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해수욕장 입구에 생긴 일광도서관 환영합니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동굴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혼자만 쓰는 공간, 방 혹은 집. 자신의 취향을 닮은 카페 또는 고요한 밤바다.
혼자 자는 방에서도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런 내게도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있다.
바로 도서관이다.
마음껏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
나의 생각을 끄적일 수도 있고, 어떤 도서관에서는 마음의 양식을 포함한 식사까지 맛볼 수도 있다.
언제나 도서관은 나의 설렘과 휴식, 외로움과 갈증을 채워주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고장에 새로운 도서관이 생기면 반드시 방문해야 직성이 풀린다.
기장에 새로 생긴 일광도서관은 일광해수욕장 입구에 위치해 있다. 얼마나 조용하고 깔끔하고 아름다울까.
익숙하지만 두 뺨이 발그레해지는 설렘을 안고 일광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의 외형만 보고 도로가에서 서성이다가 결국 지도앱을 켜게 되었다.
일광도서관은 일광해수욕장 입구를 향해 가야지만이 만날 수 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만난 일광도서관이 반갑다. 드디어 신생 도서관과의 조우다.
새 건물, 새로운 가구들, 빳빳한 새책. 그것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만든다.
도서관의 1층은 예외 없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된다. 아이들이 마음껏 들락날락하라고 만들어진 공간.
올망졸망한 가구들이 사용자의 체형을 가늠하게 만든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산하지만, 곧 아이들로 가득 찬 공간이 될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지만, 꺄르륵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도서관 안에는 조그마한 북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차성카페 일광도서관점. 합리적인 가격에 기대를 충족시키는 맛을 보장한다.
다만 북카페에서 구매한 음료는 북카페 내에서만 취식하시길, 도서관 내에서 먹다가 책을 손상시킨다면 오롯이 본인의 책임입니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에게 가진 편견이란 무엇일까. 골방철학자? 책벌레? 새초롬한 너드?
그동안의 이미지가 짙고 어두웠다면, 새로 지어진 책을 위한 공간은 그와 반대로 역행한다.
전면의 넓은 창, 앉아서, 누워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 당신의 취향을 몰라 다 준비해 보았습니다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종이책이 싫다면 전자도서도 있습니다. 패드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빌려드립니다. 책 보다가 지루하면 OTT를 보셔도 됩니다. 취향껏 즐겨보세요.
정말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오늘 내 마음에 든 자리는, 넓은 테이블에 사람 하나 없는.
계단이 보이면서 정수기가 바로 뒤에 있는, 개방감이 있지만 안락한 자리가 선택되었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의자를 뒤로 끌었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방지패드에 있다. 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 마음이 가고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내 취향의 자리를 선정한 후에 해야 하는 일은 당연히 책을 고르는 일이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광도서관을 찾은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다녀온 인문열차 가을소풍에서 북카페에 들렀다. 우연히 잡은 책의 한 문장이 크게 와닿았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며칠인가 계속된 부드러운 비에 여름 동안의 먼지를 말끔하게 씻어낸 산은 깊고 선연한 푸른빛을 띠었고 시월의 바람은 억새풀 이삭을 이리저리 흔들었으며, 길고 가느다란 구름이 얼음장처럼 파란 하늘에 달라붙어 있었다.-
계절의 흐름을 한 문장에 담은 그의 필력에 감화되었다. 한 문장 안에서 느껴지는 계절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축축함에서 뽀송함으로, 푸르름이 어느새 따뜻함으로, 유난히 높게 느껴지는 가을 하늘에서 곧 뿌려질 눈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유려하지만 담백하고, 글이 부리는 마력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
학창 시절 이미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집 근처 도서관에 찾아보니 언제나 대출 중. 그렇다면 혹시 새로 생긴 일광도서관에는 있지 않을까. 정답. 그래서 오늘의 책은 고민할 것도 없이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다.
구매할 수도 있지만, 이미 나는 이 책을 산 전적이 있다. 좋다고 추천한 책들은 어김없이 친구들이 빌려갔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빌려준 책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책이 좋아서 그런 거겠지?
독촉을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책은 내 책이 아니다. 다시 읽고 싶다면 도서관을 들르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새로운 도서관이 개관했다.
부산에서는 비교적 인접성이 떨어지는 해수욕장 중에서, 크기도 작은 편인 일광해수욕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지만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 평가는 최고의 입지다.
기획한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책을 좋아하고 사람 많은 것을 꺼려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최고의 공간입니다.
도서관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지어지는 곳이다. 가서 책을 보기도 하고, 시간이 부족하면 대출도 가능하다.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바다를 볼 수도 있고, 쉼을 위해 찾은 도서관에서 삶의 지침서를 찾을 수도 있다.
나의 동굴은 바로 도서관이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토대가 되어 주는 곳.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지쳤을 때 숨을 수 있는 공간. 열려있지만 오롯이 안락한 나만의 보금자리.
새로운 도서관이 생길 때마다 설레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곳이자 나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도서관을 나는 참 좋아한다.
라면 먹고 갈래보다 설레는 말, 나랑 책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