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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Aug 10. 2023

녹음

녹지 않는다, 단정하던

각지고 차가운 그것은

어느덧 녹고 작아져

미끄덩대고 흐물대고 있었다     


사납게 퍼붓는 발길질과 호통과

외면보다 빠른 시선들의 맹공에

서늘히 견고하던 뼈와 고막과 가죽은

융해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젊은 날의 무결한 신념이

티 없는 눈발에 안겨있던 때는 언제인가     


지금을 장악한 것은 오직

성숙과 연륜이란 이름의 고온

그 언짢고 쾨쾨하고 불가피한 뜨거움

바로 그 불순하고 찐득한 열기다     


투명한 이상(理想)의 청아한 냉기는

시간의 폭염 속에서 옅어지고 흐려지고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싸여

끝내 액체라는 삶으로 늙어가는 것이다     


날카로운 윤곽이 영롱히 빛나던

겨울의 성채처럼 굳건히 서 있던

완벽히 얼어 그토록 차디차던

어제의 그것은 이제 고여있을 뿐이다     


여기 이 밑바닥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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