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가장 가까운 별
빛나는 것들은 무리 짓지 않아.
백석의 시엔 갈 수 없는 곳이어서 지극히도 넓은 마음의 공간이 느껴진다. 단지 땅이 넓다는 의미가 아니라 밀도가 낮다는 의미. 고독이면서 고귀함이라는 쓸쓸함이 정확하겠다. 시들은 삶의 배경을 가장 잘 그리는 그림이다. 그 안의 그리운 피사체는 바뀌지 않는다.
특히 밤의 공간은 그렇다. 알 수 없고, 갈 수 없어서 무한하게 확장된 공간은 처음과 끝을 지워버리고 블랙홀처럼 만져질 만한 모든 감정의 무게를 삼켜버린다.
그래서...‘밤에 소리는 더 멀리 간다.’라는 말보다는 ‘밤에 소리가 더 잘 보인다.’라는 말이 정확하다. 멀어도 들리고, 멀어도 보이는 밤의 밀도는 어둠 외의 모든 것을 외롭게 만드니까.
운동회가 열리는 날 아이들이 가득한 운동장의 아이는 쉽게 볼 수 없지만 해지고 난 뒤 어둑해지는 운동장의 헌 아이는 길 잃은 별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먼 데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밤에 그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건 과학적인 이유보다도 더 큰 이유가 있다. 그 시간 귀를 열어둔 사람의 마음의 공간이 텅 비어있어서 그렇다. 밤에 더 그립고 밤에 더 아프기도 한 이유다.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빛나는 것들은 무리 짓지 않아. 네가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빛나서 우린 길을 잃지 않아.”
달은 가장 가까운 별
그렇게 어린 친구들이나 마음속 어린아이가 순한 사람들에게 별의 소리를 들어보자고 한다. 별을 보고 그중 한 별을 골라서 집중하라고. 아마 늘 바뀌는 마음 같은 한 별이 보일 거라고 우리 눈엔 가장 큰 별인데 이름을 지우고 달이 된 별. 그 별에만 눈을 두면 만삭으로 부풀어 오른 물의 소리와 다시 빠져나가는 바람의 소리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웃음과 수정처럼 눈이 빛나는
남자의 미소가 들릴 거라고. 그게 달의 소리고. 우리가 매일 듣는 가장 가까운 별의 소리라고.
달은 천문학적 기준에선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을 숫자지만 천천히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우주 만물의 이치가 팽창우주론으로 서로 멀어지는 건데도 어머니와 같은 달을 보면서 다른 시간의 별을 슬퍼하는 운명과 닮았다.
달의 소리는 파도소리의 어머니다. 멀리서 손을 흔들고 배웅하는 가장 가까운 별에 따라 어머니의 배가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이젠 부풀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어머니의 배.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엔...
달의 소리는 어머니의 자장가였고, 이 밤의 텅 빈 마음을 다독다독이며 다듬이질하던 정갈한 마음이었구나.
백석 시인은 나타샤와 당나귀와 함께 눈 오는 밤의 광활한 고요에서 빛나는 웃음이었다. 밤의 소리는 달이 빚어준 한 여름밤의 부채질 같은 소리였고. 밤의 소리는 그런 사랑이 꿈꾸는 아름다운 여인과 가슴 뜨거운 남자의 소리였다. 그들 모두 달의 자녀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달을 향했고 달에서 돌아온 메아리는 눈가에 파도치며 눈동자를 쓰다듬었다.
밤의 텅 빈 거리를 걸으며 달을 바라보며 귀를 열면 가장 가까운 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눈물이 흐르면 달빛이 그 눈물에 녹아 입술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