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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Aug 22. 2024

모순, 시작과 닮은 끝.

한 남자와 바닷가 장례식

   파도소리와 닮은. 


  사람들은 닮은 것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찾고 때론 공포를 느낀다. 높게 솟은 한라산과 제주도의 모습을 거대한 선문대할망의 모습으로 그리고 기도하기도 하고 연못 속의 물고기에게 '인간 얼굴을 한 물고기'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머나먼 별의 외딴 바위에서도 인간의 얼굴을 찾아낸다. 인간의 얼굴만 찾아낼까? 귀여운 곰의 얼굴을 찾아내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닮은 것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마음은 어디서든, 언제든 나를 잃고 싶지 않고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오래도록 파도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화성 표면에서 발견한 지름 2000미터의 '곰 얼굴' - 어린이 동아 2023년 1월 31일 자, 애리조나 대학 제공)


 닮은 소리는 사람들에게 욕구와 추억을 불러온다. 비가 쏟아지는 날엔 빗소리를 닮은 튀김류나 부침개가 인기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울 때 비닐봉지를 귀 옆에 두고서 부스럭부스럭 비비면 아이가 안정감을 얻고 울음을 그친 사례도 있다. 아이들이 엄마의 뱃속에서 태아로 듣는 엄마의 심장소리, 생명이 유지되고 보장되고 있다는 소리는 엄마의 심장소리, 그 소리의 안도감을 다시 느끼는 것. 


  파도소리는 더 다채롭다. 거칠게 들어오는 파도소리는 무서운 육식짐승의 포효처럼 들리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터지는 대포 소리같기도 하다. 반면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파도소리는 마지막 숨을 고르는 생명의 숨소리 같다. 잔잔한 파도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이야기소리와 같다. 귀엽게도 들리는 철석 아니 찰싹이는 소리가 닿을 때마다 '근데 있잖아~'하며 수다 떨고 싶어 하는 친구의 모습 같다. 이렇게 파도는 많은 것들과 닮아있지만 사실 거대한 바다의 호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시 우리는 왜 별자리에서부터 천정 벽지 무늬에서 까지 무언가 닮고 익숙하고 내가 아는 것을 선으로 이어 그려낼까? 호기심 혹은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심리학적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죽음이라는 끝이 명확히 놓여있는 삶에서 좀 더 멀리, 좀 더 낯선 것들까지 내가 아는 나와 관계된 이야기로 엮어내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귀의 풍경이 그려내는 소리


  소리로 돌아와 닮은 소리들을 생각해 본다. AI가 만들어내는 섬뜩한 '같지만 같지 않은 소리'가 아니라. 삐걱이는 낡은 의자에서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봄밤 놀이터의 고양이들의 사랑싸움이 마치 아이들이 희귀해진 시대 아이들의 놀이같이 들리기도 한다. 내가 꿈꾸고 그리고 바라는 것들이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귀의 풍경에서는 그려지고 있는 것. 


  어머니의 낮고 편안한 음성을 닮은 음악들도 있다. 조용히 성가를 읊조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챠벨라 바르가스(Chavela Vargas, 1919~2012)의 노래 'Paloma Negra'를 들을 때도 들리고, 다시 그 노래의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목줄도 없이 날 위협하던 동네 개들에게 지르던 엄마의 함성소리도 들렸다. 다시 그 장면으로 지금 보면 한없이 작은 약자였던 어머니의 목소리, 소리, 아침에 부엌에서 밥 하던 소리... 한겨울 빨래판을 두드리며 빨래하던 소리... 그 사이로 무어라 무어라 부르던 노래들 풍경은 풍경으로 이어지고 소리는 소리로 이어지고 그 사이에서 파도치듯 파도 위에 떠 있듯 마음은 시간을 가로질러 여행을 다닌다. 


 죽음이 궁금할 때 파도치는 소리를 듣는다. 


  파도치는 소리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인간이 인간이기 전부터 계속되었을 저 노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바다의 피부와 같은 파도, 그 얇은 끝에서부터 바다는 시작되지만. 육지도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의 방향을 일부러 잃고서 바라보면 땅은 파도와 맞닿는 곳이 끝이고, 바다도 땅에게 입 맞추는 곳이 끝이다. 시작일까 끝일까? 모순적인 그 지점은 칼로 자른 듯 명확하지도 않고 때론 바다가, 때론 땅이 서로를 뒤엎고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 같다. 파도는 그 두 연인이 부르는 노래, 시작은 끝이고 끝은 시작이라는 많은 시인이 노래한 그 지점의 원저작자의 노래. 

  그래서 시작된 곳으로부터 한 참을 달려 끝을 향하는 내 생명이 궁금할 때 바다와 육지의 사이, 그곳에서 부루는 모순의 노래, 파도소리를 들으러 온다. 때론 삶이라 노래하고, 때론 죽음이라 노래하고 그래서 도대체 무엇이냐 물으면 아무런 답 없이 언제 와도 그 자리를 지키며 노래하는 바다.  소리가 가득 바다는 거대한 몸속의 다른 소리를 걸러내 파도의 입술로 죽음과 삶을 동시에 노래한다. 그래서 어차피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 늙은 어부는 살기 위해 바다로 나선다. 바다는 아니까. 이 모순이 얼마나 모질고 슬프고 그런데도 기쁜지...


(사진 : 2022년 11월의 속초 아바이 마을 풍경, 새벽배가 일을 나선다. 촬영 - 김틈)


<그 남자의 장례식>


결국 

바닷가에 닿은 그 남자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뒤엉킨 채

도망치 듯

DNA보다 짙은 본능이 가리키는 무한의 대화가 있는 곳

바다.


그런데.


그곳이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또다시 바다로 걸어 들어갈지

바다로부터 도망쳐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이

파도치고 있었다.

때론 죽음으로

때론 삶으로

죽지도 살지도 않은 채

파도치는 한 남자의 눈물은

무척 짰다.


파도소리와

그 남자의 

울음소리가 같아지자

...

바다는 조용히 손을 뻗어

그를 품어주었다.


모래밭에 놓인 신발이 

대신 눈물을 가득 머금고 소리 없이 곡을 시작했다. 


문상객은 없는데 

날개를 접고 바닷가를 거닐던 갈매기 한 마리 

고개를 숙여 

삶이었던 신발을 위로해 주었다. 


2021년 짧은 글을 남기고, 2024년 8월 다시 풀어쓰다... 그러나 입은 쓰고, 풀어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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