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운전으로 경추환자가 된 지 180일
양옆 위 아래로 고개를 돌릴 수 없는
로봇이 된지 6개월 차
주치의와의 약속대로 우리는
3개월간의 고생을 더 한 뒤
반 년만의 외래진료를 보기 위해
구급차에 다시 한 번 몸을 실었다.
11:40분에 CT촬영이
잡혀있었지만
우리는 준비를 서둘렀다.
조금이라도 일찍 병원에 도착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0시간 같은 1시간의
구급차 이동을 거쳐
도착한 고대 안산병원
우리는 예약시간보다
일찍 CT촬영을 마치고
아점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다.
몇 점 나올 것 같아요?
난, 80점이라도 좋겠어요.
아뇨아뇨 70점이라도 좋아.
다 붙지 못했다해도
내 눈에 뼈가 붙고 있는게
선명히 보였으면 좋겠어요
나도요. 뼈가 붙고 있다는
확실한 소견만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신경외과 외래 데스크 앞에서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이름이 호명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가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이 시작됐다.
오랜만에 뵙네요.
3개월간 잘 지내셨나요?
네. 고생 지독하게 했습니다
그럼 사진 한 번 볼까요?
이게 저번에 찍은 사진이고....
이게 3개월 뒤 오늘 찍은 사진인데...
헉!!!!!!!
화면에 CT 사진이 뜨자마자
나와 남편, 그리고 선생님 모두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탄식을 내뱉었다.
일반인 눈으로도 보이시죠?
뼈가 이만큼 붙었어요.
외벽이 단단히 붙었어
네!!!보여요. 제 눈으로도
다리가 이어진게 보여요 선생님!!!
맞아요. 경추 1번이 골절이 심각했고
뼈 사이에 간극이 커서 걱정했는데
잘 붙어줬어요. 다행이에요.
생각보다 성과가 좋아 나도 기분이 좋네요
상태 양호해요.
극T이신 선생님 입에서
’양호하다‘는 말을 듣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 몇 번이나
남편 얼굴과 주치의 선생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선생님 근데 아래쪽은 아직 갭이 보여요
맞아요. 바깥쪽 뼈는 잘 붙어줬는데
아래쪽 뼈는 아직 덜 붙었어요.
이건 붙고 있어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그럼....얼마나 더 고생해야할까요?
보조기 잘 차고 무리하지 마시고
이젠 6개월 뒤에 봐요.
그 전엔 병원에 올 필요 없겠어요
6개월이요.....?
원래 모든 골절은 1년 뒤에는
무조건 확인을 해야 해요.
뼈도 그 정도면 거의 다 붙어 있을거고요
저 8주, 12주 듣다... 3개월 6개월
이제는 1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70점, 80점 아니
뼈가 조금이라도 붙어가고 있다는
말만 들어도 만족할 거라고 했던
애초의 마음과 달리
이제는 서운하다. 너무나 서운해
아주머니 할머니 전부 다 회복해서
퇴원할 때 나 혼자 병실에 남아있었는데...
아직, 나의 레이스는 끝난게 아니구나
내 레이스는 끝날 수 없는거구나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의 마음이
무수히 교차하는 감정이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
터져버렸다.
남편을 붙들고 주저 앉아 울었다.
붙었대요. 붙었대... 엉엉 어떻해....
근데 어떻해
또 6개월을 더 기다려야한대....
속상하고 기쁘고 그렇죠?
이해해요. 오늘은 울어요.
실컷 울어요. 괜찮아
외래 진료 내역 결제를 받고
복용약을 타고 의료사본 발급을
기다리면서도 계속 울었다.
눈물바다인 나를 보며
창구 직원들이 하나 같이
걱정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어디가 안좋으세요?
왜이렇게 우세요?
좋아서요... 너무 좋아서요...
저... 뼈 붙었대요. 붙고 있대요!!!
어머 너무 축하드려요.
진짜 너무 축하드려요
혹시 당 없으시죠?
달달한거 먹으면 기분 좋아지니까
선물로 초콜렛 드릴게요.
먹고 힘내세요!
으앙....ㅠㅠㅠ감사합니다
그렇게 위로와 축하를 동시에
받고 돌아오는 앰블런스 차량을 기다리다
5개월 전, 고대 안산병원에서
지금 머무는 한방병원으로 전원할 당시
나를 도와주셨던 응급구조사님을
다시 한 번 뵙게 되었다.
어? 예전 교통사고 그 분 아니세요?
이제 혼자서 걸으시는거에요?
어! 맞네. 안녕하세요.
저 이제 혼자 걷고 많이 좋아졌어요
와, 몰라볼 뻔 했어요.
진짜 다행이네요
오늘은 드디어 6개월만에
뼈 붙었다 소리 들었어요.
이제 6개월 뒤에 다시 오래요
진짜요? 정말 축하드려요.
원래 경과가 좋을수록
외래 날짜를 갈수록 길게 잡아주시더라고요
돌아오는 앰블란스 차량 안에서
응급구조사와 나는
지난 5개월간의 회포를
조잘조잘 수다를 통해
실컷 풀었다.
다시 도착한 한방 병원 앞에서
나는 응급구조사에게 포옹을
요청했고,
응급구조사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아졌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얼떨결에 나의 포옹을 받은
응급구조사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꼭 다 나아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렇게 축하 받고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받아도 되는 날이겠지?
오늘 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