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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Nov 18. 2024

아다다와 고양이와 진정한 사과

단순한 소통의 위대한 능력

아다다의 마음


  '백치 아다다'는 계용묵의 소설(1935년 작)입니다. 아마 젊은 세대는 모르실 거예요. TV에서 방영되던 영화 '아다다(신혜수 주연, 임권택 감독, 1988년)'는 참 가슴 아프고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백치 아다다는 이름 그대로 백치처럼 단순하고 조금 부족한 사고력을 가졌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다다'밖에 없는 청각장애를 가진 여성 주인공의 이름처럼 쓰이는 말입니다.                              

임권택 감독 '아다다' 영화 포스터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아다다'로 들리는 표현만을 씁니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과 안타까움, 두려움 등의 모든 심리는 잘 전해집니다. 소통의 도구와 수단은 단순하지만 더 복잡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건 '수려한 말발(?)'보다 눈빛과 표졍이 담긴 진심이 소리의 의미를 좌우하는 것 때문이겠죠? 결국 마음은 포장지가 복잡하지 않을수록 더 잘 전달되고, 본질이 잘 담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역설적이지만 아다다의 마음은 어쩌면 제한된 언어의 장애 때문에 깊은 게 아닐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많은 정보, 특히 시각, 청각, 촉각, 심리까지 모든 정보가 쉽게 전달되는 걸 선호합니다. 속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달리 나오는 말이 아니겠죠? 직접 경험하고 본 듯한 정보에 대한 신뢰는 신뢰를 넘어 신념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쟁을 겪는 나라는 심리선전전으로 수 없이 조작된 영상과 뉴스를 내보냅니다. 이젠 AI기술 덕분에 그 조작이 사실을 뛰어넘을 정도여서 정말 무섭죠. 도대체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알아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인류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죠. 그래서 본질에 대한 갈증과 탐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글과 말과 책의 흐름을 보면 사람들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 진짜 중에서 정말 남겨질 것들은 뭔지 이런 것들에 집중하는 특징이 발견됩니다. 물론 제 주관이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더 부자가 되느냐... 류의 책들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덜 힘들고 더 행복하냐... 류의 책들이 인기인 건 사실이니까요.


단순한 표현의 시적 함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다다는 단순한 표현에서도 아픔과 돈과 인간심리의 복잡함을 잘 끌고 가는 이야기 속의 여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주변의 소통이 있습니다. 반려동물들이 그렇습니다. 가족의 지위로 신분상승된 고양이와 멍멍이들은 아다다처럼 몇 가지 안 되는 소리 소통의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소리 측면 말고도 신체적으로도 꼬리나 자세, 눈빛으로 표현하고 있죠. 그런데 인간은 단순한 소통이 가진 시적 함의(?)를 해석하기 어려워합니다. 이를 테면 어떤 톤의 '멍멍'은 좋다~의 의미지만 똑같은 톤의 또 다른 '멍멍'소리는 싫다~의 의미도 되니까요. 경상도 사투리 대화 중에 '맞나~'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그 표현과 비유해 보시면 쉽게 이해되실 것 같아요. 충청도 사투리에서도 '이이~'라는 감탄사가 다양하게 쓰이죠...


<경상도의 맞나 의미사례>

1. 맞나? : 사전적 의미 - 그 말이, 그 내용이 맞는 거야?

2. 맞나? : 반대의 의미 - 음... 내 생각은 좀 다른데?

3. 맞나? : 놀라움의 의미 - 와! 대단한데?

4. 맞나? : 무관심의 의미 - 음 뭐 그러든 말든...

5. 맞나? : 대답의 의미 - 어! 잘 알아들었어~


(반려묘 '버미'와 새 장난감~)


고양이가 사람을 부려먹는 소리?


  소리를 주제로 글을 쓰는 제게 자주 검색되는 학자는 영국 서섹스 대학교의 '카렌 맥콤'교숩니다. 이분도 저만큼이나 소리의 세계에 민감하신 것 같아요. 이분도 저처럼 고양이를 키우는데 이름이 '뻬뽀'라고 합니다. 당연히 그 고양이도 연구의 대상이 되었겠죠? 고양이의 목소리 연구를 시작했더니 배고플 때 내는 소리가 독특하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고양이 특유의 아기울음소리 나 그르렁 거리는 소리들이 인간의 행위를 조종하는 효과가 있다는 결론까지(?) 내게 됩니다. 고양이는 자신의 울음소리를 다양하게 내면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심지어는 조종(?)한다는 거죠. 이 연구는 현대생물학(current Biology)이라는 과학저널에 실렸다고 하는데요 영국의 공영방송 BBC도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고 합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애써 논문까지 썼데?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울음'소리로만 소통하는 아이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조금은 다른 표현을 쓰는 걸 아실 거예요. 아이가 없더라도 당장 고통스러워 우는 소리와, 불편하거나 배고파서 우는 소리는 다들 구별할 수 있으니까요. (고통스러워 울 때는 정말 표현 그대로 '자지러지게' 웁니다.)


  하지만 단순한 표현이 담긴 울음과 소리는 복잡한 외교적 표현, 레토릭(말과 내용의 꾸밈 - 수사학적)의 표현과 달리 마음에 빨리 도달합니다. 오늘 이 글의 핵심은 그거예요. 단순할수록 어쩌면 본질에 더 가깝다는 것. 해석의 폭은 넓겠지만. 깊이 도달한다는 것. 누군가 '사과하라'라고 하면 온 맘과 몸의 힘을 모아 사과의 말을 꺼내고 표정과 눈빛을 전하면 되는데... 복잡하게 빙빙 돌고 적당히 막을 건 막고, 피할 건 피하면서 '어쨌든 사과한다'가 되어버리면... 누구라도 그 진심을 의심하게 되는 거죠. 무엇보다도 사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공감하고 있는가가 중요하겠죠?


  사과가 아니라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이벤트나 표현도 중요한 사랑의 경험이고 행복이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이니까요. 때론 서툴게 쓴 편지라도 연필 자국, 볼펜 자국 하나하나 그 사람의 몸이 실려있고 마음이 그려져 있다면... 많은 돈으로 표현한 사랑의 '이벤트'보다 깊고 진할 겁니다. 


  막 글을 마치려고 하는데 고양이 '버미'가 종아리와 복숭아뼈를 보드라운 털로 살살 문지르며 가네요. 최애 간식이라도 하나 줘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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