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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Oct 05. 2024

엄마 요즘 왜 이렇게 밥을 안 해?

“엄마, 요즘 왜 이렇게 밥을 안 해?”

“내가? 네가 우리랑 밥시간이 안 맞으니까 그렇지, 밥을 왜 안 해?”

주저하지 않고 즉각 반응한 스스로를 칭찬했다. 뒤돌아서며 아들을 흘겼다. 눈치 하나는.



밥 하기가 싫다. 여름이라서, 너무 더워서 싫었다. 지금은? 지금도 싫지, 뭐. 결혼 후 18년. 참으로 꾸준하게 싫다. 주부로서의 많은 역할 중 특히 요리는 내게 가장 큰 시련이다. 친정엄마의 요리 실력은 주변에서도 유명하다. 실제 음식점을 해 본 적도 있을 만큼 굉장하다. 연이어 같은 반찬이나 국을 내 온 적이 없을 만큼 그녀는 가족을 먹이는데 지극정성이었다. 나의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절, 엄마는 새로 지은 밥과, 점심 도시락과는 또 다른 반찬이 담긴 도시락통을 교실 앞에 두고 가곤 했다. 유난스러울 만큼 지극정성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자신의 딸래미는 주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주방에 자주 들어오면 여자가 음식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며, 결혼하면 입주 도우미 아줌마 쓰고 네가 직접 밥 하지 말라며 내게 기본적인 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자의 요리와 가사 전담을 당연하게 여기는 집안의 아주 평범한 직장인과 결혼했다. 친정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관심이 있었더라면 눈대중으로 배웠겠지만, 나는 그런 자가 아니었다. 하루 열 시간씩 일했던 직장 맘인 나에게 요리는 생존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 하긴 한다. 워낙 쉬운 요리 래서피도 많고, 어느덧 18년 차 아닌가. 특히나 한식을 좋아하는 큰아들이 된장찌개와 몇 가지 밑반찬에 허겁지겁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흐뭇해진다. 그러나 역시나, 나는 ‘그런 자’가 아니다. 휘뚜루마뚜루 음식을 쉽게 해 내는 자, 요리에서 큰 기쁨을 찾는 자. 나도 그들의 능력이 부럽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음식이 부럽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자가 아니다.



내 스스로가 먹는 것에 딱히 관심이 있는 않은데 한창 성장기인 아들들을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대령해야 하는 것도 곤욕스럽다. 밥은 밥이고 그 외에도 주방을 들락거리며 먹을 것을 찾는 아들들을 보면 비명을 지르고 싶어 진다. 정확하게 말한다. 나는 하루 한 끼도 하기 싫다. 메뉴를 고민하는 것도 싫고, 뭔가 주방에서 한참을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차려진 식탁을 보면 별게 없는 것도 기운 빠진다. 짜증 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큰아들은 자체적으로 오후에 등교하는 날이 많고, 학원을 다니지 않는 초등학생 작은 아들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이쯤에서 내 안에서는 신음이 새어 나온다.  



한국 음식은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혹독하게 훈련하고 찍어내는 한국의 케이팝 아이돌 그룹처럼, 편법과 각종 폭력 이슈도 ‘원래 그런 거야’라며 유소년 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세우는 스포츠 관례처럼,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K-Food 뒤에는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피, 땀, 눈물과 시름이 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지는 음식점의 음식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외국인 여행객들을 조명하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는 조금 꼬아진 마음이 든다. 그게 K-Food에 대한 기본 기댓값이 될까 봐 싫다. 누가 나한테 그런 상차림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K-Food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그 뒤에 있는 노동이 떠올라 마냥 좋아할 수만 없다. 오버인가?
 


“답답한 사람이네. 그냥 식단을 정해서 돌리면 되지. 일주일 치를 짜고, 그걸로 4주를 곱하면 한 달이잖아? 그렇게 1년 하면 되지.” 놀라운 J형 남편의 사고.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게 다르고, 식자재 가격이 달라지고,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게 다르고, 내가 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다르다고, 이 유두리 없는 인간아. 네가 해 봐라 그렇게 되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 식단의 틀을 정해놓으면 메뉴 고민 시 꽤 수월해질 수도 있고, 식비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5만 원으로 4인 식구 일주일 살기’ 같은 것이 요리 인플루언서 SNS 사이에서는 흔한 포스팅이다. 그것도 안 해본 것은 아닌데… 아니 안 해봤구나, 참. 참고해 보려고 했는데 이내 귀찮아졌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싫다고.   




책 ≪평평한 네덜란드에는 네모가 굴러간다≫에 따르면 네덜란드인은 저녁 식사 후 개인의 자유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요일별로 정해진 저녁 식사를 한다. 예를 들어 그날 피자를 먹기로 했으면 어지간해서는 피자를 먹는다고 한다. 임신한 맞벌이 부부가 저녁 식사로 냉동 피자를 먹고, 그 식단에서 태아에게 부족할 것 같은 영양소는 야채샐러드 등으로 보완하고, 그렇게 간소화된 저녁 식사 후 각자의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엄마나 태아를 위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사실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나는 북유럽에서 태어나야 했나 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수전 손택(1933-2004)은 그녀의 시대에 문화계의 중심에 있었다.

 

손택은 엄마로서의 의무를 우선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데이비드에게 요리를 해주지 않았어요. 그냥 음식을 데워줬죠.”
 ≪예술하는 습관≫

 


전업 작가도 아닌 내가 감히 식구들에게 저런 요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택근무 2년 차. 식구들은 ‘엄마가 집에서 근무 중이다’라는 자각이 없다. 엄마의 일은 일이고, 밥은 밥이다. 세탁은 세탁이고, 청소는 청소다. 그래서 오늘 나는 몇 끼를 했나. 이제 두 번째 끼니를 준비해야 한다. 주방이 한산할 그날을 꿈꿔본다. 꿈꾸다 보면 이루어지겠지.



오늘의 싱거운 이야기. 끝!







'아들 정말 싫다' 연재 근황:

그간 '아들 정말 싫다' 연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들(들)은 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연재를 이어가지 못했던 것은, 첫째, 매일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소재의 고갈이 있었습니다(슬쩍 말씀드립니다. 제 PC에는 데스노트가 있습니다. 그 폴더 안의 글들은 차마 공적인 자리에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죄수의 어두운 뒷모습, 그 그림자같이 앉아 있습니다. 인간 심리의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그것들은 아마 작가의(=저) 사후에 발견될 수도 있겠습니다.). 둘째, 어느 날 우연히 어느 분의 글을 보았습니다. 저의 육아 방식과 반대편에 서 계시는 아주 대단한 어머니였어요. 그 글을 보는데 '와 이 엄마, 심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졌어요. 내 안에서 나온 너무나도 즉각적인 반응에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누군가는 아들에 대한 내 글을 보고 같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연재였지만 그럼에도 왠지 뒷걸음질을 치게 되더군요. 두려워졌다기보다는 갑자기 내 글을 내놓는 것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미운 정도 정이니까요.


그랬습니다. 핑계지요... 곧 또 뵙겠습니다. 오늘은 슬쩍 음식 얘기로 우회해보았습니다. 괜찮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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