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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n 04. 2024

1. 기내 난동 사건

범인은?

“어… 어??? 어???!!!!!!”
 


인천공항에서 핀란드의 헬싱키 공항까지 수시간을 날아왔다. 이곳에서 1시간 40분 후 아이슬란드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나는 착륙 직전 좌석 위의 선반에서 배낭을 꺼내 놔야지 싶었지만 시기를 놓쳤고, 착륙 완료 신호가 떨어지자 승객들이 일제히 일어서는 바람에 내 배낭이 있는 곳으로 가지 못했다. 탑승할 때 내 자리 바로 위의 선반은 자리가 꽉 차서 조금 앞 좌석의 선반에 배낭을 두었었다.



사람들 차례대로 내리면 찾아 오지 뭐.



내 자리는 뒤쪽 끝 자리인 화장실 앞이었고, 결국은 앞쪽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야 앞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반을 보는데……. 없다. 배낭이 없다. 옆 선반에도 없다. 분명 여기 두었는데. 나는 말 그대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 가방... 가방이 없어요. My bag is gone!”

나는 한국어로 했다 영어로 했다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이미 기내에는 모든 승객이 빠져나간 후였다.



일상적인 감각이 꽤나 뒤떨어지는 나는 늘 뭔가를 흘리고 잃어버리고 잊는 일이 잦다. 나의 이러한 극한 어설픔을 아는 지인들은 물가에 애를 내놓은 엄마들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잃어버리는 것 없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어이없이 처음부터 이러다니……



“Excuse me! Excuse me!”

나는 승무원에게 가방을 찾아봐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미친 듯이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내 잘못이었다. 기내에 빨리 들어와서 내 좌석 바로 위의 선반에 배낭을 넣어놨어야 했다. 배낭이 잘 있는지 중간에 확인했어야 했다. 나는 내 자리에 앉은 이후로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배낭에 대해서는 잊었다. 나는 가장 늦게 탑승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고 앉아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내 자리의 선반이 차서 다른 자리에 넣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내 가방은 다른 가방과 착각할 수가 없다. 의도적이다. 범인은 그중의 한명일 터였다. 어설픈 동양 여자. 한 번에 봐도 뭔가 가득 담은 배낭. 기내용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전자기기류였다. 보조 배터리가 여럿, 촬영을 위한 도구들, 충전기, 심지어 여권, 하나뿐인 신용카드, 그리고 또 뭐가 있었나…….



왜 남의 가방을 가져가는데. 여기는 전 세계 안전 세계 1위인 아이슬란드잖아. 아니구나, 아직 핀란드구나… 그저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이미 저 앞에 한참을 가고 있는 승객들을 다급한 시선으로 쫒았다. 그 사이 벌써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버렸다. 화장실로 들어간 사람들도 여럿. 범인이라면 화장실에 숨었을까. 남자 화장실이라면 들어갈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덜렁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미리 충전을 안 해놔 그마저도 배터리가 달랑거렸다. 아이슬란드 도서관에서의 발표 일정, 어떻게 하지….



미친 듯이 앞으로 뛰고, 뛰었다가 다시 돌아오고, 절박한 심정으로 사람들의 가방을 살피고 우왕좌왕하는 새 패딩 점퍼 안으로 하염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더 이상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어 나는 다시 기내로 뛰어갔다. 제발, 제발, 배낭을 찾았기를.



그러나 모든 승객이 빠져나간 기내로 들어가는 게이트는 문이 잠겨있었다. 유리창 안으로 두 세명의 백인 승무원들이 서 있었다. 나는 유리창 문을 두드렸다.



“I lost my bag. I told her to look for my bag.”

내가 가방을 잃어버렸어. 다른 승무원에게 가방을 찾아봐달라고 했거든…

“Oh, yeah. It happens a lot.”

아, 그런 일 자주 생겨.



남자 승무원의 아무렇지 않은 대답에 나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비행기 입구에는 십여 명의 백인 남녀 승무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다들 하산할 모양인 것 같았다.

“Your bag is here. She will bring…”

그중 한 승무원이 말했다.



왜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My... My son… he told me that I wouldn’t make this trip. And I have to finish it. If I lose my bag from the first place… you know…. I have to make it…”

우리 아들이… 우리 아들이, 엄마는 이번 여행을 혼자 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거든. 근데 나 해야 돼. 내가 처음부터 가방을 잃어버리면… 있잖아… 나 이번 여행 진짜 잘해야 하거든…

나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그 십여 명의 백인들에게 횡설수설 떠들었다.   



가방을 껴안듯 받아 들었다.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쏟아내고 뒤돌아 뛰었다. 이제 아이슬란드까지의 환승 시간은 5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내 가방을 가져다준 스튜어디스가 내게 뭐라고 얘기했지만 뛰어가느라 듣지 못했다. 가방이 어디 있었다고 말하는 걸까?






뒤늦게 합류한 환승 심사대의 줄은 끝이 없었다. 유럽 여행객들이 워낙 많았다.



“Late?”

중간중간 돌아다니며 심사대 근처에서 여행객을 도와주던 공항 직원이 내게 물었다. 그러면서 탑승권을 보자는 제스처로 손을 내밀었다. 탑승권을 본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야, 지금 6시 35분이야. 네 비행기 게이트가 6시 40분에 열려 6시 55분에 닫힌다고 쓰여있잖아,라는 표정으로.



그녀의 덕분에 빠른 심사대에 설 수 있었지만 심사대에서 검사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거북이처럼 느려터져 보였다. 나는 입술을 미친 듯이 물어뜯었다. 핀란드, 증오할 거야!



그리고 환승 심사대가 끝이 아니었다. 입국 심사대의 직원은 느긋했다.

며칠 머무를 거니?

집에는 언제 돌아갈 거니?





미친 듯이 아이슬란드행 비행기 출국장으로 뛰어가는데 하필 제일 끝 라인이고 그 길이 끝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게이트가 눈앞에 보이는데 오싹할 만큼 시야가 한산했다. 그리고 저 앞의  한 명이 마치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뭐라고 소리쳤다. 너, 지금 뛰고 있는 바로 너, 미즈 초 혜 용 맞지? 아 그런데 이 광경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러니까 20년 전 캐나다로 떠나는 어학연수에서 환승지인 미국 휴스턴 공항에서 마지막 탑승자를 찾던 방송. 미즈 초 혜 용! 미즈 초 혜 용!



털썩. 쓰러지듯 좌석에 주저앉았다. 땀범벅이 된 점퍼를 벗고 시간을 확인하니 7시 5분. 게이트가 닫힌 지 10분이 지나있었다. 너그러운 항공사! 평생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아직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그제야 주변을 살펴보았다. 온통 백인이었다. 골드빛 헤어 컬러가 아닌 약간 흰 빛깔의 헤어 컬러. 창백한 얼굴색. 아 내가 유럽에 왔구나. 그리고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말은 아이슬란드어일 거고? 이제 정말 아이슬란드로 가는 거야!   



지금 자도 얼마 못 자는데. 금방 내릴 건데. 긴장이 풀리면서 급격하게 잠이 몰려왔다. 그러니까... 내 가방을 가져간 사람은 없었던 거네... 그럼 가방은 어디 있었던 거지... 나는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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