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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n 03. 2024

0. 출국

울지 않아

“너 어쩌려고 그러냐?”
아이슬란드로의 출국일,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는 시어머니의 말에 나는 휘청거렸다. 아이슬란드로의 나 홀로 18일, 나는 남은 자들을 걱정할 게 뻔한 시부모님 생각에 여행이 아닌 출장으로 시아버님께 말씀드렸다. 남편에게도 그리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아이슬란드의 도서관에서 발표 일정이 있으니 아예 거짓말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랬고, 무엇보다 며느리가 18일 동안 집을 비운다는 것을 납득받기 어려울 것이 뻔했기에 출장으로 에둘러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어머니에게는 애초 그것이 출장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며느리가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엄연한 직장인이고 회사의 부장이며 맞벌이에 가사 노동까지 전담해 왔다는 것에 대해서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남은 남자 셋은 어쩌려는 거야?” 

남은 남자들. 그러니까 본인의 아들과 열일곱, 열두 살의 손주들.






그날 아침, 나는 엄마의 출국 일마저도 학교를 짼 큰 아들에 대해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쩌면 엄마가 가는 날마저도 너는 이럴 수 있니. 게다가 출국 시간은 저녁이었지만 당일에도 챙겨야 할 게 산더미였다. 그저 일상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이 살아오고 있는 터에, 3주 가까이 비는 시간을 커버하기 위해 회사 일을 하느라 없는 시간을 쪼개어 썼고, 나의 부재 시의 상황을 위해 전날까지도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했다. 머릿속이 분주해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약상자를 꺼내 네임 표를 붙이는 등, 붙일 수 있는 네임 표는 죄다 붙이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각자의 스케줄을 재차 귀띔해 주고 일정표를 거실에 붙여두었다. 냉장고 청소 등 일주일 전부터 해온 대청소로 이미 체력은 방전된 상태였다. 공항에 시간에 맞춰 갈 수는 있으려나. 겨우 18일을 비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이토록 시끄러운 일일까. 슬픔과 좌절, 분노가 동시에 올라왔다. 빨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도망.’ 그 단어가 머릿속에 박혔다. 이번 여행으로 나는 엄마들의 나 홀로 여행을 장려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널브러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서 뭘 하겠다고. 입안이 쓰디썼다.



그리고 그날 아침, 친정 엄마가 들이닥쳤다. 각종 음식이 든 대형 아이스박스를 두 개나 끌고. 일흔이 다 된 나이에도 변변치 않은 자식들 탓에 여전히 가장으로서 일을 하고 아들 집의 생활비까지 거들고 있는 엄마였다. 밤새 음식을 만들고 당신의 출근도 짼 채 딸네 집에 새벽같이 달려온 친정엄마를 본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엄마는 내가 왜 아이슬란드에 가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왜 연락도 없이 오냐고. 내가 혼자 차분히 하려고 했는데!”



월요일 출근길에 세 시간 가까이 걸려 운전을 하고 왔다는 엄마께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엉뚱하리만큼 야멸차게 굴었다.



“너는 너 거 준비해. 주방은 엄마가 할게.” 
엄마는 학교에 가지 않고 자고 있는 큰 손주와,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처럼 지친 내 모습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잠시 후, 맹렬하게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토록 쌀쌀맞게 구는 척했던 나는 곧 항복하고 말았다.




공항으로 출발하는 오후 다섯 시까지 시간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고, 엄마가 주방에서 네다섯 가지 국과 찌개, 또 네다섯 가지 밑반찬을 만들고 소분하여 스무 개가 넘는 통에 담고, 반찬 명과 먹는 순서를 써서 택을 붙이고 냉동실과 냉장고에 착착 담는 동안 나는 내 짐만 싸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하려던 반찬 만들기를 하고, 욕실 청소까지 한번 하고, 집안 정리까지 마친 후에 공항버스를 타고 출발한다, 가 애초의 나의 야심차고 무모한 계획이었다.



쏜살같이 주방으로 들어가 뒷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데 안도감과 함께 착잡한 마음이 올라왔다. 평소 여자의 고통을 또 다른 여자로 대신하지 말자고 당차게 말해왔지만 과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왔던가? 단 한 번도?



그리고 시어머니의 불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는 그 짧은 순간, 약 15년 전의 기억이 나를 가격했다. 세네 살 무렵, 아이는 폐렴으로 병원 입원이 잦았고, 남편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의 일주일 입원 중 단 하루도 보호자로 병원에 머물 수 없다고 했다. 그 시절, 나 또한 새벽 2시까지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 십여 명의 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팀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였으므로, 어쨌거나 닥치고 엄마이므로, 아이와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건 당연히 나였다. 남편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배신감에 나는 당시 나와 아주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이에 대해 푸념했다. 시어머니였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너희 시어머니… 전화 오셨더구나. 네가 예의 없이 굴었다고, 너 친정에서 데려가라고…. 너... 엄마가 마음에 안 드는 결혼이었지만 네가 좋다고 해서 허락한 건데, 사랑받고 사는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이랬던 거니? 우리는 네 선택을 다 따를 거야. 그리고 돌아올 거면 동규(가명)는 시댁에 두고 오너라.”



친정엄마가 끔찍하게 여기는 첫 외손주였다. 만 두 살까지 본인의 집에서 본인이 키우신 아이였다. 그러나 딸의 미래를 위해, 그 아이를 두고 오라는 말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해한다는 그 말은, 그래도 어떻게든 그 집안에 붙어있으라는 말보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어머니, 오늘 저 출국 날인데 잘 다녀오라고 먼저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전화하시자마자 그리 말씀하시니 너무 섭섭하네요.”



나는 15년 전의 그 앳된 여자가 아니었다. 내년이면 결혼 20년 차였다.



“아니 얘기하려고 했지! 그런데 남자 셋은 어쩌고?


“어머니, 이 집에 아기 없어요. 그리고 걱정을 해도 제가 더 하고요, 준비도 다 해 놨어요. 잘들 지낼 거예요.”


“그래 알겠다, 잘 다녀와.”


어머니는 황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착하고 정 많은 며느리의 첫 도발에 어지간히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이제 가자. 늦겠다.”

학교를 짼 큰 손주를 깨워 밥을 먹이고 설거지까지 끝낸 친정 엄마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렇게 친정 엄마는 운전대를 잡았다. 20년 전, 엄마가 나를 캐나다로 배웅했던 그 시절과 똑같이 나는 엄마 차를 타고 있었다. 당시 나는 IMF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의 붕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부모를 졸라 외국행을 택했고, 지금의 내 나이였던 당시의 내 엄마는 끝없이 추락하는 당신의 삶 속에서도 딸을 응원했다. 그리고 그 딸이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과의 갈등 속에서 내 삶을 찾겠다고 떠나는 아이슬란드행을 묵묵히 응원했다.



“아까 말이야, 잘했어.”


공항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엄마가 불쑥 말을 꺼냈다. 시어머니와의 통화는 세네 걸음 거리의 주방에서도 들리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 후에도 말없이, 더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통화 내용은 친정 엄마에게도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있잖아, 계속 엄마 할 거야. 도울 수 있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잘 하고 와. 여기 걱정은 절대 하지 말고. 엄마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나는 엄마 역할이 싫다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몸부림을 치며 아이슬란드로 가는데 우리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다 도와줄게.’ 일흔의 여자는 오십 줄이 되어가는 딸에게 그렇게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제쯤이면 나도 엄마의 고단한 삶에 그늘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언제쯤. 언제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창 밖만 노려봤다.




비행기가 어느 추운 지역을 지나가고 있나 보다. 한기가 느껴지면서 돌연 눈물이 팍 쏟아졌다.



‘울지 않아.’  



나는 허공을 노려보며 눈물을 꾹 삼켰다. 그러나 눈물은 이미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엄마, 고마워요. 미안해. 사랑해.’



밤 비행기 내부의 어두운 조명에 기대어 나는 오랫동안 가만히 울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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