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예언(?) 그데로
6.25 이야기를 좀 해 보자. 6.25 전쟁은 최종 휴전까지 3년을 이어졌지만 실재 전선의 유의미한 변동은 전쟁발발 후 1년 동안만 이루어졌다.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연합군의 전략적 후퇴도 어느 정도 추스러지고 난 후엔 38선 일대에서 큰 전선의 변동 없이 고작 '백마고지' 하나를 뺏고 뺏기고 남은 2년을 주거니 받거니 양 측 모두 축차적 손실만 늘려가다 그렇게 2년을 협상해 결국 휴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2년 동안의 전선고착'은 개입 당사자들 간에 "우리 38선 일대에서 전선을 고착시켜 상황을 전쟁 이전으로 돌리는 식으로 적당히 시마이 치자"라는 암묵적 합의? 가 없이는 쉽게 나타나기 어렵다.
맥아더와 워싱턴의 갈등은 당시 미쿸의 고뇌를 잘 보여준다. 당연히 맥아더는 그 성정상 "이 즘에서 적당히 시마이"같은 걸 납득해 줄 만한 인물이 못됐다. 그는 만주벌판에 핵탄두를 처 갈겨서라도 이 전쟁을 계속 강경하게 밀고 나아가 지구상에서 부카니스탄을 쓸어내고 완승을 얻어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워싱턴은 2차 대전의 불꽃을 추스른 지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3차 대전의 리스크를 다시 짊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고 결국 맥아더를 경질, 리지웨이 중장을 그 자리에 올렸으며 다들 너무나 잘 알다시피 차후 연합군은 "38도선 일대에서 적당히 추스른다."라는 방침에 너무나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젤렌스키 이승만은 도무지 이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는 피를 본 김에 지금 끝장을 봐야 한다 여겼기에, 계속해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반공포로 석방'과 같은 무리수까지 던졌지만 결국 미쿸은 그러한 그를 패싱 해버리고서 휴전협정에 도장을 찍고야 만다.
3차 대전을 각오하고서라도 이 시점에서 공산진영의 야욕을 완전 분쇄시켜야만 했다는 이승만-맥아더의 입장.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는 결국 '그 입장'이 기각되고 70년이 넘게 흐른 오늘을 살아가는 너 나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발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실재 전선의 유의미한 변동은 전쟁발발 후 1년 내에서만 이루어졌다. 회심의 반격으로 헤르손시가 다시 우크라의 손에 넘어간 후엔 동남부 4개 주 일대에서 큰 전선의 변동 없이 고작 '백마고지' 하나를 뺏고 뺏기고 남은 2년을 주거니 받거니 양 측 모두 축차적 손실만 늘려가다 비로소 종전 협정 이야기가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동안의 전선고착'은 개입 당사자들 간에 "우리 동남부 4개 주 일대에서 전선을 고착시키는 선에서 적당히 시마이 치자"라는 암묵적 합의? 가 없이는 쉽게 나타나기 어렵다.
젤렌스키 이승만은 도무지 이를 납득할 수 없어 보인다. 그는 피를 본 김에 지금 끝장을 봐야 한다 여기는 듯 터키까지 날아가 불만성토를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우크라이나에서 대선을 다시 치러 말 많은 젤렌스키 이승만을 날려버리고 고분고분한 정권을 다시 창출해 전쟁을 끝내자"라는 미-러 합의였을 뿐이다.
3차 대전을 각오하고서라도 패전이나 다를 바 없는 이런 굴욕적인 조건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젤렌스키-이승만의 입장.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는 결국 '그 입장'이 기각되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 그때를 살아가는 후손들이 남기게 될 것이다.
+짤방은 작년 필자가 "서방세계는 이미 동남부 전선을 고착시켜 이 상태로 종전하길 원하고 있으며 젤렌스키 이승만이 계속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성가시게 굴면 그를 날려버리고 고분고분한 이들을 자리에 앉혀서라도 끝을 내게 될 것"이라 예언(?)했던 글이다. 링크는 댓글로 남겨두겠다.
https://brunch.co.kr/@pmsehwan/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