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에선 나팔 소리가 난다고?
"목 마르니 거 물 좀 주시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연구진은 식물의 소리를 최초로 녹음하고 분석했다. 인간의 가청 주파수 중 가장 높은 고주파수가 16Khz 정도니까 40Khz 이상의 고주파로 소리를 내는 식물의 소리는 사실 소리를 내지만 인간이 들을 수는 없다. 연구팀은 250Khz까지 들을 수 있는 특수 장비를 통해 식물의 소리를 녹음하고, 그 소리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다르게 내는지를 AI를 통해 분석했다.
직접 텔아비브 대학 홈페이지의 해당 뉴스와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서 토마토의 소리를 들어봤다. '반갑다 토마토 네 말소리는 처음 듣는 건데...'의 마음으로 들어보니. 톡톡 뭔가 박수를 치거나 탭댄스를 추거나 아니면 탄산음료의 기포가 터지는 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아! 생각해보니 한국의 가전회사는 김치 익는 소리도 광고로 들려줬네!!!(위대한 민족) 이 '톡톡, 토토톡'의 소리들은 식물의 구조에서 갖고 있는 관다발 같은 곳에서 나는 기포가 터지는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기포를 그냥 의미 없이 터트리는 게 아니라 목마를 때와 줄기나 잎이 잘려나가는 공격을 당할 때 다르다는 것이다.
소리의 세계는 아직도 무궁무진하고 비밀이 가득하다. 식물이 내는 소리는 인간의 귀에는 안 들리지만 분명히 세상에 퍼지고 있는 소리다. 고주파를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고요한 아침 정원은 고요하지 않고 시끄러운 식물들의 수다로 가득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 수다를 몰래 들을 수 있는 동물들은 분명히 있다. 목이 마르다는 소리를 내는 식물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혹은 기우제를 지낼지 알 수 없지만 식물도 소리를 낼 필요를 갖고 있다는 점은 밀봉된 고정관념을 뚫어버렸다. 소리가 인간이나 동물 허파와 성대를 가진, 붉은 피가 흐르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텔아비브 대학 연구팀은 이제 농사짓기가 좋아질 거라 말한다. 식물이 언제 목마른 지 뭐가 상태가 안 좋은지 대화할 수 있으니 적절한 조치를 통해 더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아... 동물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식용으로 사육하는 가축들의 말과 의미를 알 수 있다면 과연 먹기능커녕 죽일 수나 있을까? 굳이 통역하지 않아도 동물의 고통과 소리는 알아들으니까.
식물의 MBIT는 'IIII'입니다.
나는 죽어서 식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예술가나 혁명가다운 성격을 가졌다. 애완동물이 죽으면 무지개 동산을 건너간다고 하는데... 식물은 죽으면 '초록동산'으로 간다고 반려식물 애호가들은 표현한다. 그런데 식물은 MBTI로 치면 대문자 I, 극 내향적 성격이다. 물론 위의 연구처럼 말을 한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그 소리는 지극히 예민하고 소수에게 전달된다. 무엇보다 날이 추우면 그냥 죽는다. 공기가 안 맞거나, 습도가 안 맞아도 그냥 죽는다. 정말 예민하고 멋대로인 사춘기 연인 같다. 하지만 잘 지낼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식물은 누구보다 큰 감동을 준다. 매일 사랑한다 고백하고 내 시간을 온통 쏟아붓지 않아도 내게 아름다움과 사랑을 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일조량이나 바람, 습도, 온도가 달라지면 '넌 내 죽음이나 보거라'라며 매몰차게 생을 마감해 버린다. 빌라 1층에게만 허락되는 작은 정원은(내 땅은 아니지만) 식물에 대한 '애증'을 제대로 만들어주는 배움의 공간이 되었다.
물론 식물도 공격적이다. 식물 중 대부분은 독을 품는다. 파리지옥이나 식충식물이 소수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선제공격이 없다. 사후보복이 공격의 주된 방법이다. '날 죽이면 결국 너도 죽는다.' 이런 마음은 약한 것들이 강한 것들을 쓰러트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화는 그 독들을 오히려 약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소수의 식물이 쓰러트려 죽은 동물의 사체가 더 많은 식물의 에너지를 만들게도 해준다.
10여 년 전 읽은 책이지만 "욕망하는 식물"이라는 책에 등장한 이기적인 식물들. 그들은 맛있는 열매를 내어주고 자신의 후손을 더 멀리 많이 뿌려지도록 동물뿐 아니라 인간도 조종한다. 맛있고 건강하니 더 재배하게 되고 그 종은 우리를 지배하는 건지 우리가 그 곡식과 과일의 종을 먹으며 살아가는 건지 공생의 관계 속에서 우열은 애매하다. 여하튼 아주 내향적이고 이기적인 성격 같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식물. 지구는 정말 식물의 별이고 행성이다. Planet of Plant! 그 별의 초창기 인간의 상상력으로만 들리던 시대에는 공룡의 소리와 더불어 식물들의 합창과 합주소리가 지구 대기를 채우고 있었을 것 같다.
나팔꽃에서 나팔소리가 난다고?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메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이럴 적 꽃을 보면 정말 아름답고 특별해서 무언가 소리가 날 거란 상상을 했다. 악기처럼 생기기도 했지만 저렇게 예쁜데 소리가 없다고? 그래서 아카시아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를 꺾어서 귀 옆에서 흔들고 입안 가득 넣어 그 꿀을 몰래 맛보기도 했다. 금강초롱에선 방울소리가 들릴 것 같아 가만히 흔들어보기도 했다.
물론 인간의 귀로는 안 들리는 소리지만 무언가 다른 소리로 기억되는 건 소리가 꼭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의미. 말 한마디 못해도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은 아가와 엄마, 사랑하는 사이를 보면 더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녀석이 공터에 핀 나팔꽃을 보며 저 꽃을 꺾어 손을 계란 쥐듯 모으고 엄지와 검지 사이의 동그란 곳에 나팔꽃을 올리고는 강하게 탁 내려치면 '빠앙~'하는 나팔소리가 난다고 진지하게 설명해 줬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고등학교 시절 진지한 친구의 설명에 너무 반가운 나머지 시키는 데로 힘껏 내려쳤다. '빠~앙!' 소리는커녕, 손바닥과 손등이 시퍼렇게 변한 나를 보고는 친구들의 입이 '빵'터졌다. 제대로 속아서 골탕 먹었지만 유쾌한 놀림이었다. 저런 상상을 하다니... 그 친구 덕분에 나팔꽃을 볼 때마다 나팔소리를 상상한다.
바람은 같은데 바람을 만난 식물바닷소리가 다르다.
나무마다, 갈대나 풀마다 바람이 스치면 나는 소리가 다르다. 바람은 같은데 소리는 다르다. 식물은 바람을 만나면 온전히 몸을 던져 포옹을 한다. 바람은 식물 그대로의 몸을 안고 소리를 낸다. 둘의 소리는 시원한 파도소리기도 하고 은밀한 속삭임이었다가 슬픈 토닥임이기도 하다. 어쩌면 40Khz의 고주파를 듣는 건 동물이 아니라 바람 아닐까? 신화적 상상력일지도 모르지만 식물은 신께 전해달라며 어디에든 있는 보이지 않는 바람에게 이야기를 한다. 목 마르니 비를 내려달라고. 바람은 그 말을 전하고는 식물을 껴안아 주며 인간에게도 노래를 들려주는 건지 모르겠다. 바닷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나무는 바람에게 바다를 이야기한다. 그들의 언어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바다를 말하고 있다. 어제의 파도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오늘의 윤슬이 얼마나 얄미운지 그래도 그래도 저 바다가 있어서 좋다고 사랑한다고 언젠가 내가 뼈처럼 둥둥 둥치만 남아 품에 안겨도 미워하지 말라고 나무는 바람에게 자꾸만 바다이야기를 하고 바람은 나무를 껴안고 바다에게 노래를 전한다. 나는 숨죽여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