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사물들이 죄다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한 아침이다. 고 1 큰 아들은 모의고사 날이라고 8시가 조금 넘어 등교를 했다. 시험 날은 지각이 허용되지 않기에 오늘은 아들이 정상 등교하는 몇 안 되는 날이다. 초등학생인 작은 아들마저도 피구 연습을 한다며 일찍 학교에 갔고, 남편도 출근한 아침 10시에 나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집에서 혼자 있는 오전 시간은 1년에 손꼽을 만큼 흔치 않기에 나는 환호를 한번 내지를까, 집안을 발랄하게 뛰어다니며 좋아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1인용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재택근무 중이고, 오늘 오전에 집중해서 끝내야 할 일이 있지만, 이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했고 여느 때처럼 쉽게 설득당했다. 얇은 책을 하나 골라 들고, 이 책만 후다닥 읽고 일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고하는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라는 책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기록한 오래된 책인데, 때론 지루하고 때론 괜찮다. 아버지에 대해 이토록 자세하게 쓸 수 있는 작가에게 감탄을 했다가, 지지고 볶더라도 내 부모도 헤어지지 않고 함께 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들 각자로부터가 아니라 하나의 합쳐진 사랑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라고, 난생처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몇몇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나는 무심하게 슥슥 책을 넘길 뿐이다. 어제 오후, 부재중이라 내일 오전에 재방문하겠다는 우체국 메시지가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발신인은 큰 아이의 고등학교였다. 예상되는 바가 있었지만 나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아침, 나는 받고 싶지 않은 소식을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고, 곧 현관 벨이 울렸다.
“어머니, 최소 출결이 채워지지 않으면 1차로 학교 봉사를 하게 돼요. 그리고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사회봉사까지 가게 되는데, 사회봉사는 학교에서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거든요. 폭력문제라거나, 굉장히 심각한 사안일 때 주어지는 조치라서요…”
얼마 전, 담임은 아이의 출결 상황을 알리며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주, 아이는 출결 이슈로 학교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나도 부모 의견서를 제출해야 했다. 담임의 제안대로 아이가 아직 진로를 찾는 과정이고, 학업에 관심이 없어 출결이 좋지는 않으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교 생활을 지속하기를 원하므로 학교에서도 선처를 바라며, 앞으로 아이를 잘 지도하겠다는 뭐 그렇고 그런 내용.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별로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봉사를 건너뛴 사회봉사 결정 통지서 앞에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다. 나는 내용만 쓱 확인하고 옆 테이블에 문서를 둔 체 책을 읽어 나갔다. 도대체 내게는 조용한 날이 단 하루도 허용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거칠게 튀어나왔지만 내 감정을 모르는 척했다. 의기소침해진다거나, 버거워한다거나, 화가 나지 않기 위해 나는 서둘러 그 편지를 닫아 버렸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다 읽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은 건지 아닌 건지, 집중을 한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내가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의 중간에, 언제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오토카니 서 있는 건지, 아니면 넘어야 할 또 다른 문턱 앞에 서 있는 건지, 아니면 오늘도 어제와 변함없는 일상 중에 있는 건지 헷갈렸다. 나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싶은 건지 헷갈렸다. 사실 그냥 다 몰라버리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가라앉는 게 당연한 침전물처럼 또다시 가라앉았다.
사실 자기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 지금은 애한테 바짝 붙어서 병 고치는 데만 집중해야지, 남들처럼 쇼핑할 거 다 하고 취미생활 종교생활 다 하면 애는 대체 어쩔 셈이야? 정신 차려. 저런 애들 뉴스에 나오는 거 순식간이야.
-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내 단편소설 '그날의 정모' 중에서
“학교 가기 싫어.”
어제 오후, 잠에서 깨어 비틀비틀 걸어 나온 아들이 소파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오후 두 시까지 잔 사람이라기 에는 얼굴에 지친 표정이 가득했다.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학교 가기 싫은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레 “아, 학교 가기 싫어?”라고 반응하기도, “무슨 일 있어?”라고 묻기도. 그러니까 나는 피곤했다. 그 순간, ‘나도 지쳤어’라고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무 대꾸 없는 엄마에게 아이가 상처라도 받을까 봐 덜컥 겁이 나 뒤늦게 고개를 들어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뿐이었다. 아들은 씻고 학교에 갔다. 하교까지 1교시가 남은 시간이지만 위원회에 회부된 후 아들은 어떻게든 출석은 하려고 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다. 현실의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꾸역꾸역 학교에 가는 그 모습이.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학교에서 온 그 문서란.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생각보다 괜찮아요. 한번 믿어보세요.”
그녀의 딸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이제 열여섯이 된 아이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센터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그곳의 선생님들은 청소년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신 분들이라 노련하고, 아이들에게 그 어떤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미묘한 서열 경쟁 속에서 서로를 끝없이 비교하기 쉽다면, 그곳의 아이들은 진로 찾기라는 동일한 고민을 안고 서로를 응원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학교 밖을 경험하면서, 학교 내의 교우관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그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단단해지는 이야기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에 큰 안도가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게, 그러면서 뭉클해했던 게 바로 일주일 전임을 깨닫는다. 오늘 아침 학교에서 받은 문서를 받고 소파 안으로 몸이 꺼져버리든가, 될 대로 되라는 심경이었던 나는 그렇게 다시 조금씩 추슬러진다. 사회봉사든 뭐든 해야 될 것은 하고, 담임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문의를 하고, 아이의 마음을 살펴야지. 청소년 지원 사업에 대한 것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편견만 갖고 아무 정보도 모른 체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데, 그렇다고 또다시 자책하지 말고, 나에게 고마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고, 딱 거기까지만 하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 손을 잡아야지, 일으켜 세워야지, 그래야지,라고.
아들 연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아들에 대한 푸념 수준이 아니라 심각한 상황 앞에서도 나는 내 글을 내 놓을 수 있나.
이 글을 써 놓고 며칠을 망설였다. 성인이 된 딸의 정신질환을 뒤늦게 발견한 저명한 의사 부부.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딸의 엄마가 쓴 그 책을 나는 오랫동안 외면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그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 글을 올려본다.
나는 브런치스토리에서 학교 밖 이야기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100명의 삶은 100가지로 서로 다르다. 그런데 왜 나는 알아보지 않았을까. 왜 나는 무기력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까. 이제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