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내 자신에 대한 내 스스로의 믿음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너무나 작게 보인다.
어떨 때는 비참하다는 생각도 든다.
조직이라는 공간이, 25일만을 한없이 기다리는 마음이, 굽실거려야 하는 나의 태도가, 불의를 보고도 꾹 참아야 하는 나의 행동이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아니면 딱히 갈 곳 없는 나의 수준이 나를 작게 만든다.
있는 척, 잘난 척 온갖 거만한 태도를 취하지만 이런 행동이 나의 심리 상태와 정확히 반비례한다.
내가 작아 질수록 내 행동은 더욱 거만 해진다.
이럴 때면 나만 불행해 보인다.
이유야 뻔하다.
12층 독거인에게 근 몇 일 꾸준히 욕 들어먹어서 그렇다.
사사건건 모든 결과가 못마땅한 가보다.
“야, 이거 시장분석이 제대로 된 거 맞냐?”
아니면
“이거 제품별 재고 건전성이 왜 이 모양이야?”
이것은
“너 이제 그만둬라”
은연중 암시일까?
아니면 진짜 독거인에 말처럼 내 긴장의 끈이 풀어진 결과일까?
주기적이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아무 생각 없이 암흑천지의 내 앞날을 생각해 본다.
이곳에 남아 있을 경우, 과감히 퇴사를 할 경우 양자 택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후자를 선택할 용기가 없다.
아쉽다.
아주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만약 내가 혼자라면 후자의 선택이 가능할까? 하지만,
“전자를 선택하더라도 와이프와 딸들이 있는 게 좋겠어.”
김훈의 소설 ‘흑산’에 나오는 구문이 생각난다.
“나둬라, 그도 그 애비에 자식이다.”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1인이라는 사실이 기쁘다.
‘내가 좋아하는 것’
피천득 님의 수필집 ‘인연’의 구문이다.
한없이 우울해질 때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리해 적어 둔다.
지난 번 우울할 때는 뭘 썼지?
비교하는 맛도 쏠쏠하다.
1. 비 오는 날의 운전. With heavy metal
2. 양평 서종면 ‘엔 로제’ 에티오피아 핸드드립 커피.
3. 봉화 청옥산 자연휴양림.
4. 지금 이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는 책 한 권.
5. 이촌동 ‘미나미’ 스시.
6. 영화 ‘화양연화’의 장만옥이 입던 그 옷의 색감들.
7. 찜질방 한구석에서 땀을 빼던 나.
8. 두산의 승리를 위하여 ~~ 오늘도 힘차게 외쳐라 ~~ 응원석 상단의 두 딸과 나
9. 백주(白酒) 백년호도(百年糊涂).
10. 서산 개심사의 청 벛꽃.
11. 사장님, 나이스 샷!!
12.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만의 제임스 본드(James Bond).
13. DC 코믹스의 피규어.
14. 겨울에 내(川)를 건너듯 네 이웃을 조심하라.
15. 언제나 함께하는 내 작은 수첩.
16. 꽉 들어찬 강연 스케줄.
17. 새롭게 떠오른 창작의 아이디어!!
18. 겨울이 주는 포근함.
19. 아니 벌써 퇴근 5분전.
20. 그리고 S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