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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l 23. 2021

상선약수

2021.07.22


샌프란시스코에 물을 공급하는 저수지 옆의 기념물에 새겨진 구절.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사야서 43:20)


2011 여름, 북경사범대학에서 열린 단기 어학연수 과정 중에 장양 감독의 <> (1999) 보게 되었다.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앞둔 북경의  구석진 동네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중국 남부의 심천에서 출세하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작품이다.


극 중의 아버지는 단골손님의 세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한 명 한 명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의 일상을 보살핀다. 다름 아닌 심천을 중심으로 하는 주강 삼각주 지역에서 20세기 말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혁개방'의 급류에 휩쓸려 사라져 가는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서툰 중국어로 이 영화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에 선생님께서 목욕탕 주인을 보면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떠오른다고 말씀하셨다. 고단한 세상살이 중에 묻은 갖가지 때를 마치 위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고요히 흐르는 강처럼 씻겨내는 목욕탕 주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중국어를 마지막으로 공부한 지 거의 10년이 되어서 이미 많은 것을 잊었지만, 이 사자성어는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귀중한 다짐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길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장양 감독은 목욕탕 주인의 모습을 통해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비록 화려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잊히더라도 주위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그들에게 잠시라도 쉼터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소하게 보이는 행동이라도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의 생명줄로서 힘차게 흘러온 강들도 그 발원지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류에서는 작은 개울로 시작한다.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흘러온 소중한 인연과 값진 경험,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랑을 나눔으로써 단 한 사람에게라도 흘려보내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선(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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