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의자, 영화관>
신암5동 134-278
늙고 굽은 길에
이끼 끼고
거칠고 오래된 골목에
극장 하나 있다.
끝나지 않는 그리운 장면은
늘 골목에서 상영된다.
관객은 하나
쓸쓸히 취기를 삼키며 들어오던
작은애
수줍은 고백이 길게 그림자 지던
보안등 아래
사람들을 보면
영화 같아
나는 이 오래된 객석에 앉아
너를 본다.
아니 나를 본다.
시간아. 슬프고 만져지지 않는
저 은막의 끝없는 그리움아
이 작고 주름진 눈이 감기면
나는 보지 못할 그 엔딩 크레딧
그 이름들
검은 시간에
흰 이름으로만 기억될 이름으로
그리워할
신암5동 134-278의 골목에
관객 없이
흐르는 영화 속엔
늘 잔기침처럼 비가 내리고
걸레질 한 뿌연 화면.
그 위로 반짝이며
간혹은 아가들의 웃음이 지나고
낡고 바람과 비를 피하지 않은
저 의자
주인이 없어
주인이 된
골목 외딴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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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파트가 들어선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
그 집 2층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그 집을 기어 다녔다.
배고프고 희망 고프던 대학원생 시절...
처음 주민등록지를 옮기고 나서 휴가나 주말에 집에 들렀다가 나올 때마다 단 한 명 어머니라는 관객이 이 골목과 나라는 영화를 희망의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도 상영관에 감귤빛 가로등 불이 켜지고도 떠나지 않고 나를 바라봐주는 것 같았다.
들어가라고 손을 흔들고
다시 그만 좀 들어가라고 손을 흔들고
그 언덕 골목길 끝에서
힐끗 보면 아직도 서 있는 관객...
골목에 꺼내둔 의자...
눈물을 참아야 이 풍경이 슬프지 않을 거라 믿으며
눈을 감고 걸었던 풍경 속엔 어머니만 보였다.
이제 두 노인의 아파트 복도에서는 새롭게 올라온 옛 집 위의 아파트가 보인다. 명절이면 새벽마다 숙취에 찌든 아들들이 좁은 골목길마다 주차 테트리스를 하던 풍경도. 이 집 저 집 숟가락 숫자 챙겨가며 먹을 것 챙겨주고 같이 울어주던 골목은 없다. 몇 동 몇 호만 남았지. 아이들이 그 골목을 다닌 기억이 있어 다행이다. 삶의
핏줄 골목의 온기가 많은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주 안아주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