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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03. 2024

메탈 매미와 민요 매미

여름의 소리, 여름 같은 사랑

'당신은 ~ 사랑 찾기 위해 태어난 곤충~'


  매미는 알에서 깨어나 5년 이상 땅 속에서만 산다. 캄캄한 어둠과 두꺼운 흙 속에서 소리가 되기 위해 버틴다. 쑥과 마늘만 먹던 곰처럼... 그 긴 시간을 땅 속에서 살던 매미가 날개를  달고 울음을 우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을 찾기 위해서다. 지극히 인간적 관점이지만 한 여름 뜨거운 사랑, 그 한순간을 위해 보통 5년 최장 17년을 기다린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의 사랑이 이뤄지면 미련 없이 생을 버린다. 모진 곤충... 특이한 건 3, 5, 7...13, 17 둘로 나눌 수 없는 수로 땅속에서 살아간다. 짝을 찾기 위해 버티는 시간을 저렇게만 보내는 것도 알 수 없는 불가사의. 하늘을 날면서도 부끄럼 없이 짝짓기만 열중인 '러브 버그'와는 다른 품격의 매미다...

  사랑을 찾은 매미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물론 더 이상 살아가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가을 입구 어딘가에 조용히 노래를 마친 매미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너의 노래는 제목이 뭐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매미... '당신은~ 사랑 찾기 위해 태어난 곤충~'.

(사진-김틈 : 2024년 8월 어느 날 노래를 멈추고 지상에 내려앉은 매미, 일산동구 정발산동 집 근처)

헤비메탈로 우는 미국 매미, 민요로 우는 한국 매미


  하지만 여름을 상징하고, 여름을 가득 채우는 매미소리는 사실 '시끄러움'이기도 하다. 헤비메탈 로큰롤 가수처럼 사랑하는 매미는 독특하게도 수컷만이 울음을 운다. 사랑을 찾는데 울음을 운다니... 포효하듯 함성처럼 지르는 소리는 울음을 울지 않는 차가운 암컷을 향한 수컷의 구애다. 암컷은 선택권을 지녔다. 듣는 존재가 선택권과 최종적인 사랑의 결정권을 지녔다는 건 세상만물의 이치와 통한다. 권력을 갖고 마이크 앞에서 말하는 이들보다는 귀를 열고 그들이 우리의 운명을 제대로 끌고 가는지 듣는 국민이 더 크고 무서운 권력을 가졌다. 암수 매미의 이치에서 민주주의의 노래도 들린다.


  여하튼 이렇게 여름날을 채운 매미소리는 시끄럽기도 하다. 특히 미국 매미의 소리는 110db(데시벨)까지 크다고 하니 활주로 옆에서 전투기 이륙소리를 듣는 수준으로 귀가 아프다. 한국의 토종매미인 참매미는 6-70db, 업소용 진공청소기를 켜 둔 정도... 그런데 둘의 울음소리는 아니 존중해서 다시 표현하자면 둘의 노랫소리는 장르가 다르다. 한국 참매미의 노래는 민요가락 같다. 맴맴맴, 매에~~ 엠 하고 리듬 있게 부르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함께 섞이기보다는 제각각 메기는(선창, 돌아가며 한 사람씩 부르는 부분) 민요 형식의 노래는 얼추 받는(후렴, 다 같이 함께 부르는 부분) 노래로 이어지며 흥을 돋운다. 하지만 미국 매미는 전자기타의 디스토션 이펙터를 잔뜩 키운 소리처럼 촤아아아~~~ 악 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숨은 언제 쉬나? 로커가 관중을 향해 거친 소리를 질러내는 듯한 노래. 어쩌다 한국 민요판(?)에 온 저 매미들은 땅속에 더 오래 머무르는 주기 때문에 자주 민요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하진 않지만 그 소리는 청춘처럼 여름 한날을 채우고 있다.  문득 한 시대의 장르를 열었던 '무한궤도'의 '여름이야기'라는 곡이 떠오른다. 사춘기 여름날 수련회를 떠나는 버스 뒷자리에서 친구들과 불렀던 그 노래는 스무 살이, 서른 살이 되어서도 '사랑은 여름이었지'라는 감성을 남겨주었다.


매미는 임금님의 상징


  매미는 한자로 매미 선(蟬)을 쓴다. 착할 선(善)과 발음이 같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예복과 격식 중 머리에 쓰는 관을 익선관(翼善冠)을 뒤에서 보면 정말 '매미'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익선관(翼蟬冠)이라고도 부를 만하다. 이 매미의 다섯 가지 덕을 닮으라는 의미인데. 첫째, 매미의 얼굴 생김새가 글월 문(文) 자와 닮았으니 공부와 깨달음을 추구하고, 둘째, 매미는 나무뿌리 수액과 이슬만 먹으니 욕심을 내지 말고 청렴(淸廉) 해야 하고, 셋째, 사람의 곡식을 해하지 않는 염치(廉恥)를 닮아야 한다. 넷째, 자신의 집을 갖지 않는 검소(儉素)함을 닮고, 끝으로 욕심 없이 떠날 때 떠나는 신의(信義)의 덕을 닮으라 한다.


(사진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고종의 익선관)


  참 임금하기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국가의 백성을 책임지고 그들을 절망에도 희망에도 빠트릴 수 있는 권력을 지녔으니 어려워도 해내야 한다. 다섯 가지 덕은 고사하고 근본적인 권력인 듣는 권력 국민의 귀에 맞는 소리나 할 수 있을까? 권력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차라리 듣기 좋은 것도 뼈 때리는 팩트.


  권력도 사랑이라는 뜻일까? 여름 한철처럼 짝을 찾는 인생의 여름처럼 뜨겁고 시끄럽고 분주하지만 떠날 땐 풍족한 열매를 남겨두고 가볍게 떠나라는 이치. 매미의 다섯 가지 덕 중에서 마지막의 '신의'가 가장 와닿는다 오래전 중국 진나라의 육운이 쓴 글에 나온 철학인데 수 천년동안의 권력은 한 여름 한 달 사는 매미만큼도 발전하지 않았다.


  매미소리가 사라진 가을 입구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여름 사랑이 아니라 속삭이며 보이지도 않는데 귓 불을 스치듯 갈대처럼 강아지풀처럼 노래하는 귀뚜라미. 어쩌면 사랑은 여름에서 끝난 게 아니라 가을의 사랑, 겨울의 사랑... 땅 속의 사랑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불처럼 뜨거웠던 인생의 여름날의 사랑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움과 기다림에 목청 껏 노래하던 밤도 고요하다. 다만, 가만히 가만히... 소중한 것들을 쓰다듬고 조용히 조용히 사랑하고 감사하는 가을의 노래가 들린다. 네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네 노래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래와 목소리도 들리는 공존의 소리들. 뜨거운 사랑의 여름이 몹시 그립지만 지금, 가을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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