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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Aug 09. 2024

Essay<봄이라는 소음, 삶이라는 잡음>

[Sound of Life]  “봄이 들린다.”


“봄이 들린다.”


  유난스레 춥고 시린 겨울 끝, 어린애 심통 풀리듯 봄이 들렸다. 그렇다! 봄은 들린다. 겨우내 감춰진 귀가 쫑긋 하는 봄은 계절이라기보다는 소리다. 눈과 땅이 녹아 들리는 물소리와 새소리, 등굣길에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 무겁고 단조로운 침묵으로 버티던 겨울을 밀어내는 건 봄의 소리. 봄의 풍경은 소리로, 귀로 맞이하는 게 마땅하다. 연둣빛 새 이파리와 풀꽃향기를 잠시 미뤄두고 오로지 귀만 열자. 소리로만 만나는 세상은 더 깊게 내게로 온다. 

  봄을 노래하는 판소리 ‘단가 사철가’는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 로구나~’라고 노래하지만 그 봄은 삶의 계절과는 어긋나 쓸쓸하다 한다. 삶이 겨울이라면 봄의 소리는 단지 화려한 빛깔일 뿐일까? 글쎄다! 인생의 계절을 소리로 만나면 머리에 흰 눈 쌓인 노년에도 봄이 들린다. 마치 엄마의 잔소리처럼 그리운 생명의 소음이 들린다. 어느덧 내게로 옮겨와 봄날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된 그리운 봄의 소리. 


“소음, Noise, 일상의 생명신호"


  사전에는 소음을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리라고 한다. 잡음도 비슷하게 읽힌다. 과연 소음과 잡음이란 무엇일까? 일요일 단잠을 깨우던 엄마의 잔소리, 마음에 실금이 가게 하던 늙은 아버지 기침소리, 밥 달라고 성가시게 짖던 반려견,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 바쁜 택배 차의 엔진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 배달 오토바이 소리와 전화벨소리들... 우린 이런 소리를 소음이라고 부른다. 듣고 싶지 않거나 관심 밖에 배경으로만 머물렀던 이 소리들을 잡음으로만 여겨야 할까? 오히려 삶이 봄이 그려낸 소리는 소음에 가깝다. 검은 무대 위 주인공만 밝힌 모습이기 보다는 다채로운 소음이 가득 무대를 채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신기하게도 소음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독서실, 요즘 유행하는 ‘스터디카페’에는 ‘소음발생기 대여’가 있다. 소음발생기? 조용하게 집중해서 공부하러 온 사람에게 소음? 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White Noise(백색소음)’는 이 업계에서는 꽤 중요한 환경과 서비스다. 지나치게 적막한 상태의 정적은 오히려 작은 소리조차도 예민하게 만들 뿐 아니라 신체가 내는 자연스러운 소리조차도 방해로 느끼게 한단다. 오히려 적당한 공간감과 부정기적인 소음을 내는 ‘백색소음 발생기’가 고요를 준다니... 아하! 이제 알 것 같다. 일요일 늦은 아침 엄마의 잔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어서 출근할 필요도 없는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쓸쓸해진 마음의 소리가 시끄러워 자꾸만 잠을 설쳤나보다. 


 “지구의 소리, 생명의 소리는 잡음들!”


  몇 해 전 나사의 화성탐사선 ‘인사이트’호가 ‘화성의 소리’를 보냈다. 들어보니 소리라기보다는 소음, 소음이라기보다는 진동에 가까웠다. 화성의 소리는 조용하고 지루하다. 생각해보니 지구는 정말 시끄러운 별이다! 각종 생명과 문명의 소음이 가득한 태양계의 거대한 라디오! 그래 화성덕분에 깨달았다. 우리는 소리의 별에 살고 있다. 우렁찬 울음으로 태어나는 생명도, 산과 들을 연주하는 물과 바람도 소리로 우리 앞에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우린 살아있다는 걸 부지런하게 소리로 증명하고 남기고 있다. 

  하지만 조용한 회의실, 분주하게 핸드폰 액정자판을 움직이는 엄지손가락들은 요란한 침묵을 쿵쾅인다. 태초부터 물려받은 폐와 성대를 울리며 나오는 나의 목소리로 상대방을 만나야 존재가 실재할 것 같다. SNS와 디지털 플랫폼이 주도하는 세상은 적막하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난폭한 침묵이며, 난공불락의 한겨울이다. 그 겨울을 깨는 것은 역시 자연스러운 대체 불가능한 아날로그, 내 안의, 내 몸의 울림. 바로 소리다. 봄의 소음을 타고 내가 낸 생명의 잡음이 봄 밤 하늘에 섞일 때, 아직 듣지 못한 오래고 무수한 생의 음악이 한 곡 완성된다.



월간에세이 2022년 3월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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