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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Aug 26. 2024

지구라는 거대한 라디오 #2

대화의 동굴, 동굴 라디오, 만 팔천년 전의 DJ들.

 2024년에 18,000년 전의 목소리를 듣다


 구석기시대는 250만 년 전부터 신석기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까지의 시간. 직립 보행을 하는 동물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으로 바뀌어가는 진화의 터널이었을 것이다.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죽는 것 외엔 역사랄 게 없었을 시간, 지금과도 다르지 않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기록한다. 


  1879년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구석기 유적으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다(교과서에 나온다). 13,000년 전 무렵 산사태 같은 자연변화로 입구가 막히면서 말 그대로 '타입캡슐'이 되었고. 한 사람이 수 백번을 죽고 살아난 시간이 지나서야 지금의 인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동굴은 보금자리를 계획하고 지을 능력이 없는 인간들에겐 가장 최고의 마이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주의 영역 외에도 지금의 성당이나 교회, 법당처럼 종교의 영역이라는 측면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사진 : 구석기시대 추정 알타미라 동굴벽화 - 출처 : UNESCO 홈페이지)


  소리와 공간. 


  교회를 짓거나, 성당을 지을 땐 그 공간에서의 '소리'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랑 건축양식에서도 돔 형태의 지붕이 보인다. 다양한 종교적 의미나 당대의 건축기술이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돔 형태의 이유 중 하나는 '소리'다. 글은 제한적이고 내면적이고 비동시적이지만 소리는 동시적이고 외면적이고 확장적이다. 신의 목소리, 신비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돔은 동굴에서 나왔을 것이다. 동굴의 경험이 준 과학적 접근은 신의 목소리를 표현해야 하는 신성한(?) 목표를 이뤄냈을 것이다. 사실 이슬람뿐 아니라 많은 종교가 천문학과 '과학'을 포함(지배)하고 있기도 했다. 


(사진 : 김틈 - 2023년 9월 Radio Days in Asia  참석차 방문한 말레이시아 이슬람 사원 내부, 돔 지붕)


  최초의 인간이 경험한 동굴의 경험은 자신이 아닌 (사실은 자신의 메아리였을지도 모르지만) 미지의 존재와 대화해 본 경이로운 기억이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목소리의 힘. 이미 디지털 네이티브인 지금의 아이들에겐 라디오뿐 아니라 AI스마트폰까지 '자연스러운' 물건들이겠지만 내가 아주 어릴 적엔 달랐다. 네 살 터울의 형이 라디오 속에서 왜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지, 그 안에 누가 있는지 궁금해서 라디오를 분해했다가 어머니한테 혼나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라디오는 두 소년에겐 '작은 동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동굴'의 기억은 DNA에 희미하게 저장된 태초의 '동굴'에서 들었던 소리의 기억과도 연결돼있지 않았을까? 인간의 기억 중에서 소리의 기억이 오래간다고 알려진 것처럼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과 유적 중에 하나인 이유도 문자나 형상으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의 강렬한 인체의 기억은 동굴의 소리가 최초의 라디오처럼 인간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인류)는 수 만년 전부터 일종의 '동굴 라디오'를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동굴 라디오에서 들려온 바람 소리, 확성된 작은 숨소리, 되돌아온 나의 목소리를 숨죽여 듣던 최초의 '청취자'로서의 인간들 그중 몇몇은 이치를 깨닫고 그 소리를 이용해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DJ가 되었고, 때론 무리들의 우두머리나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샤먼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라디오(주로 시사라디오)와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듯...


 파장과 라디오, Narrowcast와 Broadcast


  이어주는 선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걸이처럼 하나씩 달고 시선은 폰에 머문다. 출퇴근길의 당연한 풍경 같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바뀌었다. 한때 라디오 청취율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폰 안에 'FM수신기능'을 활성화하자는 논의가 국회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삼성, LG 두 제조사가 아주 조금 협조적이었고 다른 제조사들은 시큰둥했다. 심지어 스마트폰 라디오 수신 칩은 본체에서 쫓겨나 이어폰 속으로 강제이주되었다. 그리고 블루투스 이어폰 시대가 오면서 FM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더 멀어졌다. 그 배경엔 데이터사용을 부추기는 여러 업계의 이해관계가 있을 거란 추측도 해본다. 그런데도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으로 셋집살이를 떠난 라디오 콘텐츠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고. 아직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진 : 김틈 - 라디오 VU미터 음량을 전기적 신호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장치)


  소리는 공기를 흔드는 파장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위아래로 떨리는 공기의 변화고, 이 변화의 파장이 귀에 닿아 들리고,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 전기의 시대는 이것을 공기의 떨림이 아니라 전파의 떨림으로 만들었고. 초속 300미터가 좀 넘던 소리의 속도는 빛의 속도가 되었다. 닮은 듯, 그러나 전혀 다른 모습의 이 두 파장조차도 디지털 시대에는 0과 1의 정보값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0과 1은 다시 소리로 바뀌어 변함없이 태초의 파장(wave)을 통해 우리 귀의 고막으로 찾아와야 한다. 

(사진 - 김틈 : 2022년 속초 청초호, 호수에 비친 도시의 빛이 오디오 이퀼라이져 같다.)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소리는 소리의 관념을 바꾸었다. 좀 더 크게 외치고, 북을 울리는 차원을 넘어서, 한 사람에게서 한 사람으로 전달되는 인간의 이동속도, 바람의 이동속도를 뛰어넘어 동시적으로 전 지구를 하나의 동굴 안에 넣을 수 있는 힘 바로 전기(빛과 속도가 거의 같다)가 소리 이동의 원천력이 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과학자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가 그렇게 20세기의 입구에서 무선통신을 개발해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동굴로, 동굴 같은 라디오로 바꿨다. 인간의 삶을 바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뭐라고 봐야 하는가 분분한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이 첫 방송이라고 주장한다. 망망대해 차가운 바다에서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는 당시 상업용으로 1:1 형태로 제한적으로 쓰였던(narrowcast) 무선 전신을 생명 구조를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Broadcast) 방식으로 사용했다. 실제로 인근을 지나던 많은 상선이 구조에 참여했다. 어쩌면 최초의 라디오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존재로 첫소리를 드러낸 것. 


  하지만 이어진 2차 세계대전에서는 라디오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충실한 정치선전 도구로서 그 목소리를 키웠다. 나치 독일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와 히틀러(Adolf Hitler)의 침략과 살육에서도 라디오는 이용되었고, 이를 막기 위한 연합군의 대응에서도 함께했다. 전쟁에서 라디오 선전(Propaganda)과 방송은 전쟁 전략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든 혹은 지하벙커에서든 어디에서든 들려오는 목소리는 최초 '동굴의 라디오'와 닮은 DNA가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적 신의 권위를 빌려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방송(Broadcasting)은 그 무엇보다도 20세기 인간들을 전파로 만들어진 '권력의 동굴' 안에 가둘 수 있었다. 지구는 각각의 언어와 환경과 인종 사이에서도 문명의 발아기부터 시작해서 계속 라디오를 듣고 만들고 확장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DJ 본능


  결국 전기, 디지털... 이어지는 AI와 양자(퀀텀)의 시대까지 기술의 속도는 기술의 목표를 다 쓰기도 전에 새로워지고 바뀌어간다. 지구를 거대한 동굴로, 라디오로 만들어서 지배하고 통제하고, 때론 저항하고(영화 속에서 저항의 미디어는 '라디오'가 많다.) 나누던 인간들은 이 라디오의 전원을 끌 수 있을까? 태초 동굴에서부터 우리는 소통하고 싶었고, 대화하고 싶었다. 소리를 더 키우고 지배하고도 싶었고 더 잘 듣고, 나누고도 싶었다. 지구는 소통의 별이다. 라디오는 소통의 범위를 지구로 확대했고, 지구를 하나의 소통창구로 열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단파라디오나 AM 아날로그 라디오로는 실제로 아주 먼 거리까지 소통이 가능하다.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져호 와도 전파로 소통할 수 있다. 지구의 기대와 환호, 거대한 굉음을 뿜는 로켓을 타고 1977년 지구를 떠난 보이져 호는 오랜 시간이 지나 먼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전파로 보내왔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우리를 겸허하게 성찰하게 만든다. 저 작고 창백한 푸른 점은 어쩌면 지금의 2024년의 라디오의 모습과도 같다. 영광과 환호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보낸다. 그리고 듣는다. 


(사진 : NASA - 1990년 보이져호가 60억 Km 떨어진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이른바 '창백한 푸른 점'으로 알려져 있다.)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4차원을 찾아내면 

지금이 아닌 시간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상한 건 그 나라였지 엘리스 당신이 아니라


차원의 시작은 점이라고 

어딘가에 찍힌 작은 점이 유일한 세상이래

1차원에서는

너를 향한 내 삶은 1차원

꼼짝없이 점 안에 갇혀서 

선을 기다리는 

아니 기다림 자체가 1차원


같은 시간에만 머물러

같은 사람만 바라보며

같은 그리움이 반복되는 차원


어머니의 아들 같은 

아버지의 어머니 같은

차원


멀리 떨어진 목소리를 듣는다. 

입김처럼 흩어진 목소리는 색으로만 들린다.

파란색이 들린다. 

엘리스 당신이 하는 말.

웃고 있는데 울고 있어서

2차원처럼 점과 점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는

가엾은 책갈피

어느 가을에 무수히 오고 가며 

한 장 삶을 꼽아두었나. 

파란색으로 바래진 줄기와

수액이 출렁이던 좁은 선은 너의 바다 엘리스.

이상한 건 세상이지 

네가 아니야. 

파란 태양이 가장 뜨거워

오래된 그리움이 가장 뜨거운 것처럼. 


2024년 8월 26일 11시. 김틈.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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