고 펴내는 책에는 얼마나 더 큰 정성을 담았을지 짐작이 안되는 걸까? 말뿐인 칭찬보다는 묵직한 한 번의 실행이 가치있다. 어지간해서는 ‘제 책도 한 번 읽어주세요’ 라는 말도 잘 안하는데, 일부러 껍데기 칭찬을 하는 사람에겐 저 말을 던진다. 그리고 단 한차례의 예외도 없이 저 말에서 각종 핑계를 대며 주저리 대고 물러선 사람들은 끝내 그 이후 다른 계기로 연락이 끊겼다. 정말 단 한차례의 예외도 없는게 너무 신기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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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던히 노력한 끝에 세계 최고 수준의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상황까지는 다다른 지금, 이 세계에서만 당연한 듯 통용되는 상식과 언어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곳에 다다르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와 비법들. 나는 설명을 잘 하는 편이다. 처음부터 공부를 잘한게 아니라 낮은 성적부터 높은 성적으로 발전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타고난 수재로 살아온 교수님들이 설명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그런지 이해도 간다. 그들에겐 이해가 안되는게 흔치 않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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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사들이 극히 간단한 용어도 의학 용어로 이야기 하며 권위를 확보하듯, 비즈니스 슈퍼 프로페셔널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끼리는 당연하듯 그 말을 쓰지만 그는 결국 권위의 상징이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결코 한번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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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그것 아는가? 의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손쉽게 풀어 쓰면 정말 별 것 아닌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그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면 대중도 얼마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이는 권위의 상징인 동시에, 그들은 그렇게 어렵게 말해도 다 이해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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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래서 고급 정보는 벽에 막혀 아래로 흘러 내려오지 않는다. 컨설팅사에서 슬라이드 만드는 법에 대한 교육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냥 혼나가며 배운다. 근데 그 곳은 그래도 돼. 그냥 혼내도 다 알아듣는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시간이 지나면 다 알아서 익히거든. 굳이 친철한 설명 같은거 안해도 다 알아듣는 사람들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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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는 내가 ‘부족해봤던’ 사람이기에, 현재 덜 발전한 분들이 생각하는 포인트를 잘 안다. 무엇이 이해가 안될거고, 어떤 것은 명문화 해서 알려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이게 내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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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운좋게 글로벌 탑 클래스의 사람들과 일하고 있지만, 내가 이 안에서 실력으로 최고였던 적은 한번도 없다. 평균 수준에 가면 다행이고 대부분 차에 묶여 매달린듯 질질 끌려가고 피투성이가 되며 간신히 따라갔다. 과거 다녔던 학원 버스에 내 가방을 놓고 내린적이 있다. 내리자 마자 깨닫고 버스를 뛰어서 30여분 쫒아갔다. 닿을듯 하면 멀어지고, 다 잡았다 생각하면 또 멀어져 울면서 따라간 기억이 있다. 내 삶은 그런 삶이다. 한 번도 내가 속한 집단에서 요구되는 능력으로 압도해본 경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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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다. 내 책은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 보면 대부분 뻔한 이야기다. 그렇겠지. 그들이라면 알아서 터득할만한 이야기들일테니까. 그러나, 내 책의 타겟 독자는 최고가 아닌, 50-80점의 능력을 가졌지만 90점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풀어 설명하는 일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인 동시에, 이 세계에 속한 누구도 잘 하지 않는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다. 아는데 안하는 사람들 말고,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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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책을 쓴다. 나에게 ‘책 쓰기’는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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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재성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 생활을 거쳐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담당했다. 현재 카카오에서 전사 전략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행동의 완결』(안나푸르나, 2019)과 에이콘출판사에서 펴낸 『퍼펙트 프리젠테이션』(2012),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2』(2017), 『퍼펙트 슬라이드 클리닉』(2020)이 있다. 『퍼펙트 프리젠테이션』은 삼성전자와 제일기획 직원 프리젠테이션 교재 및 다수의 수도권 대학에서 프리젠테이션 주교재로 채택돼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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