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과 이름의 협소한 미시사 : 사장님, 이모님, 저기요??
한강과 김보라, 늑대와 함께 춤을
소설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 문학과 문화의 역사에 큰 경사였죠. 저도 오래전이지만 그분을 직접 만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러운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수상에 독특한 이름이 함께 등장합니다. 번역가 '김보라'인데요. 흔한 2-30대 한국 여성의 이름 같지만 이분은 영국 사람입니다. 한강의 작품을 영어로 다시 풀어낸 번역가죠. 그런데 이름이 왜 김보라? 이분의 작명실력에서 이분의 번역실력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김(쇠금, 金)은 성씨인 스미스(Smith:대장장이를 어원에 둔 이름)에서 따오고, 본인의 영문 이름 '데보라'에서 '보라'를 떼와서 만든 이름입니다. 정말 잘 만들었죠? 영국 번역가 김보라의 노력도 한강의 작품이 노벨상을 받는데 큰 영향을 줬을 거라 믿게 되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한강 소설가의 이름은 우리가 아는 그 “강물”의 강입니다. 강물처럼 시대를 흐르는 큰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고도 하는데... 역시 이름의 뜻대로 우리 모두를 담고 흐르는 이야기의 강이 되었네요.
사실 이름을 사전에서는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이름의 쓰임은 옆집 사는 홍길동과 브런치에 글 쓰고 있는 김틈을 구분하기 위한 도구라는 거죠. 맞습니다. 구분해야죠. 그런데 이름은 앞서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김보라처럼 뿌리와 의미를 갖게 됩니다. Deborah는 꿀벌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이스라엘의 여사제의 이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아주 풀어서 쓰면 대장장이 집안에 꿀벌의 뜻을 가진 유명한 여사제를 닮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 정도가 되겠죠. 순한글 이름도 뜻이 있고(제 쌍둥이 두 아들도 순 한글 이름 '미루', '그루'를 갖고 있습니다. 넓은 들판과 튼튼한 나무라는 뜻을 각각 갖고 있죠. 그런 의미를 갖고서 성장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어줬습니다.) 한자 이름은 더더욱 뜻이 깊습니다. 타인을 돕는 성인이 되어라...라는 제 본명의 한자도 그렇고, 제 필명인 '김틈'의 '틈'역시 세상 모든 것의 기회와 가능성의 의미로 부여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주 혹독한 환경에서 작은 틈 사이로 자란 초록 풀을 보며 스스로에게 저런 '틈'이 되자... 하며 지었죠.
그러니 이름은 구별 짓기를 넘어서는 '의미하기'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오죽하면 김수한무거북이와 두루미.... 도 잘 아시다시피. '좀 오래 길게 살아라'라는 절박한 의미가 담겨있는 구전설화 속의 이름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어릴 적 인기 있던 영화 '늑대와 춤을(1991년, 케빈코스트너 주연)'이 인디언식 독특한 이름이라는 걸 알고서는 이름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 영화 덕분에 각자 인디언식 이름이 하나씩 있었는데... 저는 '농구공만 잡으면 원맨쇼'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인디언들은 어떤 순간의 행위나 상징적 장소를 이름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마치 노스님이 화두를 주듯, 혹은 과거시험장에서 주제를 제시하듯 말이죠. 참고로 늑대와 춤을 영화 속에서는 '빨리 걷는 자'라는 이름도 있어요. 그 이름은 좀 너무하죠? ^^; 만약 ‘빨리 걷는 자’가 늦게 걸으면....??
사장님, 이모님, 저기요???
고유명사인 이름과 달리 호칭엔 대명사나 직함이 있습니다. 음식점이나 가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이름, 호칭은 아마도 “사장님”아닐까요? 외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듣기 평가를 낸다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틀릴 겁니다.
Q. 다음 대화를 듣고 알맞은 설명을 고르시오
남성 : 사장님 여름휴가 다녀오셨나 봐요? 며칠
가게 안 계시던데? 순대국밥 살코기만 하나요!
여성 : 아유~ 사장님 오시는 줄 몰랐지 뭐! 어떻게 소주도 한병 두꺼비로?
남성 : 역시 사장님! 짱! 근데 주방 이모님은 안보이시네요?
1. 여성은 남성의 직장 상사이다.
2. 남성의 가족 중 이모는 같은 회사 직원이다.
3. 여성은 식사로 두꺼비를 권한다.
4. 남성은 식사 값을 지불할 것이다.
갑자기 수능 앞두고 출제자 흉내를 내봤습니다. 하지만 사장님 이모님은 어쩌면 모두가 존중의 마음보다는 모든 걸 결정할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즉 부탁과 요청을 가장 잘 들어줄 그 가게의 대표에게 서비스를 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등장한 호칭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엔 사장은 사장인데 서글픈 사장님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가 하면 이모님은 좀 다릅니다.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의 마인드로 맛과 서비스를 챙겨주기 바라는 마음과 정작 우리 엄마에겐 못한 살가움을 표현할 수 있는
편안한 거리감의 표현이겠죠. 실제로 대학시절 고갈비(고등어구이 술안주를 역설적으로 고급지게 부르던)에 소주를 팔던 정문 앞 식당 주인을 몇몇 선배는 어머니, 어무이, 엄마라고도 불렀습니다. 저는 그분을 고모라고 불렀죠. 시어머니 같은 선배들이 어무이 라고 부르니 내겐 무서운 사촌형들을 데리고 있는 고모 같았으니까요. 여하튼 친족관계로 타인을 부르는 건 종교에서의 형제님 자매님(모두 하나님의 같은 자녀) 혹은 중생(모두 같은 생명체) 외엔 이모님이 가장 흔하고 또 편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어리거나 젊을수록 자주 들리는 타인에 대한 호칭은 “저기요”입니다. 멀리 떨어진 타인의 거리를 가늠해 부르는 즉 ‘그곳 즈음 있는 사람 당신!’의 의미는 존재를 부르기보다는 “장소”를 부르는 말입니다. 슬프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떠오르는 비슷한 이름 부르기는 ‘게(거기) 아무도 없느냐’입니다. 사극에서 양반이나 상전이 신분이 낮은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죠. 비슷하게는 ‘이리오너라’도 있습니다. 모두 사람의 존재를 장소나 “아무”로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슬프죠. 이름의 뜻을 받아 태어난 사람에게 “아무”라니요...
그래서 거리를 걷다가 “저기요!”하는 소리는 유쾌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아저씨”가 낫네요. 물론 일부러 “총각!”하고 불러주시는 의도적으로 해학적인(?) 아주머니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여성분껜 “아가씨”라는 호칭이 안전하겠네요. ^^;
오늘의 인생라디오 이야기 주제를 이름으로 꺼낸 건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우리 이름을 몇 번이나 듣게 될까를 생각하면서입니다. 유명인이 아니고서야 어린 날엔 하루에 수십 번이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하루에 열댓 번? 내 이름을 사람의 음성으로 듣는 횟수가 더 줄어드는 건 서글픈 사실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의 마음이 떠올라 슬픕니다. 장성한 내가 당신들의 둥지를 떠나고 난 뒤에도 몇 번을 맘 속으로 내 이름을 불렀을까요? 그 이름이 따뜻하고 소중하게 불리길 바라셨을까요? 정작 자신은 이름이 아니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로 불리면서요. 갑자기 이름 하나에 많은 이야기가 시처럼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름은 인간 삶의 첫 이야기입니다.
저 김틈은 어떻게든 솟아날 틈, 쉴 틈, 살아갈 틈, 꿈꿀 틈을 만들려고 해요. 여러분은요? 여러분의 이름은 어떤 이야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