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일 차 아기 육아일기
나는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쉽게도 과거형이다.) 아이들에게 영어책의 재미를 알려줄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학급에서 영어독서동아리를 3년 간 자발적으로 운영하며 교실을 영어도서관처럼 꾸몄다. 동아리 시간에는 활동과 자료를 100% 손수 고안 및 제작해서 수업을 운영했다.
학생들도 좋아했고, 영어책에 흥미를 붙이는 모습이 보였으며 그래서 나도 즐거웠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복직한다면 또 그런 수업을 운영하고 싶다.
엄마표 영어, 태어나자마자 바로 시작이다.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고, 우리 집을 도서관처럼 꾸미기를 얼마나 기대했던가!
나는 교사로서 책 읽기의 힘과 중요성을 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책을 많이 샀다. 꽂아둘 책장이 없게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우리말 책과 영어책 각종 전집들을 사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 꽂아만 놨지, 생각보다 활용이 안 된다. 변명을 하자면 아기와의 시간은 바쁘다. 밖에 산책을 나가는 것도 아닌데 집에서 뭔가 사부작사부작하다 보면 책을 1~2권 정도 읽어주면 어영부영 시간이 가버린다.
이렇게 무턱대고 사들이는 게 아니었나, 홈쇼핑의 말빨 좋던 언니가 갑자기 원망스럽네. 충동적으로 전집을 질러버린 나. 역시 오늘도 나는 MBTI 성향 P구나를 느낀다.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주최한 안정주 교수님 강연을 신청해 듣게 되었다. 하필 아기 재우는 시간과 동시에 시작되는 zoom 강의라 들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사람은 배워야 발전하니까.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품에는 아기를 안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강의가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느슨했던 아기 독서생활에게 긴장감을 주었다. 지금 내가 책을 사다만 놓고 돈을 쓴 것에 대한 만족감만 느끼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았던 강의라도 메모하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더라. 그래서 간단히 메모해 봤다.
책이 마음의 푸근한 고향이 되게 해야 한다.
주말마다 도서관 가는 게 루틴이 되면 좋다.
무턱대고 부모가 읽어주지 말고 아기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자.
부모가 읽어주다가 그림에 있는 짧은 문장, 쉬운 문장을 읽을 수 있도록 하면 아이의 참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기가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
우리 가족만의 독서 문화를 만들자
남의 집 어떻게 하는지보다 우리 아이에게 맞게 하자.
7세 고시 같이 딱딱한 공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미 위주로 하는 게 중요하다.
한글책과 영어책의 비중은 7:3 정도가 좋다.
앉아서 진득하게 들었으면 더 많은 내용이 머리에 쏙쏙 박혔을 텐데. 목욕시키랴 재우랴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듣길 잘했다.
나는 책을 오늘 읽어줘도 그만, 내일 읽으면 되니까, 하니 잘 안 읽어주게 되고 진도가 안 나가고 인풋이 절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그래서 하루 3권은 꼭 읽어주자고 다짐한다. 3권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정량적인 숫자를 정해놓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난다.
이때 꼭 매일 다른 세 권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른인 나도 같은 영어 그림책을 반복적으로 읽으면 문장이 더 익숙해지기도 하고 처음엔 못 보던 그림이 보이기도 한다. 하물며 지루함을 모르는 아기는 어떻겠는가.
그래서 사두었지만 잊고 있던 새 몬테소리 스툴을 꺼냈다. 거실 한 켠에 이렇게 스툴을 두고 다음 날 읽을 책을 이렇게 준비해두고자 한다. 그리고 아기가 크면 책장에서 직접 뽑아 이 스툴에 올려두도록 하면 좋겠다.
인스타에서 유행하기 전부터 거실을 서재화 하는 게 나의 작은 로망이었는데 언제 이루어지려나! 그날이 오면 이 스툴 대신 전면책장에 꽂아두면 보기에도 예쁘겠지. 그러나 육아는 실전이다. 그런 소위 '갬성'으로 하는 게 아니다. 주어진 작은 공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냐, 하는 실전이다. 이건 잠깐 딴소리였다.
그리고 축복이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읽어주기만 했던 것 같다. 축복이가 4개월이라 말을 못 한다고만 생각하고 책을 읽어주기의 핵심은 상호작용과 대화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축복이가 내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순 없겠지만 자꾸만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나는 공부로 아기를 짓누르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책 읽어주기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의 목표는 '재미'다. 일단 한 번 재미를 느끼면 말려도 책을 읽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엄마표 영어의 목적은 '영어책에 흥미를 붙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실천에 옮길 차례다.
축복이와 함께 영어책을 즐기며, 그 재미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